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끝> 1928년 월터 콜린스 실종 사건
실종 후 돌아온 월터... 키·발 사이즈 작아져
"내 아들 아니다" 했지만 경찰이 강제입원
월터 살해 자백 나오자 "사실 아들 사칭했다"
경찰은 사과도 없고 배상금도 지급 안 해
실종 후 돌아온 월터... 키·발 사이즈 작아져
"내 아들 아니다" 했지만 경찰이 강제입원
월터 살해 자백 나오자 "사실 아들 사칭했다"
경찰은 사과도 없고 배상금도 지급 안 해
편집자주
'콜드케이스(cold case)’는 오랜 시간 미해결 상태로 남아 있는 범죄 사건을 뜻하는 말입니다. 격주 금요일 세계 각국의 미제사건과 진실을 좆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해온 콜드케이스가 이번 100회를 끝으로 연재가 종료됩니다. 5년 3개월간 애독해 주신 독자 여러분, 고맙습니다.크리스틴 콜린스의 아들 월터 콜린스(왼쪽)와 '가짜 월터' 아서 허친스 주니어. 로스앤젤레스 공립도서관
아무리 봐도 내 아들이 아니었다. 크리스틴 콜린스는 5개월 만에 경찰이 되찾아다준 아들을 집에 와서 구석구석을 살폈다. 아무리 봐도 아들과는 얼굴형도, 눈맵시도 심지어 목소리도 달랐다. 하지만 "너는 누구냐"는 질문에 이 낯선 아이는 내 아들, 월터 콜린스의 이름을 댔다.
로스앤젤레스(LA) 경찰은 실종된 월터를 찾았다며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시민들도 월터가 돌아온 것을 축하했다. 크리스틴은 세상 전체가 자신을 상대로 사기극을 벌이는 기분이었다. 집에 돌아온 아이는 월터와 닮긴 했어도 결코 월터는 아니었다. 자식 못 알아볼 엄마가 있을까. 그러나 경찰은 물론이고 언론조차 제 아들을 부정하는 크리스틴을 향해 "이상한 여자" "미친 여자"라고 손가락질했다.
월터 콜린스 실종사건
크리스틴의 아들 월터 콘래드 콜린스(7)는 1928년 3월 10일 실종됐다. 크리스틴에게 10센트를 받아 영화관으로 간 게 마지막 모습이었다. 크리스틴은 남편 조셉 콜린스가 1923년 절도 혐의로 수감된 뒤 아들을 혼자 키웠다. 혹시나 남편에게 원한을 가진 사람이 월터를 납치했을까 봐 애가 탔다.
LA 시민들도 월터 실종에 동요했다. 지난해 12월 프랜시스 마리온 파커(12)라는 여자아이가 납치된 뒤 훼손된 시신으로 발견된 충격이 채 가시지 않았기 때문이다. 파커를 납치한 범인은 몸값으로 1,500달러를 받은 직후 달리는 자동차에서 파커의 시신을 버리고 도주했다. 파커는 팔다리가 잘리고, 절개된 복부엔 천 조각이 채워 넣어져 있었다. 잔혹한 광경에 LA경찰의 무능이 아이를 지키지 못했다는 비판 여론이 들끓었다.
월터 콜린스의 사진. 크리스틴 콜린스가 아들의 특징을 하단에 적어뒀다. 로스앤젤레스 공립도서관
그래서 더더욱 경찰은 이번에야말로 새로운 실종 아동 월터를 반드시 찾아내야만 했다. 또 실패한다면 거센 비난 여론에 LA 경찰 조직이 온전할 리 없었다. 4월 1일 이탈리아인 부부가 월터와 비슷한 아이를 데리고 글렌데일의 한 주유소를 방문했다는 제보가 있었지만 허탕을 쳤다. 월터가 사라진 곳 주변에 있는 링컨 파크 호수 바닥까지 샅샅이 뒤졌다. 월터를 찾을 순 없었다. 담당자인 조셉 존스 경감의 초조함도 커져갔다.
월터가 나타났지만 월터가 아닙니다
반년 가까이 감감무소식이던 1928년 8월 18일. 크리스틴은 드디어 월터를 찾았다는 연락을 받았다. 일리노이주 디캘브에서 경찰의 보호 아래 있던 한 소년이 자신이 월터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크리스틴은 디캘브에서 보낸 흐릿한 전신 사진을 보고 월터가 맞는 것 같다고 경찰에 말했고, 자비로 70달러를 내고 월터를 LA로 데려왔다.
극적인 재회의 기쁨을 기대했지만, 막상 나타난 아이 모습은 생경했다. 크리스틴은 이 아이는 자신의 아들이 아니라고 말했다. 경찰은 월터가 맞다고 주장했다. 아이는 어떻게 자신이 LA에서 일리노이주까지 갔는지, 친한 친구는 누구인지, 가장 좋아하는 장난감은 무엇인지 어떤 대답도 내놓지 못했다. 자신의 이름만은 월터라고 똑똑히 말했다.
크리스틴 콜린스. 로스앤젤레스 공립도서관
의사들도 경찰이 찾아낸 아이가 월터라고 판단했다. 충격으로 실종 당시 기억이 사라졌으며, 집에서 익숙한 물건들에 둘러싸여 있으면 곧 회복될 수 있다고 봤다. 이웃과 월터의 친구들도 월터가 돌아왔다고 생각했다.
