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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지형 변화…민주당, 성장 강조하며 증세와 선 긋고 우클릭 가속
진보정당 약화와 시민사회 공간 좁아지며 분배·복지·증세 뒷전 밀려
더불어민주당 대선 경선 주자인 이재명(오른쪽부터)·김경수·김동연 후보가 지난 4월 18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 MBC에서 첫 TV토론회를 시작하기에 앞서 기념촬영 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주간경향] 한 달여 앞으로 다가온 이번 대선에서는 그 어느 선거 때보다 ‘성장’이 주요 경제 어젠다로 부상해 전체 선거 국면을 이끌고 있다. 유력 후보인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경선 후보는 제조업의 인공지능(AI) 대전환, 에너지 공급망 혁신, 전략적 첨단산업 육성 등을 골자로 한 ‘3·4·5 성장비전’(잠재 성장률 3%, 4대 수출 강국, 1인당 국민소득 5만달러)을 제시하며 성장 동력 회복에 방점을 찍고 있다. 이는 지난 대선 당시 전 국민에게 연 25만원을 지역화폐 형식으로 제공하는 기본소득, 불평등 완화, 복지 확대 등 분배 중심의 정책을 강조했던 것과는 결이 다르다.

당시 이 후보는 탄소세 및 국토보유세 같은 목적세를 도입하겠다고도 했는데, 이는 고탄소 배출 기업이나 고자산층을 주요 과세 대상으로 삼는 ‘부자 증세’의 성격이 강했다. 그러나 4월 18일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토론회에 나온 그는 “재정 문제 해결을 위해 손쉽게 증세를 얘기하는 건 적절하지 않다”며 증세에 선을 그었다. 상속세 공제액 확대, 근로소득세 기본공제 상향, 첨단전략산업 기업 법인세 감면 등 중산층을 겨냥한 감세도 언급했다.

민주당이 성장을 강조하고 증세에도 일찌감치 선을 그으면서 이번 대선에선 성장과 분배라는 보수와 진보 진영 간 전통적인 선거구도의 경계는 사실상 허물어졌다. 분배, 복지, 증세 등 진보정책 어젠다 또한 사실상 실종됐다. 탄핵 이후 치러지는 촉박한 선거 일정이 심도 있는 정책경쟁을 가로막고 있다는 평가도 있지만, 보다 구조적인 이유도 거론된다. 정치지형의 변화, 저성장 국면, 중산층 중심의 유권자 표심 공략, 정의당의 원외정당화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는 것이다.

정치적 불확실성과 경제 위기감에 ‘성장’ 부각

먼저 국민의힘의 극우화는 한국 정치지형을 우측으로 끌어당기고 있다. 윤석열 정부와의 선 긋기에 실패한 채 극우 세력과의 결탁이 반복되면서 국민의힘은 보수정당으로서의 균형 감각과 정책 대안 기능을 상실했다. 국민의힘이 거대 여당으로서의 책임을 외면한 채 극우 정치에 몰두한 사이, 민주당은 전략적으로 지지층을 확대하기 위해 상속세 완화와 성장 중심 의제로 보수 유권자층에 다가갔다. 이재명 후보는 토론회에서 “민주당은 진보일 수도 보수일 수도 있지만, 지금은 보수의 가치라 불리는 성장과 발전에 집중해야 한다”고 했다. 사실상 민주당이 ‘중도진보’가 아닌 ‘중도보수’ 정당임을 공식화한 셈이다.

이 같은 정치지형 변화는 탄핵이라는 정치적 특수성을 배경으로 한 민주당의 적극적인 우클릭 전략에 이어 장기적인 저성장과 통상환경 악화라는 구조적 변수들이 본격적으로 맞물리며 가속화되고 있다. 정치적 불확실성과 미국의 보호무역 강화 속에서 1분기 역성장을 기록하며 경기 상황에 대한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내수와 수출 모두에서 경제 하방 압력이 거세지고 있어 ‘성장’이 주요한 정책 의제로 부각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조귀동 정치컨설팅 민 전략실장은 “성장률이 1%대로 내려간 상황이라 의제 자체가 바뀌고 있다고 봐야 한다”라며 “‘어떻게 성장을 만들 것인가’가 의제의 중심이 될 수밖에 없다”고 분석했다.

