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부당한 외부 압력·법관 보호 방안 보고서]
실명 근조화환·온라인 모욕에 정치권 공격도
"신규 인재 안 올까 불안" "일할 의지 꺾는다"
법관들 "문제 심각, 법원 차원 조직적 대책을"
윤석열 당시 대통령에 대한 구속영장이 발부된 1월 19일 새벽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지법에 지지자들이 진입해 기물을 파손하는 등 난동을 부리고 있다. 뉴스1


"강남역 사거리에 영장전담 부장판사 사진이 도배하듯 걸려 있는 걸 보고 판사 생활 중 그때만큼 무기력했던 적이 없습니다."


2023년 9월 대법원과 서울 강남역 인근에는 당시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유창훈 부장판사 사진과 함께 '정치판사' 등의 문구가 적힌 초대형 현수막이 내걸렸다. 유 부장판사는 검찰이 이재명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표에게 청구한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대법원 앞에는 '사법부 사망' 등의 문구가 적힌 근조화환 수백 개가 늘어섰다.

2023년 10월 9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 이재명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구속영장을 기각한 당시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유창훈 부장판사를 규탄하는 문구가 적힌 근조화환이 줄지어 놓여 있다. 뉴스1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건이 사법부에 몰리면서 유 부장판사 사례처럼 판사 개인을 향한 공격이 집요하고 다양한 방식으로 나타나고 있다. '신상털이'로 시작된 공격은 올해 1월 '서울서부지법 난입·폭동'이라는 초유의 사태로 이어졌다. 법원 안팎에선 판사 개인에 대한 공격을 넘어 사법부 전체에 미치는 악영향을 우려했다. 실제로 외부 공격에 무기력하게 방치된 판사들은 재판 진행에 대한 의지와 동력마저 사라지고 있다며 고충을 토로하고 있다.

23일 한국일보가 입수한 '법관에 대한 부당한 외부적 부담의 요인 분석과 법관의 보호 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판사들은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다양한 외부 공격 사례들을 털어놓았다. 이번 조사는 판사 내부망인 '코트넷'을 통해 지난해 11월 14일부터 열흘 동안 전국 법관 690명을 대상으로 실시됐다.

가장 많이 언급된 사례는 법원 앞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판사의 실명과 사진을 공개한 뒤 모욕을 주는 현수막이다. A판사는 "인신공격은 반드시 대응이 필요하다"면서 "판결 내용과 무관한 개인 신상 공개는 표현의 자유와 국민의 알권리와는 직접 관련이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확성기를 동원해 특정 판사와 사건을 거론하고, 유튜브 생중계 등 법원 청사 주변에서 진행되는 일부 행위들을 법원에선 외부 공격으로 보고 있다.

소셜미디어·정치인... '일할 의지' 꺾는 공격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판사 개인의 신상정보가 노출되는 경우도 허다하다. B판사는 한 블로그에서 자신의 얼굴 사진과 약력 등이 판결과 함께 게시된 것을 발견했다. 동명이인 판사가 맡은 재판이었다. '처음엔 내리겠지' 싶어 기다렸지만 1년 넘게 삭제되지 않자 직접 포털사이트에 삭제 요청을 할 수밖에 없었다. "판사 명단을 정치적 성향에 따라 분류한 온라인 게시물을 본 적이 있다"는 답변도 나왔다.

선고 직후 이어지는 정치권 공격을 견디기 어렵다는 호소도 있었다. C판사는 이재명 전 민주당 대표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1심에서 유죄 판결이 내려진 뒤 "재판장의 개인 일탈행위"라고 쓴 정치인의 글을 가리키며 "정치권에서 판결 결과에 따라 특정 법관이나 재판부를 폄훼하는 공세가 많다. 적극적인 대응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판사에 대한 외부 공격이 이어지면서, 가뜩이나 업무 부담이 큰 형사재판부 기피 현상이 심화할 것이란 우려도 있었다. D판사는 "법원 앞 현수막이라도 떼어달라. 형사재판을 점점 기피하게 된다"고 호소했다. 장기적으로 우수 인재 유입에 방해가 될 것으로 걱정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법원에 대한 공격이 신규 인재의 판사 지망을 망설이게 만드는 요소가 된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답한 법관은 48.6%에 달했다.

"대법원·각급 법원 대응 프로세스 필요해"

그래픽=신동준 기자


판사들은 대법원이나 각급 법원 차원의 조직적 대응을 촉구했다. 외부 공격이 형사적으로 명예훼손이나 모욕죄에 해당한다고 해도 판사 개인이 직접 나서 법적 대응을 하긴 쉽지 않기 때문이다. E판사는 "판사 얼굴을 대형 현수막에 걸고 비난해도 아무런 조치를 취할 수 없는 게 현실"이라고 하소연했다. 설문조사에 응답한 법관의 69.5%는 현재로선 '법원 조직의 대응 프로세스가 마련돼 있지 않다'고 답했다.

