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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피한 개혁… 해체 논의까지
방첩 중요성 커져 고유 기능 강화해야
문제는 대통령 측근의 사령관 임명
정보수집 기능 악용해 사익 챙기기 변질
개헌처럼 정치적 고려 탓 진짜 개혁 불발
부대원에 피해 가지 않는 세심함 필요

편집자주

광화'문'과 삼각'지'의 중구난'방' 뒷이야기. 딱딱한 외교안보 이슈의 문턱을 낮춰 풀어드립니다.
국군 방첩사령부 전경. 한국일보 자료사진


대선 정국으로 접어들면서 정치권에서 12·3 불법계엄에 따른 군 개혁 방안 논의가 한창입니다. 그 가운데 첫손에 꼽히는 게
국군방첩사령부 개혁안
입니다. 대통령, 국방부 장관과 학연으로 얽혀있던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은 계엄 사전 모의부터 깊숙이 개입했습니다. 실행 단계에선 부정선거 의혹 해소를 위해 부대원들을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장악, 정치인·법조인·선관위 고위직·노조 간부·시민단체 대표·언론인 등 체포 작전에 투입한 것으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해체설까지 나오는 '방첩사'… 본연의 역할은 갈수록 중요



더불어민주당 내에선 방첩사를 △정보보안 △감찰 △방첩의 3개 기능으로 쪼개 국방부 관련 부서에 이관, 사실상 해체하자는 의견이 나오기도 했다고 합니다. 그러면 정말 방첩사는 쓸데없이 권한만 막강한, 그래서 없어져도 상관없는 조직일까요?

방첩사의 존재 의미를 따져보려면 먼저 권한과 역할을 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방첩'의 사전적 의미는 간첩 활동을 막는 것입니다. 대통령령인 '국군방첩사령부령'에 명시된 직무는
△보안 △방첩 △정보 수집 △수사
인데, 즉 간첩 활동을 막기 위해선 이 같은 역할들이 유기적으로 어우러져야 한다는 것이겠죠.

최근 들어 방첩활동의 중요성은 갈수록 커지고 있습니다. 지난해 강대식 국민의힘 의원실이 방첩사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방첩사가 실시한 보안조사 건수는 2021년 224건, 22년 412, 23년 665건으로 해마다 200건 안팎으로 증가했고 지난해엔 7개월 동안 997건을 실시해 기하급수적으로 늘었습니다. 군 관련 사법처리된 안보사범 역시 2021년 18명→22년 20명→23년 18명→24년 27명으로 증가세입니다. 대부분이 군사기밀보호법 위반 사례입니다.

실제로 언론에 보도된 경우만 봐도 △정보사 군무원의 군 정보작전 요원 신상 및 위장 기업 정보 유출 사건 △중국인에 포섭된 현역 장병의 한미 연합연습 진행 계획 유출 사건 △중국인의 군 시설·장비 무단 촬영 사건 △인도네시아 연구원의 KF-21 기술 유출 의혹 사건 등 우리의 군사 및 방산 기밀을 노린 사건들은 수두룩합니다. 특히 중국은 한국뿐만 아니라 미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에서 기밀 정보를 수집하고 있습니다. 최근엔 미 육군 소속 정보 분석 담당 병사가 중국 측에 매수돼 6,000만 원을 받고 한미 연합훈련 기밀 정보를 넘긴 사례도 있었습니다. 부승찬 민주당 의원이 "
간첩이나 군사 기술 유출 관련 방첩사의 첩보 기능은 오히려 강화해야 한다
"고 했던 이유도 이 때문입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2023년 11월 6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중장 진급 보직 신고 및 삼정검 수치 수여식에서 여인형 전 국군방첩사령관에게 수치 수여를 하고 있다. 서재훈 기자


'강력한 정보수집 기능'과 '친권력 지휘관'이 만났을 때



그럼에도 방첩사를 개혁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문제는 △방첩사가 방첩·불법·비리 정보 취득을 명분으로 군·기관·방산업체 등과 관련된 광범위한 정보를 수집·처리할 수 있으며 △대통령이 군 장악을 위해 자신과 친분이 있는 장성을 방첩사령관으로 임명한다는 점입니다. 이 두 가지 문제는 서로 시너지를 일으키며
방첩사를 '개혁 대상 1순위
'로 만들었습니다.

