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교황 애도기간 이유로 혁명 기념일 연기하자 반발
교황 사진 들고 행진하는 포르투갈 시민들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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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이도연 기자 = 포르투갈에서 프란치스코 교황 애도를 둘러싸고 때아닌 집안 싸움이 빚어졌다.
25일(현지시간) 로이터, AFP 통신 등에 따르면 이날 수도 리스본에서는 수천 명이 거리를 행진하며 '카네이션 혁명' 51주년을 기렸다.
중도 우파 성향의 포르투갈 정부가 이날로 예정됐던 기념 행사를 다음 달 1일로 연기한 데 반발해 거리로 나선 것이다.
정부는 프란치스코 교황 선종에 따른 국가 애도 기간인 24일부터 26일까지를 피해야 한다는 이유로 매년 4월 25일에 총리 공관에서 열리던 혁명 기념일 행사를 미뤘다.
아울러 애도 기간 국기를 조기로 게양하고 "기념 행사를 자제"할 것을 지시했다.
카네이션 혁명 기념일은 1974년 4월 25일 당시 독재 정권에 맞섰던 혁명을 기리는 국경일로, 당시 연대의 상징으로 카네이션이 쓰였던 것에서 이름을 따왔다.
그러나 시위에 나온 시민들은 교황을 애도하는 것과 기념행사를 연기하는 것은 관련이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카네이션을 들고 남편과 동행한 페르난다 마나가우(77)는 "(행사 연기에) 전혀 동의할 수 없다"라며 "교황이 아직 살아계셨다면 아마 이 기념일을 맞아 포르투갈 국민에게 메시지를 보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시민 조아우 바티스타는 '51년 전이라면 투표하지 못했다'라는 현수막을 들고 행진하면서 유럽 전역에서 극단주의 정당이 부상하는 데 대해 "우리가 민주주의를 위해 계속 싸워야 한다는 점을 상기시킨다"라고 강조했다.
퇴역 군인 바스쿠 로렝쿠는 정부의 결정이 "교황에 대한 기억을 모욕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야권에서도 정부 결정을 두고 비판의 목소리가 거셌다.
포르투갈 사회당 대표인 페드루 누누 산투스는 "오늘 국민은 거리로 나왔지만, 정부는 창문으로 지켜보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편, 마르셀루 헤벨루 드소자 포르투갈 대통령은 이같은 여론을 의식한 듯 프란치스코 교황의 삶과 업적을 카네이션 혁명의 가치와 연결하려는 발언을 내놨다.
그는 이날 의회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의 '자유'와 '평등'의 메시지를 강조하며 "교황이 혁명과 무슨 관련이 있냐 하면, 바로 모든 것이다"라고 말했다.
포르투갈은 현 집권당 출신인 루이스 몬테네그루 총리가 가족 비위 의혹으로 불신임당하면서 내달 18일 조기 총선을 앞두고 있다.
이에 포르투갈은 3년 4개월이라는 짧은 기간에 3차례 조기 총선을 치르게 됐다.
불신임당한 몬테네그루 총리는 이번 총선에도 총리 후보로 재출마할 것이라고 밝힌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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