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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건산법상 최고 중징계 처분
법원 “중대 과실 인정” 취소청구 기각
[법알못 판례 읽기]


HDC현대산업개발 사옥. 사진=연합뉴스


4년 전 17명의 사상자를 낸 광주 학동 붕괴 참사와 관련, 재개발 공사 전체를 책임졌던 HDC현대산업개발(HDC현산)에 내려진 8개월 영업정지 처분은 타당하다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법원은 HDC현산 측에 “중대한 과실이 있었다”면서 처분을 취소해달라는 HDC현산의 청구를 기각했다. 영업정지 8개월은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중징계에 해당한다. 건설 경기가 악화한 가운데 처분이 현실화되면 HDC현산에는 치명타로 작용할 전망이다. 이 회사는 1심 선고가 나온 당일 항소했다.

소 제기 후 3년 만에 1심 결론


서울행정법원 행정9부(김국현 법원장)는 지난 4월 21일 서울특별시의 영업정지 처분을 취소해달라는 HDC현산의 청구를 기각했다. 2022년 4월 소송이 제기된 지 약 3년 만에 나온 결론이다. 재판부는 서울시의 처분에 대해 “적법한 처분 사유가 인정되고 재량권을 일탈·남용한 위법도 없다”고 판단했다.

사건의 발단은 2021년 6월 9일 광주 동구 학동4구역 재개발 현장에서 건물이 무너져 해당 건물 앞에 정차 중이던 버스가 매몰된 일이었다. 이 사고로 당시 버스에 타고 있던 피해자 17명 중 9명이 사망했고 8명이 다쳤다.

이듬해 1월 광주 동구청은 HDC현산의 등록 관청인 서울시에 징계를 내려달라고 요구했다. 부실시공으로 인명 피해가 발생했을 때 사건을 조사할 권한은 국토교통부에 있지만 업체에 대한 행정처분 권한은 등록 관청에 위임돼 있다.

서울시는 같은 해 3월 건설산업기본법 위반을 사유로 8개월 영업정지 처분을 내렸다. 건설산업기본법 82조에 따르면 고의나 과실에 의한 부실시공으로 시설물의 구조상 중대한 손괴를 발생시켜 공사 참여자가 5명 이상 사망했을 땐 1년 영업정지 처분이 가능하다.

그러나 이번 건은 희생자들이 일반 시민으로 ‘일반 공중에 인명 피해를 끼친 경우’에 해당해 8개월 영업정지 처분이 내려졌다. 다만 HDC현산이 신청한 집행정지(효력정지)가 법원에서 받아들여지면서 실제 처분은 미뤄졌다. 기한은 1심 선고 이후 30일까지다.

“업무상 주의 의무 위반…중과실 인정”


재판부는 건물이 붕괴한 원인에 대해 “원고와 그 관계수급인들이 해체 공사 과정에서 업무상 주의 의무를 위반해 시공한 결과”라고 봤다.

재판부는 “붕괴의 태양, 시간, 속도 등과 공사 현장의 위치, 피해 현황과 정도 등에 비춰 보면 공사에 부실이 있었고 이를 진행한 원고에게 중대한 과실이 있었다고 할 수밖에 없다”면서 서울시의 처분 사유가 인정된다고 봤다.

법원은 HDC현산이 해체계획서와 다른 시공 방식을 택한 것이 부실 공사의 직접적인 원인이었다고 판단했다. 외벽과 후면부의 보 2개를 먼저 제거한 뒤 건물 내부 성토(흙을 쌓음)를 위해 지하실에 성토체를 채워 넣은 결과 구조적 불안정성을 키웠다는 지적이다.

해체계획서에는 건물 내부 성토 방식이 명시돼 있지 않다. 재판부는 “시공 과정에서 계획서와 달리 임의로 해체 작업을 변경해 진행함에 따라 성토체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지하층의 보가 붕괴돼 건물이 도로로 전도됐다”면서 HDC현산 측 과실이 명백했다고 봤다.

건축법이나 산업안전보건법상 주의 의무를 직접 부담하지 않는다는 HDC현산 측 주장도 기각했다. 해체 공사는 하도급을 맡겨 진행했기 때문에 HDC현산이 건축법상 공사시공자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논리다.

HDC현산은 주택재개발정비사업조합과 4630억원 규모의 재건축 계약을 체결했고 정비 사업 중 비계, 구조물 해체 공사는 약 51억원에 하도급을 줬다. 하도급을 받은 한솔건설은 내부 철거 및 구조물 해체 공사를 재하도급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HDC현산이 재개발조합과 공사도급계약을 체결한 점, 도급계약서에 HDC현산이 ‘시공자’로 표기돼 있는 점 등을 들어 HDC현산이 “건축법상 공사시공자”에 해당한다고 봤다.

