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전국 51개 지자체서 오염물질 검출
영풍 석포제련소 있는 봉화, 비소 검출 다수
영풍 석포제련소 있는 봉화, 비소 검출 다수
경북 봉화의 영풍 석포제련소에서 아연 제련공정 중 증기가 배출되고 있다. 영풍제련소 환경오염 공동대책위 제공
전국 곳곳에서 식수나 생활·농업·공업용수 등으로 사용되는 지하수가 중금속, 세균 등에 오염돼 있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비소 중독으로 인한 노동자 사망사고를 비롯해 다양한 환경오염을 일으키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 영풍 석포제련소 인근 지하수는 특히 오염이 심각했다.
24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김태선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환경부로부터 제출받은 ‘2022년 지하수 오염물질 검출 현황’을 보면 모두 51개 기초지자체에서 중금속 등 오염물질이 검출됐다. 2018~2023년 사이 지하수오염지역 조사에서는 지하수가 음용은 물론 생활용수, 공업용수로도 사용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한 것으로 나타난 지역이 다수 확인됐다. 국립환경과학원이 2023년 2000개 관정을 대상으로 실시한 표본조사에서도 61.9%(1237건)가 마시기에 부적합한 것으로 나타났다. 2023년 기준 전국의 상수도 보급률이 97.9%에 달하지만 여전히 지하수가 식수나 생활용수 등으로 사용되는 지역은 존재한다.
수질기준에 부적합한 지하수에서 가장 많이 확인된 중금속 물질은 맹독성인 비소다. 경북 봉화, 전북 진안, 충북 충주, 경북 울진, 강원 원주, 강원 홍천 등에서 부적합한 지하수들이 확인됐다. 특히 경북 봉화의 지하수에선 15회의 수질검사에서 8차례나 부적합 사례가 확인됐다. 봉화는 비소 중독으로 노동자 4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영풍 석포제련소가 있는 지역이다. 석포제련소 인근 지역 지하수의 비소 오염 실태가 공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페놀의 경우 경기 이천, 경남 창원, 전남 고흥, 전남 무흥, 충북 보은 등에서 부적합 사례가 확인됐다.
환경부가 지하수 오염이 우려되는 지역을 선정, 조사하는 지하수오염지역 조사 및 관리사업에서도 석포제련소 부근의 비소 및 불소 오염 실태가 확인됐다. 한국환경공단이 2022년 실시한 조사 결과 봉화군 소천면 및 석포면 일대에서는 비소와 불소 항목이 수질기준을 지속적으로 초과하고 있으며, 비소는 최대 0.283㎎/l, 불소는 최대 3.001㎎/l까지 검출됐다. 환경공단이 조사를 실시한 석포면 일대에는 제련소 및 폐광산이 포함돼 있다.
환경공단은 사용용도 기준을 초과한 지점들은 실사용자 및 지자체에 알려 해당관정의 원상복구 또는 사용용도 등을 제한할 필요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또 수질기준 지속초과지점 인근의 지하수 개발·이용을 가급적 자제하도록 유도하고, 음용수로 이용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소천면 일대에서도 고농도의 불소가 검출되면서 음용을 제한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비소 역시 일부 지점에서 수질 기준을 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경북 봉화의 영풍 석포제련소 1공장에서 배출가스가 뿜어져 나오고 있다. 녹색연합 제공
석포제련소 부근에서는 다른 중금속의 오염 실태도 확인된다. 대구지방환경청이 33곳의 관정에서 지하수 시료를 채취해 분석한 결과, 카드뮴이 공업용수 기준(0.02mg/ℓ)을 최대 3만배 이상 초과(0.28∼753mg/ℓ)했다. 일부 지하수에서는 수은, 납, 크롬 역시 공업용수 기준을 초과했다.
이밖에 전북 익산 어양동의 제1국가산업단지 인근과 전주 덕진구 일반산업단지 인근, 인천 부평구 청천동 한국수출국가산업단지 인근 등에서는 트리클로로에틸렌(TCE), 테트라클로로에틸렌(PCE)의 농도가 높게 나타났다. 환경공단은 이들 지역에 대해 오염이 확인된 생활용 관정은 이용중지 또는 시설폐쇄를 유도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전주 덕진구의 경우 지하수 흐름 하류에 전주천이 있어 지하수 오염이 확산될 경우 지표수도 오염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경북 구미 공단동 구미국가1산업단지, 인천 남동구 고잔동 남동국가산업단지, 부산광역시 사상구 학장동 일대 산업단지, 청주시 흥덕구 송정동 일대 산업단지에서도 TCE와 PCE가 높게는 기준치의 25배가량 검출됐다. 이들 지역에 대해서도 환경공단은 지하수 이용을 중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환경공단은 청주시 흥덕구 송정동 일대의 TCE, PCE 오염에 대해 “대상지역은 산업단지가 위치하며, 입주 업종이 기계, 전기·전자, 석유화학, 섬유피복 등으로 해당 업종의 특성을 살펴봤을 때 염화유기용제에 의한 지하수 오염 개연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공단은 “오염원으로 추정되는 업체와 그 주변을 대상으로 정밀조사 범위를 설정하여 오염 개연성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높은 농도의 TCE, PCE에 노출되면 간과 신장에 유해한 영향이 나타날 수 있다. 낮은 농도라도 오랫동안 지속적으로 노출되면 두통, 현기증, 졸음 등 신경계에 유해한 영향이 나타날 수 있다. 국제암연구소(IARC)는 TCE와 PCE를 “사람에게 암을 일으킬 수 있는 물질”을 의미하는 2A군 발암물질로 분류하고 있다.
서울시보건환경연구원이 2022년 서울 소재 유출지하수 140개 지점에서 과불화화합물(PFAS) 농도를 분석한 결과 모두 14곳에서 기준치를 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대 보건대학원 환경보건학과 연구진이 국내 미군기지 4곳 주변 지하수의 과불화화합물을 분석한 결과에서도 먹는물 기준치를 넘는 농도가 나타났다.
김태선 의원은 “국민 건강은 물론, 농업과 생태계의 지속 가능성에도 중요한 역할을 하는 지하수가 중금속과 발암물질에 오염된 상태로 사용되고 있는 심각한 상황”이라면서 “석포제련소 인근에서 검출된 맹독성 비소는 매우 심각한 문제로, 정부는 오염 지역 실태를 철저히 조사하고 지하수 이용 제한 등 신속한 대응에 나서야 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