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AFP 연합뉴스

중국이 미국의 고율 상호관세에 반발해 미국산 일부 반도체 제품에 부과했던 125%의 보복관세를 최근 조용히 철회했다고 외신이 보도했다. 에탄과 의료 장비 등에 대한 관세 면제도 검토되고 있다는 보도도 나왔다.

미국 시엔엔(CNN)은 25일 중국 광둥성 선전시의 3개 반도체 수입 기관 관계자를 인용해 “메모리칩을 제외한 집적회로(IC) 제품에 대해 고율 관세가 면제됐다”고 전했다. 이들 기업은 수입 신고 과정에서 이런 사실을 인지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기업 관계자는 “정기 통관 과정에서 면제 사실을 알게 됐다”며 “고객 사이에 빠르게 소문이 퍼지고 있다”고 시엔엔에 말했다. 면제 조처를 받은 품목은 집적회로 가운데 메모리 반도체가 아닌 시스템 반도체에 한정된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은 지난 12일 미국이 중국산 제품에 145% 관세를 부과하자 이에 맞대응해 미국산 제품에 125% 관세를 적용하기로 했다. 그러나 반도체 산업에서 미국 의존도가 높아 일부 품목에 한해 관세를 철회할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중국은 미국의 수출 통제 등에 대응해 반도체 생산 능력을 확충했지만, 여전히 대외 의존도가 높은 품목이다. 지난해 기준 중국의 미국산 반도체 수입액은 약 117억달러에 달했다.

기술 애널리스트 레이 왕은 시엔엔에 “이번 면제 조치는 인텔, 텍사스 인스트루먼츠, 글로벌파운드리 등 미국 칩 제조사의 대중국 수출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라며 “중국이 (반도체 분야에서) 완전한 자립을 하지 못한 상황에서 전략적인 유연성을 보인 것”이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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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산 시스템 반도체는 중국에 수입되어 자율주행 차량, 스마트폰 등의 부품으로 쓰인다. 미국은 자국 시스템 반도체의 중국 수출을 엄격하게 통제해, 인공지능(AI) 가속기·슈퍼컴퓨터 등에 쓰이는 제품은 별도 수출 허가를 받도록 지정했다.

중국 정부는 이에 관해 전면 부인하지 않은 채 “아는 바 없다”는 입장을 보였다. 이날 정례 브리핑에서 궈자쿤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관련된 기자 질문에 “구체적인 정황을 파악하지 못했다”며 “소관 부서에 문의하라”고 답했다.

미국 블룸버그는 중국 당국이 의료 장비와 에탄과 같은 산업용 화학제품 등 일부 미국산 수입품목에 한해 관세를 면제해주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보도했다. 중국은 세계 최대 플라스틱 생산국이지만, 상당수 중국 업체들이 원료인 에탄은 미국산에 의존하고 있다. 중국의 병원들도 지이(GE)헬스케어와 같은 미국 기업이 생산한 자기공명영상(MRI) 촬영장치 등의 고급 의료 장비에 기대고 있다. 중국 당국은 항공기 리스(임대) 비용도 관세 면제 대상에 포함시킬지 고려 중이라고 블룸버그는 전했다. 항공기는 고가이기 때문에 리스를 하는 경우가 많은데, 관세 증가로 중국 기업에 재정 부담이 커지는 것 때문이다.

다만, 아직 검토 단계이기 때문에 실제 면제 조치까지 이어지지 않을 수 있다. 메이뱅크 증권의 기관 주식 영업 책임자인 웡콕홍은 “무역 전쟁의 긴장이 완화되는 한걸음”이라고 말했다고 블룸버그는 전했다. 그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미국과 중국이 곧바로 갈등을 해소할 것이라고 기대하지는 않지만, “최악의 상황은 정말로 지나갔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라고도 말했다고 블룸버그는 전했다.

베이징/이정연 특파원

한겨레

이정연 기자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