상속세 완화, 근로소득세 기본공제 상향 등 중산층을 겨냥한 감세 흐름과 비증세 기조는 정당의 핵심 지지층의 이해관계를 반영한 것으로도 해석됐다. 조 실장은 “민주당 핵심 지지층인 1960년대생 대학 졸업자, 서울 마포·용산·성동에 거주하는 상위 중산층이 장노년층이 되며 고소득·고자산 계층으로 편입되고 있다”며 “이들은 세금 부담이 집중되는 대상이 됐고, 민주당의 성장 중시, 감세 기조는 단순한 선거전략이 아니라 지지층의 이해관계 변화에 따른 결과”라고 설명했다.

이러한 민주당의 우클릭에 대한 비판도 제기된다. 특히 저출생, 고령화, 지역소멸 같은 구조적 문제 해결을 위해선 분배 확대와 증세는 오히려 더 필요한 시점이라는 주장이다. 정세은 충남대 경제학과 교수는 “인공지능(AI)에 의한 일자리 대체와 자영업 구조조정으로 인한 대규모 일자리 재편이 이뤄지고 있다. 복지 확대 없이 이들을 어떻게 방치할 수 있느냐”며 “경기가 어렵더라도 양극화가 심한 한국사회는 증세 여력이 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GDP 대비 복지지출이 15% 안팎으로 OECD 평균(21~22%)에 비해 상당히 낮은 수치다. 이런 상황에서 감세를 얘기하는 건 국가의 공공서비스를 포기하고 각자도생하자는 말과 다르지 않다”며 고소득층 증세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2017년의 조기 대선과는 분위기 사뭇 달라

시민사회에서는 이번 대선이 탄핵 이후 치러진 2017년 대선과는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고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당시에는 선거 과정에서 정권 교체를 넘어 사회변화를 요구하는 광장의 목소리가 정치권과 소통되고 있다는 감각이 존재했던 반면, 이번 대선은 시민사회의 목소리가 정치권에 닿고 있지 않다는 우려다. 이지현 참여연대 사무처장은 “2017년에는 비록 집권 이후 시민사회가 제안한 개혁과제가 왜곡되거나 후퇴하는 등의 문제가 있긴 했지만, 탄핵과 선거 과정에서는 시민들의 공간이 열려 있었고, 정치권이 일정 부분이나마 개혁과제를 받아들였다”며 “지금의 정치권은 그런 분위기가 아니다”라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우리 사회가 단순히 내란 이전으로 돌아가는 게 아니라 더 나아질 수 있도록 개혁적인 어젠다가 논의돼야 하고, 여기에 정당만이 아니라 시민들도 함께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는 목소리는 굉장히 높다”라고 말했다. 지난 4월 17일 국회에서는 민주당 등 원내외 8개 정당과 내란청산사회대개혁비상행동이 공동주최한 ‘탄핵 너머, 대선 너머 사회 대개혁으로 만드는 새로운 세상’이라는 정책토론회가 열렸다. 그러나 각 정당이 하고 싶은 말만 반복하며 실질적인 시너지나 논의의 열기가 느껴지지 않았다고 한 참석자는 전했다.

대선 국면에서 진보적인 어젠다의 부재는 정의당이 원외정당으로 밀려나면서 제도 정치 내에서 대안적 목소리를 조직하고 전달하는 경로가 약화한 현실과도 맞닿아 있다. 전통적으로 진보정당이 주도하던 상속세, 법인세, 부유세 논의는 이번 대선에서 거의 등장하지 않고 있다. 정치적으로는 민감하지만, 사회적으로는 필수적인 차별금지법 등도 이번 선거 국면에서 논의되지 않고 있다. 한 진보 정당 관계자는 “2017년 대선에서 심상정 후보가 TV토론 1분 발언을 통해 성소수자 인권을 선명하게 옹호했던 것처럼 과거에는 소수자의 목소리를 대선 테이블에 올리는 역할을 정의당이 했다. 지금은 그런 통로가 사라졌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차별금지법은 광장의 목소리를 담은 플랫폼 ‘천만의 연결’에서 가장 많이 요구된 의제다. 그러나 이재명 후보는 (응원봉을 들고 광장을 주도했던) 2030 여성 유권자를 위한 비전을 묻는 질문에 “빛의 혁명 과정에는 모든 국민이 함께했다. 국민이라는 거대 공동체의 모두의 성과다. 모든 국민과 함께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라며 두루뭉술한 답을 내놓았다. 대선에서 진보적 의제와 시민사회의 공간이 좁아지면서 저소득층, 서민, 소수자 등을 위한 정책 논의가 뒷전으로 밀려나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는 점점 커지고 있다.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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