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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우일 주교가 기억하는 프란치스코
프란치스코 교황이 2024년 11월13일 바티칸 성베드로 광장에서 군중에 인사하는 모습. EPA/마우리치오 브람바티=연합뉴스

“돌아가시기 전날까지 사목 현장을 떠나지 않고 사람들 곁에 계시려고 굉장히 애를 쓰셔서 애처로워요. 그래도 당신의 소망을 끝까지 완수하시고 떠나셔서 참 행복한 분이었다고 생각해요.”

지난 23일 제주시 오등동 에밀타케 주교관에서 만난 강우일 주교(전 제주교구장)는 선종한 가톨릭교회의 수장인 교종(교황) 프란치스코를 회상하며 “굉장히 가까운 형님이 세상을 떠난 것 같아서 마음이 애달프다”고 했다. 그는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의장이던 2014년 8월 교황방한준비위원장을 맡아 세월호 유가족 만남을 비롯해 프린치스코 교황의 4박5일 방한 일정을 함께했다.

교황, 제주 예멘 난민들 위해 기금 보내

강 주교는 2014년부터 여러 차례 세계주교대의원회의(시노드)에 참석해 프란치스코 교황과 함께 가톨릭교회 개혁 방안을 논의하기도 했다. 바티칸시국에 있는 프란치스코 교황은 멀리 제주에서 온 강 주교를 만날 때면 “어이, 섬 주교 잘 있었나?”라며 반겼다고 한다.

2014년 방한 때 강 주교가 제주4·3을 겪은 도민의 한을 풀어주기 위해 교황의 제주 방문도 추진했으나, 성사되진 않았다. 대신 프란치스코 교황은 제주4·3 70주년을 맞은 2018년 4월에 “이 행사가 치유와 화해를 증진하는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는 위로 메시지를 보냈다. 제주도에 예멘 난민들이 들어온 같은 해 7월에는 주한교황대사를 통해 예멘 난민들에게 특별한 관심을 표명하고 자선기금을 내기도 했다.

2014년 8월 서울 광진구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를 찾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방명록을 쓰다가 교황방한준비위원장인 강우일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의장과 담소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email protected]

서명은 눈에 안 보일 정도로 작은 글씨로


강 주교가 곁에서 지켜본 프란치스코 교황의 삶은 소박함과 소탈함 그 자체였다. “시노드 회의장에서 기다리고 있으면 교종은 바티칸시국 안에서 나오는데, 가까운 거리지만 보통 (교종들은) 자동차로 오시거든요. 그런데 프란치스코 교종은 수행원도 없이 아주 오래된 가죽가방 하나 들고 털레털레 걸어오시더라고요. 진짜 소박하셨죠.” 방한했을 때는 기념 서명을 받으려고 큼직하고 두꺼운 서명판을 준비했는데, 눈에 안 보일 정도로 작은 글씨로 ‘프란치스코’라고만 쓰여있었다고 한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동성애자 커플에 대한 사제의 축복 허용, 여성의 고위직 임명, 교황청의 재정 투명성 확보 같은 교회 개혁에 힘썼지만 강 주교가 가장 높게 평가하는 쇄신은 따로 있다. 마지막까지 성직자 중심의 수직적인 교회관 자체를 바꾸려 한 일이다. “과거 시노드 회의에 가면 계단식 강당 연단에 교종이 앉고, (그다음에) 주교들이 앉았어요. 수백명의 평신도가 앉는 의자는 따로 있었고요. 그런데 최근 회의 사진을 보니 원탁에 12명씩 주교, 신부, 평신도가 함께 앉아 있더군요. ‘교종이 정말 일을 세심하게, 제대로 하시는구나’ 하고 깜짝 놀랐어요.”

강 주교는 프란치스코 교황에겐 교회의 잘못을 사과하는 일이 가장 힘들었으리라 생각한다. 생전 프란치스코 교황은 성직자의 아동 성 학대와 교회의 캐나다 원주민 문화 파괴에 대해 고개를 숙였다. “그동안 교회가 저질렀던 실수와 잘못으로 피해를 입었던 사람들 앞에 수장으로서 ‘죄송하다’고 사과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에요. 마음이 아프셔도 용기를 내주신 건데, 교회 전체적으로는 참 잘하신 일이라고 생각해요.”

지난 23일 제주시 오등동 에밀타케주교관에서 만난 강우일 주교가 프란치스코 교황과 만났던 일화를 설명하고 있다. 허호준 선임기자 [email protected]

12·3 내란사태를 일으키고도 단 한 번도 사과하지 않은 윤석열 전 대통령을 두고 강 주교는 “지금 생각해봐도 정상적인 사고력, 판단력, 식별력을 가진 사람이라면 자기 발등을 찍는 일을 그렇게 아무렇지 않게 할 수 없을 것”이라며 “(헌법재판 탄핵심판) 과정에서 드러난 계엄 준비 과정을 보면서 ‘대한민국을 몇십년 퇴보시키려는 흉계가 꾸며지고 있었구나’ 하고 생각하니 소름이 돋았다”고 떠올렸다.

그래도 강 주교는 시민의 힘으로 내란을 극복하며 한국 민주주의의 역사를 다시 썼다고 평가했다. 강 주교는 “시민들이 추운 겨울날 계속 광장에 모인 게 결국은 헌재 재판관들에게 굉장히 큰 힘을 줬다”며 “(파면이라는) 그런 정의로운 결정이 나온 것도 시민들 덕분”이라고 말했다.

시민이 만들어낸 조기 대선에선 어떤 대통령이 당선돼야 할까. “우리 사회에 극단적인 대립구도가 형성돼 있는데 생각이 다른 사람도 포용할 수 있는 지도자가 필요해요. 미국과 중국이 으르렁대고 있는 상황이 한국엔 재앙으로 덮칠 수 있는데, 우리 정체성을 지키면서 외교적 압력을 이겨낼 수 있는 지도자면 좋겠어요.”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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