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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英드라마 '소년의 시간' 큰 울림에
英, '학교 스마트폰 사용 법적 금지' 여론 확산
한국선 '일베 문화' 논의 중... "혐오 정서 비슷"
"진짜 해법, 공교육 현장서 찾아야" 목소리도
넷플릭스 드라마 '소년의 시간'에서 주인공 제이미의 엄마 맨다(왼쪽·크리스틴 트레마코 분)와 아빠 에디(스티븐 그레이엄 분). 넷플릭스 제공


"뭘 더 해야 했을까?"
"내 생각엔 우리가 뭔가를 해야 했다는 걸 받아들이는 게 좋을 것 같아. 그렇게 생각해도 괜찮을 것 같아."넷플릭스 시리즈 '소년의 시간' 중에서

지난달 중순 공개된 넷플릭스 드라마 시리즈 '소년의 시간'의 마지막화에서 남편과 아내가 나누는 대화다. 그들의 상황은 이렇다. 연약하고 착한 아이라 생각했던 13세 아들 제이미가 1년 전 어느 평온한 날 아침, 집으로 들이닥친 경찰에 체포됐다. 동급생 여자아이를 살해한 혐의였다. 아들은 결백을 주장했지만, 가족의 삶은 엉망이 됐다. 그래도 시간이 흘러 일상을 영위하려 안간힘을 쓰던 그날, 아들은 정식 재판 시작을 앞두고 아빠에게 전화해 심경을 털어놓는다. 아들 침대에 걸터앉은 아빠와 엄마는 참았던 눈물을 터뜨리며 후회하고, 서로를 다독인다. 그러나 여전히 알 수가 없다. '대체 왜, 어째서 이런 일이 우리에게 일어난 것일까.'

사회관계망서비스(SNS)와 남성 중심 온라인 커뮤니티가 청소년에게 미치는 영향을 섬찟하게 그려낸 이 영국 드라마는 전 세계에서 1억2,000만 회 이상의 시청수를 기록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중 역대 영어권 인기작 3위에 오를 정도로 큰 화제가 됐다. 특히 영국에선 반향이 더 컸다. 유해 콘텐츠 접근을 막기 위해 청소년의 학내 스마트폰 사용을 법적으로 금지하고, 더 나아가 청소년의 SNS 접근 자체도 금지시켜야 한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고 있다.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는 드라마의 메시지에 공감을 표하며, 영국 전역의 모든 중등 학생이 무료로 시청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발표했다. '소년의 시간'이 던진 불편한 질문에 세계는 어떻게 응답하고 있는지 들여다봤다.

"온라인 유해 콘텐츠 접근, 부모 통제로만 못 막아"

지난달 31일 키어 스타머(왼쪽) 영국 총리가 넷플릭스 드라마 '소년의 시간'의 각본가 잭 손(가운데)과 프로듀서 조 존슨을 총리 관저이자 집무실인 런던 다우닝가 10번지에서 만나 드라마 주제에 대해 대화하고 있다. 런던=로이터 연합뉴스


영국 BBC방송에 따르면 이달 초부터 영국에서는 '스마트폰 없는 어린 시절 협약(smartphone free childhood pact)'에 서명하는 부모들이 늘어나고 있다. 16세 미만의 스마트폰 사용을 법적으로 금지해야 한다는 게 골자다. 이 운동을 이끄는 펠리시티 윙클스는 "'소년의 시간' 공개 후 수천 명이 추가로 협약에 서명했다"며 "부모의 통제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이 인터넷에서 유해 콘텐츠에 접근할 수 있다는 점을 깨달은 뒤 이런 움직임이 시작됐다"고 밝혔다.

현실화하고 있는 사례도 있다. BBC는 영국 켄트주(州)의 체리튼 초등학교가 '학내 스마트폰 금지' 정책을 시행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소셜미디어에서 유해 콘텐츠를 접한 학생들이 '앤드루 테이트 클럽'을 만든 다른 학교의 (위험한) 선례도 있다"는 게 이 학교 교장 소피아 도버의 전언이다. 앤드루 테이트는 여성혐오 성향 인플루언서로, '소년의 시간'에서도 제이미가 공감을 표하는 "20%의 남성이 80%의 여성을 차지한다"는 발언을 한 인물로 언급됐다.