세간의 비난은 크리스틴을 향했다. 경찰이 대대적인 수사를 통해 간신히 실종됐던 아들을 찾아줬는데, 알아보지도 못하는 비정한 엄마라는 것이다. LA타임스는 "월터는 너무나도 불쌍한 상태로 발견돼 친모조차 그를 알아보지 못했다"고 보도할 정도였다. 결국 크리스틴은 여론에 등 떠밀리듯 월터를 집으로 데려왔다.
월터 아니라는 증거 댔더니… 정신병동 강제입원
집에 데려다 놓고 보니, 이 아이가 내 아들이 아니란 생각은 확신에 가까워졌다. 집에 데려온 아이는 월터보다 키가 작았고, 월터보다 작은 신발을 신었다. 결정적으로 과거 월터가 받았던 충치 치료의 흔적을 이 아이에게선 찾을 수 없었다.
크리스틴은 약 3주가 지난 9월 8일 아이를 다시 경찰서로 데려갔다. 앞선 근거들을 대며 이 아이는 월터가 아니라고 재차 주장했다. 사건을 마무리하고 싶었던 경찰은 격분했다. 존스 경감은 크리스틴에게 "당신은 미쳤으니 정신병원에 가야 한다"고 소리쳤다. 실제, 크리스틴은 그날 곧바로 LA 카운티 정신병원에 강제 입원됐다. 크리스틴은 입원 5일째 정신질환이 없다는 전문의의 판정을 받고서야 병원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월터는 양계장 살인사건으로 죽었다?
크리스틴이 병원에서 나온 다음 날, 경찰에 새로운 제보가 들어왔다. 내용은 충격적이었다. LA 카운티 와인빌의 양계장 주인 고든 노스콧이 어린 남자아이들을 유인해 성폭행하고 살해했는데, 피해자가 20여 명에 달하고 그중에는 월터도 있었다는 것이다. 돌아온 아이가 월터라고 믿었던 LA 시민들은 어안이 벙벙했다. 그제야 존스 경감은 언론에 "실은 크리스틴이 당초 이 아이가 자신의 아들이 아니라고 밝히긴 했었다"며 뒤늦게 둘러댔다.
필적 감정을 위해 글씨를 쓰고 있는 '가짜 월터' 아서 허친스 주니어. 로스앤젤레스 공립도서관
경찰이 월터를 찾았다고 주장한 지 약 한 달 만인 9월 19일, 결국 자신이 월터라고 주장해온 아이는 자신이 진짜 월터가 아니라고 실토했다. 아이오와주 출신 11세 아서 허친스 주니어였다. 허친스는 가출한 뒤 디캘브의 한 카페에서 머물고 있었는데, 그중 한 손님이 자신에게 "실종된 월터 콜린스를 닮았다"고 말했다고 한다. 공짜로 캘리포니아에 가고 싶어 월터를 사칭했다는 것이다. LA로 달려온 허친스의 어머니는 아들을 한눈에 알아봤다.
더없이 궁색해진 경찰은 양계장을 쥐잡듯 수색했다. 하지만 월터의 시신은 나오지 않았다. 노스콧은 말을 자꾸 바꿨다. 어느 날은 자신이 월터를 죽였다고 했고, 또 다른 날은 월터를 본 적이 없다고 했다. 노스콧은 소년 3명을 살해한 혐의로 1929년 2월 사형을 선고받았다. 공식적인 피해자 3명에 월터는 포함되지 않았다.
아동 성폭행·살해범 고든 노스콧(가운데)이 1928년 경찰에 연행되고 있다. 로스앤젤레스 공립도서관
크리스틴은 월터가 살아 있다고 믿었다. 노스콧이 사형 집행 직전인 1930년 10월 면회를 온 크리스틴에게 월터를 죽이지 않았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실종됐던 한 소년이 1935년 돌아왔는데, 자신이 노스콧의 양계장에 붙잡혀 있었다고 했다. 크리스틴에겐 월터가 살아 있으리란 희망이 더 커진 셈이다.
끝끝내 사과도, 배상도 하지 않은 경찰
경찰이 찾은 아이는 가짜 월터였지만 존스 경감은 사과 한마디 없었다. 크리스틴은 자신을 기만하고 강제 입원시킨 존스 경감을 상대로 1928년 10월 소송을 제기했다. 2년 뒤 존스 경감이 1만800달러를 배상해야 한다는 판결이 나왔다. 크리스틴은 이 돈을 받아 자체적으로 월터 수색에 나설 생각이었지만, 존스는 돈을 내놓지 않았다. 제 식구 감싸기에 나선 경찰은 존스가 배상금을 지급하지 않아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크리스틴은 법원에 여러 차례 항의했지만 법원도 미적댔다.
크리스틴은 1964년 75세로 세상을 떠나기 직전까지 아들을 찾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그러는 동안에도 경찰은 한때 아들도 알아보지 못하는 미친 엄마로 손가락질 받았던 크리스틴에게 진심 어린 사과도, 한 푼의 피해 보상금도 내주지 않았다. 100년 가까이 지난 지금까지도 월터 콜린스 사건은 미국 경찰의 무능·강압 수사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회자된다.
2008년 크리스틴 콜린스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개봉된 영화 '체인질링' 포스터. 유니버셜픽쳐스 제공
크리스틴의 이야기는 2008년 안젤리나 졸리 주연의 영화 '체인질링’으로 제작됐다. 졸리는 영화 개봉 당시 인터뷰에서 "크리스틴 콜린스는 모두가 자신을 외면해도 포기하지 않았다. 아들을 위한 정의를 바랐던 그녀는 영웅이었다"는 헌사를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