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대통령들도 유독 외신 인터뷰 선호
편집자주
여의'도'와 용'산'의 '공'복들이 '원'래 이래? 한국 정치의 중심인 국회와 대통령실에서 벌어지는 주요 이슈의 뒷얘기를 쉽게 풀어드립니다.2023년 4월 24일 미국을 국빈 방문한 윤석열 전 대통령이 워싱턴 '블레어 하우스'에서 NBC와 인터뷰 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달아오르는
대선 정국에서 예기치 않게 주목받는 건 '외신'
입니다.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의 대선 출마 여부에 대한 관심이 증폭되는 상황에서 20일 공개된 인터뷰가 불을 지폈습니다. 그는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와의 인터뷰에서 관련 질문에 "아직 결정을 내리지
않았다"며 "노코멘트"
라고 답했습니다. 정치인의 “노코멘트”는 “예스(Yes)”로 해석하는 게 일반적입니다. 실제로 윤석열 전 대통령 파면 이후 국민의힘 일각과 보수 진영에서 한 대행의 출마를 적극 권유해왔고, 이들에 따르면 한 대행은 곧 출마 여부를 발표할 계획이라고 합니다. 결국 한 대행은 국내 언론이 아닌 외신에 자신의 입장을 처음 피력한 것입니다. 그런데 의아합니다.
왜 하필 외신을 통해서일까요.
주미대사와 경제 통상 관료를 지낸 한 대행이 서구 언론을 좋아해서일까요. 그건 아닐 겁니다. 대한민국 대통령, 또는 정상들의 ‘외신 사랑’(?)은 과거부터 이어져 왔습니다. 멀리 가지 않아도 윤석열 전 대통령의 경우 2년 7개월
재임기간 중 30여 차례 외신과 인터뷰
를 했습니다. 이 중 대개는 해외 순방을 계기로 해당 국가 언론사와 한 인터뷰였습니다. 그러나 윤 전 대통령은 순방과 별개로 외신을 무척이나 적극 활용한 대통령이었습니다.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이 4월 17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 서울지국장과 미국 관세조치에 대한 대응, 국정운영 및 안보 정책 방향 등에 대한 인터뷰를 하고 있다. 국무총리실 제공
윤 전 대통령은
당선 후 첫 인터뷰를 워싱턴포스트와 했고, 취임 후 첫 인터뷰는 CNN
과 했습니다. 이듬해 국내외적으로 가장 이슈가 됐고 또 논란이 컸던 3월 한일 정상회담을 앞두고 요미우리, 아사히 등 일본 언론과 연이어 인터뷰를 했습니다. 그해 4월 미국 국빈방문을 전후해 로이터통신, 워싱턴포스트, NBC방송과 잇따라 인터뷰를 잡았습니다. 물론 소통을 한다는데 말릴 이유는 없습니다. 문제는 소통 채널입니다. 윤 전 대통령이 국내 언론과 인터뷰에 나선 건 취임 2년 차 신년에 진행한 ‘보수 매체’ 조선일보와의 인터뷰가 전부였습니다. 국내 언론은 외신을 통해 윤 전 대통령의 생각을 이해해야 했습니다. 가령 2023년 3월 한일 정상이 관계 회복의 물꼬를 트려 할 때 요미우리신문은 9개 면에 걸쳐 윤 전 대통령 인터뷰 기사를 실으며 “한국 정부의 강제동원 배상 해법은 정권 교체 후에도 구상권 행사로 이어지지 않을 만한 해결책이다”, “일본 피고기업이 한국 강제동원 피해자에게 배상하도록 한 2018년 대법원 판결은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과 모순된다”, “일본 정부의 반격능력 운용 방침을 충분히 이해한다” 등 민감한 내용을 쏟아냈습니다. 이후 미 언론과 인터뷰를 통해 우크라이나 무기지원 가능성, 대만 문제에 대한 생각 등을 접해야 했습니다. 윤 전 대통령만의 문제는 아니었습니다. 문재인-박근혜 전 대통령 재임 시절에도 청와대는 국내 언론보다는 외신과 주로 인터뷰를 잡았습니다.
전직 대통령실, 청와대 관계자들에 따르면
대통령들이 외신 인터뷰를 선호하는 이유
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우선 국내 언론 인터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논리입니다. 매체 경쟁이 심하다는 이유입니다. 윤 전 대통령과 문 전 대통령은 한두 차례 국내 언론과 인터뷰나 대담을 진행한 바 있지만 외신과의 빈도와 비교할 정도가 못됩니다. 한 관계자는 “대한민국 대통령으로서 특히 미국
매체와 인터뷰하는 걸 국격을 보이는 기회라고 여긴다
"며 "비판 일색인 국내 문제에 대한 질문보다 격조 있어 보이는 외교 문제를 토론하는 게 스트레스가 덜하기도 하다”고 전했습니다. 좋게 포장했지만, 날 선 비판이나 질책보다 어느 정도
질문의 수위와 대답의 톤이 정해져 있는
외교 이슈를 다루고 싶다는 대통령들의 태도
때문이란 겁니다. 물론 국익 차원이란 주장에도 일리는 있습니다. 또 다른 관계자는 “나라 간 협상에서 국익을 확보하기 위해선 해당 국가 유력 매체, 해당 국가 언어를 통해 우리의 뜻이 정확히 전달될 필요가 있다”며 “그러다가 간혹 인터뷰 내용으로 논란이 생기거나 우리가 의도한 제목이 아닌 제목이 잡히더라도 어느 정도 감수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2021년 6월 9일 청와대는 문재인 전 대통령이 청와대 본관 집무실에서 타임(TIME)지 표지 촬영과 화상인터뷰를 했다고 밝혔다. 사진은 타임지 표지(왼쪽 사진)와 인터넷판 기사. 타임지 홈페이지 캡처
다시 한 대행의 이야기로 돌아가보겠습니다. 한 대행은 앞서 논란이 된 FT와의 인터뷰에 다소 억울한 측면이 있다고 합니다. 정부 관계자에 따르면 당시 인터뷰 담당 기자는 다수 질문을 퍼부으며 매번 한 대행의 거취를 연관시켜 물었다고 합니다. 가령 한미 간 통상 협의의 의미와 중요성이 크다는 데 공감대를 나누다가도 ‘그런데 다음 대통령이 바꿀 게 아니냐’ ‘협의 협상이 틀어지지 않겠느냐’는 취지의 문제제기와 함께 한 대행의 거취를 계속 물었다는 겁니다. 이때 나온 노코멘트는, 정치 언어가 아닌
정말 대답을 안 하겠다는 취지였다는 것
이죠. 정부 측 설명도 일리가 있다고 봅니다. 그러나 정확한 해석은 조만간 한 대행이 직접 거취 표명을 하는 날
밝혀질 겁니다. 인터뷰에 담긴 진의가 무엇이었는지 알 수 있겠지요. 정치 도산공원 연재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