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안부 마지막 7일, 그 곁의 기록]
③ 생존자 이용수 할머니의 곁
대구 역사관 지킨 서혁수 시민모임 대표
정치 공격에 시달리고도 피해 회복 노력
남은 생존자들과 소통·연대도 어려워져
"정부 다시 믿어볼 것... 일본 배상받아야"
③ 생존자 이용수 할머니의 곁
대구 역사관 지킨 서혁수 시민모임 대표
정치 공격에 시달리고도 피해 회복 노력
남은 생존자들과 소통·연대도 어려워져
"정부 다시 믿어볼 것... 일본 배상받아야"
편집자주
위안부 피해 생존자는 이제 7명 남았습니다. 세계 곳곳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는 약 20만 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되는데, 국내에 신고·등록된 피해자 수는 고작 240명(2022년 기준). 대부분이 제대로 된 일본의 사과도 배상도 받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지요. 남은 일곱 분의 할머니도 평균 나이 95.7세입니다. 긴 세월 싸워온 할머니들과 이들의 곁을 지킨 이들을 만났습니다.8일 대구 중구 희움 일본군 '위안부' 역사관에서 이용수(97) 할머니가 봄꽃이 핀 나무를 바라보고 있다. 그는 꽃이 다시 핀 것을 기뻐하면서도 또 한 해가 간 것을 안타까워했다. 대구=강예진 기자
"하마('벌써'의 경북 사투리) 날이 가고, 달이 가고, 해가 갔다. 이 판에 내가 어떻게 (무엇을 더) 말해야 되는고···."
지난 8일 오전 대구 중구 희움 일본군 '위안부' 역사관 뒷마당. 일본군 '위안부' 생존자인 이용수(97) 할머니는 흐드러진 봄꽃을 보며 "1년이 지나 꽃이 예쁘게 폈다"고 잠시 웃었다. 하지만 '위안부' 문제 해결에 대한 얘기로 돌아오자 이씨는 한 해가 또 지났다며 말을 잇지 못했다. 달라진 것 없이 또다시 맞는 봄을 마냥 반길 수 없었다.
이날 이씨는 대화를 나누다가도 돌연 '위안부' 피해 전후에 대한 회상이나 가슴에 맺힌 하소연으로 쉽사리 넘어갔다. 옆에서 이씨 상태를 살피던 서혁수 정신대할머니와함께하는시민모임 대표는 그때마다 "할매, 또 얘기가 산으로 가네"라며 능숙하게 분위기를 환기했다. 그러면 이씨는 굳었던 표정을 풀고 또 잠시 웃었다.
정의연 사태로 가장 힘들었던 때, 곁을 지킨 대표
8일 대구 중구 희움 일본군 '위안부' 역사관에서 이용수 할머니와 서혁수 정신대할머니와함께하는시민모임 대표가 '위안부' 피해자들의 생전 사진을 보며 대화하고 있다. 대구=강예진 기자
이씨는 14세 무렵이던 1942년쯤 일본군에 의해 대만에 있는 위안소로 끌려갔다. 모진 전기 고문 등 각종 학대에 시달린 끝에 해방 이후 1946년에야 귀국선에 올라 한국으로 돌아왔다. 대구에서 가정부나 보험회사 외판원 등을 전전하던 그는 1993년 '위안부' 신고 이후부턴 국내외에서 '위안부' 역사를 알리기 위해 노력했다.
서 대표는 대학생 때부터 '위안부' 문제에 관심이 많아 대구 지역에 살던 '위안부' 피해자들과 가깝게 지냈다. 그때 당시 이씨에 대해선 "할머니가 너무 바빠 다른 할머니들과 더 자주 지냈다"고 회상했다. 차츰 사망자가 늘면서 이들의 유품과 기록을 모아둘 공간이 필요하단 생각이 들었고, 시민들과 십시일반 돈을 모아 2015년 역사관을 세웠다.
