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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원의 건강한 식탁

향긋하고 달콤한 과일은 계절이 바뀌었음을 알려주는 신호다. 사진 어도비스톡
봄이다. 시장과 마트의 진열대마다 향긋하고 달콤한 과일들이 가득하다. 겨우내 움츠러들었던 몸과 마음은 싱그러운 제철 과일의 향긋한 유혹 앞에서 저절로 풀어지곤 한다. 한 입 베어 물었을 때 퍼지는 달콤한 즙과 신선한 향기는 계절이 바뀌었음을 알리는 가장 확실한 신호일지도 모르겠다. 식사 후에 즐기는 과일은 오랫동안 사람들에게 큰 즐거움이었고, 소중한 이가 집을 방문하면 과일을 썰어 대접하는 것은 늘 융숭한 대접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사람들이 혈당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면서 과일을 그리 달갑지 않게 보는 시선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과일의 달콤함 뒤에 숨겨진 과당(果糖)이 건강에 해로울지 모른다는 걱정 때문이다. 특히 당뇨병이나 체중 관리에 민감한 이들은 과일을 자제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것은 과일의 진짜 가치를 오해한 데서 비롯된다. 아주 달콤하도록 상업적인 진화를 거듭한 일부 과일들도 있지만, 우리나라에서 접할 수 있는 대부분의 제철 과일들은 사실 혈당 빌런이 아니다.

소셜 미디어 영상 등을 통해 ‘과당은 간에 염증을 만들고 종국에는 내장 지방으로 저장되기에 반드시 피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널리 퍼지고 있다. 하지만, 과일에 포함된 과당은 대체로 건강을 해치는 물질이 아니다. 문제가 되는 것은 가공된 식품에 첨가된 정제된 당분, 즉 첨가당이다. 과일 속의 당분은 식이섬유에 의해 가둬진 상태로, 원물 형태로 섭취하는 경우라면 소화와 흡수가 천천히 이루어져 대체로 혈당을 급격히 높이지 않는다. 사과나 딸기, 키위 같은 과일의 혈당지수는 빵이나 흰쌀밥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오히려 과일을 꾸준히 먹는 사람들은 심장병과 당뇨병, 심지어 일부 암의 발생 위험까지 줄어든다는 것이 여러 연구에서 확인되고 있다.

첨가당과 자연적 형태의 과일 등에서 섭취하는 당분을 나누어서 분석해 보면 만성 질환 측면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첨가당이거나, 또는 과일에서 추출하여 농축한 형태, 즉 공산품 형태의 과일 주스다. 같은 과당이라도 어떻게 먹느냐에 따라 건강에 미치는 영향이 크게 다른 것이다. 18만명 이상을 대상으로 한 하버드대 보건대학원의 추적 연구에 따르면, 블루베리, 포도, 사과처럼 식이섬유와 항산화제가 풍부한 과일을 많이 먹은 그룹은 그렇지 않은 그룹에 비해 2형 당뇨병 발생 위험이 최대 23% 낮았다. 반면 매일 과일주스를 한 컵 이상 마신 그룹은 당뇨 위험이 21% 높아졌다. 같은 과일이라도 주스로 마실 때와 통째로 먹을 때의 건강 영향이 이처럼 정반대로 나타난 것이다.

과일을 액체로 섭취할 때 무슨 일이 벌어질까? 과일을 짜낸 과일주스는 식이섬유가 제거되어 당분만 농축된 형태가 된다. 따라서 우리 몸은 과일주스를 설탕물에 가깝게 받아들인다. 주스를 마시면 혈당이 빠르게 오르고, 이를 낮추기 위해 인슐린도 과다 분비된다. 그 결과 남은 당분은 중성지방 형태로 간에 축적되거나 내장 지방으로 이어질 수 있다. 실제 인체 연구들에서도, 과당이 함유된 음료를 지속적으로 섭취한 경우 복부 내장지방이 증가하고 인슐린 감수성이 떨어지는 등 대사 건강이 악화되었다고 보고하고 있다. 그렇기에 건강관리를 위해 디톡스 주스를 먹는 습관을 가졌다는 이들이 의외로 술을 하지 않는데도 지방간을 경험하는 일이 많다.

진정 건강을 생각한다면 과일은 가능한 원물 형태로 천천히 먹는 것이 좋다. 세계보건기구(WHO) 역시 주스로 섭취하는 당을 ‘자유당’으로 분류해 추가 섭취를 최소화할 것을 권고한다. 한편 WHO와 국내 보건당국은 과일과 채소를 하루 5번 이상 먹을 것을 권장하는데, 이때 과일은 생과일 기준으로 섭취하는 것을 뜻한다는 점도 기억하자.

딸기는 봄이 제철인 대표적인 과일이다. 사진 픽사베이
봄에서 초여름으로 넘어가는 시기는 다양한 국내 과일이 쏟아져 나오는 풍요로운 때다. 가장 먼저 사람들의 시선을 끄는 건 붉게 익은 딸기다. 딸기는 새콤달콤한 맛뿐 아니라 비타민 C와 항산화 물질이 풍부하다. 특히 딸기의 붉은색을 만드는 안토시아닌 성분은 세포 노화를 늦출 수 있는 잠재력도 알려져 있다.

초여름의 문턱에서 등장하는 참외도 매력적이다. 참외는 수분 함량이 높아 봄날의 갈증을 시원하게 달래주고, 칼로리도 낮아 체중 관리에도 도움이 된다. 참외 속 풍부한 칼륨은 혈압 조절에 효과적이다. 아삭하게 씹히는 식감도 좋고, 포만감까지 제공하여 다이어트 식품으로도 손색이 없다. 봄 과일 가운데 키위도 주목할 만한 존재다. 남반구의 키위는 우리나라 기준으로 봄철에, 국산 키위는 가을과 겨울에 주로 나오는데, 열량에 비해 섬유질과 비타민 등 여러 미량 영양소가 풍부하며 당 지수가 낮아 혈당에도 영향이 적은 것이 특징이다. 비타민 C 함량이 오렌지의 두 배에 달하며, 과일 중에서는 드물게 비타민 E가 들어있고, 효소의 일종인 액티니딘은 소화를 촉진하고 장 건강을 돕는 것으로 알려져 소화 기능이 약한 중장년층에게도 좋다.

많은 이들이 건강 관리를 위해 값비싼 영양제나 보충제를 찾는다. 하지만 최근의 연구들은 단편적인 성분만을 농축한 영양제가 기대만큼의 건강 효과를 주지 못한다고 지적한다. 반대로 다양한 식품을 통해 영양소를 섭취할 때 오히려 질병 예방 효과가 크다고 입증되었다. 과일을 포함한 채소, 통곡물 등 자연식품에는 수백 가지의 파이토케미컬이 들어 있어 시너지 효과를 낸다. 이러한 미량 영양소는 자연 그대로의 식품 속에서 다른 성분들과 어우러져 시너지 효과를 낼 때 가장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예를 들어 과일과 채소를 많이 먹으면 암 발생 위험이 줄어드는 경향이 뚜렷하지만, 비타민 알약만 먹는 경우 예방 효과는 나타나지 않는다. 이러한 관점에서 과일은 가장 이상적인 천연 영양제라 할 수 있다. 그동안 당 건강에 대한 걱정으로 과일을 멀리했다면, 이제부터라도 당 지수가 낮고 신선한 제철 과일을 통해 자연이 준 달콤한 축복을 누려보면 어떨까?

정희원 작가·내과의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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