방첩사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이런 폐단이 드러난 굵직한 사건들이 많습니다. 영화 '서울의 봄'으로 잘 알려진 12·12 군사반란은 방첩사의 전신인 보안사령부의 수장 전두환 주도로 이뤄졌습니다. 전두환은 쿠데타 이후 자신의 오른팔인 노태우에게 보안사령관 자리를 인수인계했고, 이후에도 전두환이 이끌던 '하나회' 멤버들이 차례로 보안사령관에 오릅니다.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던 보안사는 민간인 사찰, 언론 통제, 야당 인사 정치활동 규제 등 다양한 방식으로 정권 유지에 기여합니다. 1990년 윤석양 이병의 양심선언으로 보안사의 민간인 사찰이 폭로되면서 이듬해 국군기무사령부로 이름을 바꿨지만, 큰 틀에서 역할과 임무는 바뀌지 않았습니다.

27년간 유지되던 기무사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 정국에 대비한 계엄 대비, 민간인인 세월호 유가족 사찰, 이명박 정부 시절 댓글 공작 관여 등 문민정부 출범 이후에도 여전히 '권력의 시녀' 역할을 한 것으로 드러나면서
문재인 정부 시절인 2018년 해편(해체하고 다시 편성함)돼 군사안보지원사령부로 다시 이름을 바꿉니다
. 하지만 불법 사찰을 방지하기 위한 몇 가지 장치를 마련했을 뿐, 조직의 핵심 역할은 그대로였고 지휘관 임명에 대한 규제도 마련되지 않았습니다.

결국 너무 잘 드는 칼 때문에 부작용이 생기니까 칼날만 무디게 만든 것뿐이고, 칼을 다루는 새로운 사람이 와서 맘만 먹으면 언제든지 다시 날카롭게 만들 수 있었다는 얘기입니다. 그렇게 윤석열 전 대통령은 논란에도 불구하고
군사안보지원사를 다시 방첩사로 바꾸고, 사령관에 자신의 고등학교 후배를 앉힙니다
. 계엄을 위한 포석이었던 셈이죠.

1987년 6월 10일 잠실체육관에서 열린 제4차 민정당 전당대회에서 당시 대통령이던 전두환(오른쪽)씨와 대통령 후보로 선출된 노태우씨가 단상에서 손을 잡고 대의원들의 환호에 답하고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이름 바꿔도 결국 도돌이표… 사령관 인사 관행·정보수집 기능 혁파해야



수차례 이름을 바꿨지만 방첩사가 막강한 권한을 그대로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는 결국 권력자가 군을 장악하고,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는 데 아주 좋은 수단이었기 때문일 겁니다. 마치 수많은 개헌 논의가 있었지만 실행되지 않은 것처럼, 권력자 자신에게 주어진 방첩사라는 과실을 마다하지 않은 것일 테죠.

12·3 계엄으로 방첩사 개혁은 불가피해
졌습니다. 이목이 쏠리는 건 개혁 방향입니다. 가장 많은 전문가들이 입을 모으는 지점은 바로
사령관 인사
입니다. 방첩사 외부에서 임명된 사령관은 지금까지 자신이 접근할 수 없었던 정보들을 보고받게 됩니다. 이를 통해 자신의 경쟁자를 물리칠 수도 있고, 권력자에게 잘 보여 미래를 보장받을 수도 있습니다. 딴 생각을 품지 않고 본연의 임무에 충실할 수 있는 사람이 맡아야 하는 이유입니다. 한 구 야권 중진 의원은
"사령관 계급을 소장으로 낮추고, 승진 욕심을 가질 수 없도록 임기제로 한정해야 한다
"고 제안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야 전역 후에도 쓸데없는 권력욕을 갖기 힘들다는 것이죠. 예비역 중장과 소장이 품을 수 있는 욕심은 하늘과 땅 차이라는 게 군 내부의 평가입니다.