8일 대구 중구 희움 일본군 '위안부' 역사관에서 서혁수 정신대할머니와함께하는시민모임 대표가 한국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그는 2015년 시민 모금을 통해 역사관을 세운 이후 지금까지 운영을 도맡고 있다. 대구=강예진 기자
두 사람이 이토록 각별해진 건 서 대표가 시민모임 대표를 맡게 된 2019년 이후, 마침 이씨가 정의기억연대 논란으로 인해 유독 힘들어할 때였다.
그때부터 서 대표가 이씨 곁을 지켰다. 서 대표는 "안 그래도 할머니가 인터뷰 전날이면 거의 못 주무실 만큼 생각이 많은데, 특히 당시 주위로부터 온갖 정치적 공격을 많이 받아 고생이 심했다"며 "할머니를 찾아오는 이들에게 시달려 자택도 못 들어가고 호텔에서 18개월을 지냈을 정도였다"고 말했다.
서 대표와 이씨는 별도 지원도 없이 낡아가는 역사관을 필사적으로 지키고 있다. 비가 많이 내리는 날이면 서 대표는 건물에 새는 비를 홀로 밤새 퍼낸다고 했다. 수년째 이런 상황을 지켜봐온 이씨는 크게 안타까워했다. 그는
"대구시가 역사관 옆 건물을 사서 역사관에 기증해주고, 좋은 차 한 대를 (서 대표에게) 지원해 주는 게 꿈에나 생시에나 내 소원"
이라고 거듭 말했다.지금도 증언이 가장 힘든 이들... 연대도 어려웠다
이용수 할머니가 2월 18일 인천 연수구 인천적십자병원 장례식장에서 열린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고(故) 길원옥 할머니 발인식에서 고인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고 있다. 뉴시스
서 대표와 이씨가 애쓸 무렵 그동안 함께 했던 피해자 3명은 이미 생사와 싸우고 있었다. 당시 이들을 돌봤던 간호사 배승주(가명)씨에 따르면, 박옥선(101) 할머니는 이미 의사소통이 안 될 만큼 건강이 악화돼 방에 홀로 누워 지냈다. 강일출(97)·이옥선(98) 할머니도 혈압 떨어지는 빈도가 늘며 위급상황이 자주 찾아왔다. 이씨는 이들을 떠올리며 한탄했다.
"(같이) 얘기를 몬하잖아요. 다 누워 있잖아."
지난 2월 고(故) 길원옥 할머니의 장례를 지킨 생존자도 이씨뿐이었다. 길씨 관을 어루만지며 "큰일했다, 잘 가"라고 말하던 이씨의 모습은 많은 이들을 먹먹하게 했다. 이렇듯 다른 피해자들과도 각별했으리라 짐작해 함께 나눈 추억이 있는지 물었지만 돌아온 답은 뜻밖에도 짤막했다.
"서로 (위안소) 어디로 끌려갔는지도 잘 모르고, 서로 (겪은 일을) 묻지도 않았지."
서 대표는
"할머니가 수십 년째 증언을 반복하고 있지만 지금도 증언을 앞뒀거나 증언하고 났을 때를 가장 힘들어한다"
고 전했다. 다들 같은 심정으로 차마 깊은 속내를 못 나눈 건 아닐까. 피해자 간의 연대조차 어려웠던 시절을 지나, 이씨는 말년에 이르러서도 누구 하나 마음껏 의지하지 못한 채 외로운 투쟁을 감내하고 있다.갈수록 심해지는 혐오에도..."내는 내로서 할 것 다 했다"
이용수(가운데) 할머니와 법률지원단 등 관계자들이 2023년 11월 23일 서울 서초구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사무실에서 열린 항소심 선고 결과에 대한 입장 발표 기자회견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이씨와 다른 위안부 피해자 유족 등은 일본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2차 손해배상 청구 소송 항소심에서 1심 결과를 뒤집고 승소했다. 뉴스1
최근 이씨를 향한 대중의 혐오·비난은 더욱 심각해졌다. 주로 '증언의 구체적인 내용이 일관되지 못해 진정성이 의심된다'거나 '반복적인 문제 제기가 피로감을 키운다'는 식이었다. 2020년엔 비방하는 댓글의 수위가 너무 심해 일부 악플러들을 고발했다가 반성문을 받고 선처하기도 했다.