제이미의 아빠 '에디' 역할을 연기한 배우 스티븐 그레이엄과 함께 '소년의 시간'을 공동 집필한 각본가 잭 손 역시 "16세 미만 청소년·아동의 SNS 접근을 금지하는 법안이 통과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영국 최대 교직원 노동조합인 전국교육노조(NEU)의 다니엘 케베데 사무총장 또한 최근 "개인적으로 '학교 내 휴대전화 소지'에 대한 법적 금지를 지지한다. 이는 학교 관리자와 교사, 학부모의 부담을 덜어줄 것"이라고 말했다. 영국 가디언은 지난 10일 이 발언을 보도하면서 "그간 학교의 자율적 지침을 중시하던 교육계 리더십의 입장 변화가 뚜렷해졌다"고 짚었다.

"현실세계에선 과잉보호, 가상세계에선 과소보호"

넷플릭스 드라마 '소년의 시간'에서 동급생 여자아이를 살해한 혐의로 체포된 13세 소년 제이미(오른쪽·오언 쿠퍼 분). 넷플릭스 제공


경고음은 학계에서도 나온다. 지난해 출판된 '불안세대'의 저자인 미국 사회심리학자 조너선 하이트가 대표적이다. 이 책에서 하이트는 스마트폰과 SNS가 아이들을 불안 상태로 밀어넣고 있다며 "부모들이 현실 세계에선 '과잉보호'를, 가상 세계에선 '과소보호'를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가상 세계에서 아이들을 제대로 보호하려면 △고교생이 되기 전 스마트폰 금지 △16세 이전 SNS 사용 금지 등을 실천해야 한다는 게 그의 제안이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각국의 소셜미디어 규제로 이어지고 있다. 영국은 2023년 '온라인안전법'을 제정, 인터넷 플랫폼 기업이 사용자 안전 강화·불법 활동 차단을 위해 더 많은 책임을 져야 한다고 규정했다. 호주는 올해 말부터 아예 부모 동의 여부와 관계없이 만 16세 미만의 SNS 플랫폼 이용을 금지한다. 이를 위반한 기업에는 최대 5,000만 호주달러(약 453억 원)의 벌금이 부과된다. 지난해 제정된 유럽연합(EU)의 디지털서비스법도 플랫폼 기업에 △미성년자 타깃 광고 금지 △연령 확인 시스템 도입 등 안전 관련 의무를 지웠다.

"국정원의 '혐오 선동' 대응 실패... 온라인 급진화로"

2014년 9월 세월호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시민들의 단식 농성장이 있는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일간베스트 일부 회원과 자유대학생연합 소속 대학생들이 세월호 유족을 조롱하는 '폭식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뉴시스


'제이미'가 영국, 또는 서방에 있는 것만은 아니다. 드라마에서 '매노스피어(Manosphere·남성 중심 온라인 커뮤니티)', '인셀(Involutary celibate의 줄임말·비자발적 독신주의자)'로 불린 이들은 한국의 이른바 '일베'와 일정 부분 비슷한 측면이 있다. 페미니즘 혐오,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PC)에 대한 반감 등의 정서를 공유하기 때문이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라는 얘기다.

지난 21일 한국성적소수자문화인권센터의 교육기관 '교육플랫폼 이탈'이 마련한 '소년의 시간' 특별강좌에선 이 문제가 다뤄졌다. 강사로 나선 권김현영 여성현실연구소 대표는 "2010년 이후부터 온라인 남성 커뮤니티에서 공유되는 인터넷 문화가 지배적인 문법이 되기 시작했다"고 진단했다. 이어 "그들의 영향력이 매우 커졌기 때문에 이는 일부 남성의 문화가 아니다. 그들의 극우화, 인셀화, 급진화한 폭력적 언사들이 그 세대 남성 전반에게 대단히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2000년대 초 진보적 색채가 더 강했던 한국 온라인 문화는 2008년 이명박 정부 출범과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바뀌었다는 게 권김 대표의 분석이다. 그는 "금융 위기가 전 세계 생계부양자 남성의 일자리를 급격히 없애 불만이 고조된 상황에서, 이명박 정부는 국가정보원 등을 동원해 온라인 게시판에 여성·특정 지역에 대한 혐오나 차별이 담긴 글을 퍼뜨리며 여론을 선동했다"고 짚었다.