또 대통령과의 학연·지연 등 친분 관계를 철저히 배제해야 할 것입니다. 문민화 이후에도 대표적으로 박근혜 전 대통령은 자신의 동생인 박지만씨와 육사 동기이자 절친인 이재수, '하나회'의 후신 격인 '알자회' 소속으로 알려진 대구·경북(TK) 출신의 조현천 등을 기무사령관에 임명하는 패착을 두게 됩니다.

정보 수집 기능의 이관 문제도 거론됩니다. 최근 중요성이 커지고 있는
방첩·보안 업무는 강화하되 악용의 소지가 높은 정보 수집은 국방부 등 군 내 다른 조직에서 맡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니면 현재 대통령실의 국가안보실이나 민정수석실에서 맡고 있는 정보 취합 기능을 별도의 컨트롤타워에 맡기는 방안도 고려해볼 수 있습니다. 실제로 최강의 정보력을 자랑하는 미국은 9·11 테러라는 치명적인 '정보 실패' 이후 국가정보국(DNI)을 신설했습니다. DNI는 직접 첩보 실무를 수행하지 않고, 정보기관들의 보고를 취합·감독하는 역할만 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별도의 컨트롤타워가 생긴다면 각 정보기관 간의 대립도 막고, 대통령이 방첩사를 악용할 여지 역시 줄일 수
있을 것이란 주장도 나옵니다.

죄 없는 부대원들 피해보지 않도록 세심한 개혁 되길



마지막으로 방첩사 개혁에서 우리가 반드시 잊지 말아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바로 죄를 물을 수 없는 방첩사 부대원들 얘기입니다. 실제
계엄에서 방첩사 요원들은 사령관의 불법적인 지시에 '항명 아닌 항명'을 하며 제대로 따르지 않았습니다.
이동 중에 편의점에서 라면을 먹으며 시간을 때우기도 했고, 사령관의 지시에 대한 법적 검토도 수행했습니다. 특전사, 수방사, 정보사 등 개혁 논의조차 없는 조직과 비교했을 때 개혁으로 피해를 볼 수밖에 없는 부대원들은 억울할 법도 합니다.

조직 개편으로 인원이 감축되면, 이들은 2018년 해편의 아픔을 다시 겪을 수밖에 없습니다.
해편 당시 기무사는 인원의 30%가 줄었는데, 이들은 각자 소속 군으로 원복해 야전에 배치
됐습니다. 방첩 업무에 특화해 경력을 쌓은 이들이 야전 부대에서 경쟁력을 갖추긴 어렵습니다. 상당수는 진급에 실패하고 이른 나이에 군복을 벗을 수밖에 없었죠.
원복한 기무사 출신 간부가 극단적인 선택을 하거나 돌연사한 사례
는 언론을 통해서도 보도됐습니다.

방첩사의 기능을 축소하더라도 부대원들이 소속을 유지한 채 임무를 다하게 할 수 있는 방법은 있습니다. 기무사 시절에 비해 일선 부대에 배치된 방첩관들의 수는 상당히 쪼그라들었습니다. 혹자는 '구멍이 숭숭 뚫린 상태'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방첩·보안 기능은 강화가 필요한 만큼 현장 요원들을 늘리는 방안을 고려해볼 법합니다.

결국 방첩사 개혁은 차기 정부가 반드시 풀어야 할 숙제일 겁니다. 하지만 대선 국면에서 정치적 판단에 치우친 개혁안들이 불쑥불쑥 제기되는 건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진 방첩 기능은 잘 살리되, 정치적으로 악용되지 않도록 법·제도를 정비
하는 작업이 진정성 있게 추진되길 기대해 봅니다.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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