근로자가 아닌 일반인이 피해를 봤기 때문에 산업안전보건법상 주의 의무 위반 여부를 따질 수 없다는 HDC현산 측 주장도 “안전조치 미이행으로 발생한 사고의 피해자가 근로자인 경우에만 산업안전보건법이 적용된다고 볼 아무런 근거가 없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산업안전보건법상 사업주의 안전·보건 조치 의무는 도급인과 근로자를 고용한 수급사업주가 중첩적으로 부담하는 의무”라고 명시했다. 특히 도급인의 의무에 대해 “수급사업주에 의해 안전조치가 이뤄지고 있는지 확인하고 필요한 경우 조치를 취하도록 시정을 요청하는 방식으로 관리·감독하고 불응 시에는 직접 이행할 의무가 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HDC현산이 “해체계획서 내용을 준수하지 않은 채 공사가 진행되고 있는 것을 확인했음에도 공사 중단, 안전성 평가 등 필요한 조치를 하지 않고 방치했다”면서 업무상 주의 의무를 위반한 중과실이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무너진 건물이 사용승인 후 약 28년이 지나 노후화된 상태였다는 점, 사람과 차량의 통행이 빈번한 대로변에 위치하고 있다는 점 등을 고려하면 “해체 작업의 난도는 매우 높았고 사고 방지를 위해 더욱 주의를 기울였어야 한다”는 지적도 더했다.

HDC현산은 서울시의 처분이 재량권 일탈이자 남용이라는 주장도 폈다. 그러나 재판부는 이런 주장이 “사고 원인이나 부실시공 및 인과관계가 있는 고의·중과실에 관한 사실 오인에 근거해야 한다”고 전제한 뒤 “부실시공이 명백하고 원고의 업무상 주의 의무 위반과의 인과관계도 인정된다”며 타당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영업정지 처분의 근거 조항인 건설산업기본법 82조의 범위를 넘어선 조치가 아니었다는 얘기다.

HDC현산 측은 선고 당일 곧장 항소를 제기했다. HDC현산 관계자는 “이번 판결은 모두에게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항소 및 영업정지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이 불가피하다”며 “현재 공사가 진행 중인 현장은 행정처분과 무관하게 공사가 계속된다”고 밝혔다.

항소심 결과가 나올 때까지 법적 리스크는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이 사건과 관련, 업무상과실치사 및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등 혐의로 형사재판에 넘겨진 HDC현산 현장소장 서모(61) 씨는 올해 2월 2심에서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과 벌금 500만원을 선고받았다.

안전부장 김모(61) 씨와 공무부장 노모(57) 씨에게는 각각 금고 1년, 집행유예 2년이 선고됐다. HDC현산 법인에는 벌금 2000만원을 납부하라고 했다.

[돋보기]

화정 아이파크 붕괴 처분은 아직…리스크 여전


HDC현대산업개발은 7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광주 화정 아이파크 신축 현장 붕괴 사건과 관련해서도 서울시의 행정처분을 기다리고 있다. 학동 참사 발생 7개월 만인 2023년 1월 HDC현산이 공사 중이던 16층짜리 건물이 무너져 현장 작업자 6명이 사망하고 1명이 다쳤다.

국토부는 이 사건에 대해서도 서울시에 최고 수위의 처분을 내리라고 요청했다. 서울시는 사고 책임자들에 대한 1심 소송 결과를 지켜본 뒤 처분 수위를 정하겠다며 3년 넘게 결정을 미뤄왔다.

지난 1월 광주지방법원 형사11부(고상영 부장판사)는 HDC현산과 하청업체 가현의 현장소장 2명에게 징역 4년을, 그 외 피고인들에게 징역 2~3년의 실형을 선고했다. HDC현산과 가현, 감리업체인 광장 등에 각각 5억원, 3억원, 1억원의 벌금형이 내려졌다.

그러나 원·하청 경영진에 해당하는 권순호(현재 퇴직) 전 현산 대표이사 등 3명은 무죄 판결을 받았다. 재판부는 검찰이 제시한 사고 원인 중 콘크리트 품질·강도 부족 등에 대해 증거가 부족하다고 봤다.

경영진에 지휘 감독의 책임이 있지만 소속 직원 과실에 대한 직접적인 주의 의무는 없다고 판단했다.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되기 전 발생한 사고여서 경영진에 책임을 물을 수 없다고도 판시했다.

서울시는 형사재판 결과와 함께 학동 참사 관련 처분에 대한 법원 판단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최종 징계 수위를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 한편 이 사건은 김국현 행정법원장이 직접 재판장을 맡아 심리했다. ‘재판 지연 해소’를 최우선 과제로 꼽고 있는 조희대 대법원장의 뜻에 따른 것이다.

장서우 한국경제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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