2017년 8월 30일 원세훈(오른쪽) 전 국가정보원장이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재판을 받은 뒤 구치소로 향하기 위해 호송차에 오르고 있다. 원 전 원장은 2012년 대선을 앞두고 국정원 심리전단국 직원들을 동원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와 인터넷 게시판 등에 정치적 댓글을 달도록 함으로써 국내 정치 및 선거에 개입한 혐의로 구속기소됐고, 2018년 4월 징역 4년형이 확정됐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하지만 문제 해결의 첫 단추를 잘못 뀄다는 게 권김 대표의 주장이다. 그는 한국일보와의 통화에서 "2010년대 초반 '일베 손가락 인증'을 잡아내는 데 집중하는 대신, 차별금지법을 만들어야 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일베 인증이 논란이 될수록 일베의 문화적 영향력이 강해졌고, 국가가 주도했던 차별과 혐오에 대해선 제대로 된 평가와 정책적 개입이 이뤄지지 않았던 탓에 지금의 급진화된 온라인 커뮤니티 문화로 이어졌다고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그렇다면 청소년에게 '스마트폰·SNS 금지령'을 내리는 게 해답일까. 권김 대표는 "문제의식에는 동감하나 해법에는 동의하기 어렵다"며 "SNS 규제로 직행하면 (현재) 온라인의 극우화된 남초 커뮤니티 분위기에선 '기성세대와 페미니즘, PC가 우리의 공간을 빼앗는다'는 반동으로 향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내다봤다.

"감정 조절과 관계 형성, 학교서 배우도록 해야"

넷플릭스 드라마 '소년의 시간'에서 주인공 제이미가 다니던 학교를 찾아가 탐문 활동을 하고 있는 형사 루크 배스컴(두 번째 줄 왼쪽·애슐리 월터스 분)과 미샤 프랭크(오른쪽·페이 마세이 분). 넷플릭스 제공


진정한 대책은 공교육 현장에서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지난 23일 미국 교육전문저널 '에듀케이션 위크'에는 "'소년의 시간'에서 눈에 띌 만큼 빠져 있는 기관이 있었다. 바로 학교"라는 지적을 담은 글이 실렸다. 마크 브래킷 예일대 아동연구센터 교수와 로빈 스턴 예일대 감성지능센터 공동설립자, 발달심리학자 다이애나 디베차가 공동 집필한 칼럼이었다.

브래킷 교수 등은 2019년 미국 비밀경호국의 학교 폭력 연구 결과를 주목했다. 칼럼은 "해당 연구에 따르면 학교 총격범 대부분이 '괴롭힘 피해자'였다"며 "모든 주에서 학교가 괴롭힘 문제를 다루도록 법으로 규정하지만, 법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또한 "인종차별, 동성애 혐오, 장애인 차별, 성차별 등은 단체 채팅방과 학교 복도에서 새로운 형태로 나타난다. 이를 야기하는 근본적인 '힘'을 똑바로 응시하지 않으면, 우리는 증상만 다루고 (문제의) 근원은 놓치게 된다"고 꼬집었다.

따라서 규제 일변도 접근보다는 '사회정서학습(social emotional learning·SEL)'의 모든 학교 도입이 필수적이라는 게 브래킷 교수 등의 제언이다. SEL은 감정 조절, 관계 형성, 책임감 있는 의사결정 등 인간의 건강한 성장에 필요한 기술을 터득하도록 하는 과정이다. 이들은 "괴롭힘은 정책이나 집회 한 번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모든 아이와 어른이 매일 존중받고 안전하며 소중하게 여겨진다고 느끼는 학교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이들이 정서적으로 잘 성장할 수 있는 환경에서 자라고 배운다면, 설사 오염 콘텐츠를 접한다 해도 물들지 않을 수 있는 '정신적 건강'을 얻게 된다는 뜻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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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평선] ‘혐오 소년’이 온다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041512580003448)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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