서 대표는 "'위안부' 증언은 피해자들이 50년 세월을 버틴 끝에 60대가 돼서야 처음 내놓은 것"이라며 "당연히 증언 일부에 왜곡이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문제의 본질은 그게 아닌데도 할머니가 거짓말쟁이라고 폄하되는 일이 너무 많았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이씨는 위축되지 않고 새 역사를 써나갔다. 2007년 미국 하원에서 '위안부' 결의안 만장일치 통과를 이끌어낸 데 이어, 2023년엔 일본 정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최종 승소했다. "내는 내로서 할 것 다 했어요." 이씨는 당당하게 말했다.
서 대표와 이씨는 남은 과제로 국제사법재판소(ICJ)의 판단을 받는 일을 꼽았다. 서 대표는 "이번 탄핵 정국에서도 인용 여부를 두고 세상이 두 갈래 진영으로 크게 갈렸지만 결국 헌법재판소의 판단 이후 분열이 어느 정도 봉합되지 않았느냐"며
"할머니도 이제는 일본과의 소모적인 공방을 계속하기보다 '위안부' 피해에 대해 국제적 인정을 받길 바라신다"
고 전했다.또 이씨는 미래 세대에도 과제를 남겼다.
"일본하고 원수 지지 말고 친히 지내요. 일본캉 서로 왕래하면서 ('위안부') 역사를 길이길이 보전하고 밝혀야 된다."
선거 유세 때의 약속 배반한 정부... 고민은 생존자의 몫
2021년 9월 11일 윤석열 당시 국민의힘 대선 경선 후보가 대구 중구 희움 일본군 '위안부' 역사관을 찾아 이용수 할머니와 인사하는 모습. 연합뉴스
지금껏 수많은 정치인들이 선거철마다 이씨와 손을 맞잡고 '위안부' 문제 해결을 손쉽게 공약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도 예외는 없었다. 2021년 9월 국민의힘 대선 경선 후보 시절 이씨를 찾아 "대통령 당선이 안 되더라도 일본의 사과를 반드시 이끌어 내겠다"고, 이씨와 손가락까지 걸고 철석같이 약속했다.
인터뷰 말미에 이씨는 갑자기 윤 전 대통령을 언급하더니 이렇게 말했다. "(2023년 수요집회에서) '대통령 말이 거짓말은 아니겠지요'라고 했는데,
지금까지도 (윤 전 대통령이) 내한테 참말을 했는지 거짓말을 했는지 생각하고 있다
"고. 정부에 더는 '위안부' 문제 해결에 대한 의지가 없다고 봐야 하는 건지 고민된다는 뜻이었다. 내내 단단했던 이씨 목소리에서 지친 기색이 느껴졌다.다음 날 이른 오전 이씨로부터 먼저 연락이 왔다.
"내 밤새 고민했는데, 정부가 거짓말했다꼬 생각 안 할라고요."
정부를 끝까지 믿어보겠단 뜻이었다. 그러더니 17일 이씨는 고심 끝에 또다시 전화를 걸어왔다. "아무래도 정부가 거짓말한 게 맞잖아요. 대통령도 거짓말을 하는데 내는 이제 누구를 믿어야 좋을지 모르겠어요. 내 또 누구를 믿을 수 있습니까?"
정부는 '위안부' 피해자에게 거짓말을 거듭했고 피해자는 정부를 더는 믿지 못하게 됐다. 그토록 진실을 외쳤건만, 여정의 끝자락에 이른 생존자 손엔 무엇 하나 남은 게 없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