외부의 부당 공격에서 법관을 보호할 가장 필요한 제도로는 법원의 공식적인 입장 표명 등 언론 대응 강화(68.8%)가 꼽혔다. 프랑스 최고사법관회의는 사법부나 법관에 대한 외부 공격이 있을 때 적극적으로 공개성명을 발표한다. 비강제적 수단을 통해 재판의 독립을 지키려는 취지다.

법관과 그 가족의 개인정보 및 신변 보호 강화 요청도 나왔다. 미국에선 2022년 '법관보호법'을 제정해 법관과 가족에 대한 직접적 위협을 최대한 차단하고 있다. 판사나 보호 대상자가 신청하면 정부가 관리하는 정보에 대한 접근을 차단하고, 정보를 공개하거나 유통시키지 못하도록 한다. 법관과 가족이 폭력에 노출되지 않도록 보호하는 것이다. 법원모욕죄나 사법기능방해죄, 법관폭행죄 도입 등 형사적 제재가 필요하단 요청도 있었다.

행정처, 보완책 마련... 다음 달 자문위 상정

23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뉴시스


법원행정처는 이번 조사를 토대로 법원 차원에서 대응할 수 있는 대책 마련을 검토 중이다. 형사적 제재 방안 등 입법 지원이 필요한 부분과 제도 개선 방안 부분으로 구분해 다음 달 14일 열리는 사법정책자문위원회에 보고할 예정이다. 행정처 관계자는 "공적 영역에 대한 표현의 자유는 존중돼야 하고 합리적 비판에는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면서도 "다만 그 한계를 넘어선 법관 개인 및 재판부에 대한 무분별한 공격은 사법부 독립을 해치고 재판 신뢰를 떨어뜨려 국민들에게 피해가 돌아갈 수 있다"고 강조했다.

연관기사
• 도 넘는 '좌표찍기'… 판사 절반 "외부 압력받았다"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042314050002222)

한국일보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48156 ‘부산 돌려차기’ 피해자, 2차 가해자에 되레 피소…무슨일 new 랭크뉴스 2025.04.24
48155 [단독] "앉아 계시라" 우원식 작심 비판…한덕수 "하시라 그래" new 랭크뉴스 2025.04.24
48154 홍준표 "한덕수 이준석 비명계와 대선후보 단일화 하겠다" new 랭크뉴스 2025.04.24
48153 이 41%, 홍·김 10%, 한 8%…국힘 지지도 올라 오차범위내 new 랭크뉴스 2025.04.24
48152 '속도전' 지휘하는 조희대, 출근길 취재진 '슥' 보더니‥ [현장영상] new 랭크뉴스 2025.04.24
48151 MBK "홈플 등급 하락 예견 못해…회생절차 미리 준비 안했다"[시그널] new 랭크뉴스 2025.04.24
48150 ‘밥주는 아파트’ 지방서 속속 등장… ‘조망·조경’에도 힘준다 new 랭크뉴스 2025.04.24
48149 검찰, 문 전 대통령 뇌물혐의 기소…옛 사위 특채 의혹 new 랭크뉴스 2025.04.24
48148 민주·혁신 "검찰, 文 모욕주기 정치 기소‥검찰 개혁·해체가 답" new 랭크뉴스 2025.04.24
48147 [속보]‘공직선거법 위반’ 박상돈 천안시장 당선 무효 확정 new 랭크뉴스 2025.04.24
48146 한덕수 등장부터 “사퇴하라!” 고성…국회의장 한마디에 아수라장 [지금뉴스] new 랭크뉴스 2025.04.24
48145 국내 청소년도 ‘위고비’ 맞을 수 있다…12세 이상 투여허가 신청 랭크뉴스 2025.04.24
48144 우원식, 한 대행 면전서 “할 일, 말 일 구분하라” 랭크뉴스 2025.04.24
48143 [속보] LG디스플레이, 1분기 영업익 335억원 ‘흑자전환’… 관세 우려에 ‘선주문’ 효과 랭크뉴스 2025.04.24
48142 “매일 투자금 2% 수당 준다”···1408명에게 328억원 가로챈 일당 18명 송치 랭크뉴스 2025.04.24
48141 관세·정국불안에 주저앉은 한국경제… “年 1% 성장도 턱걸이” 랭크뉴스 2025.04.24
48140 [속보]아내 살해한 미국 변호사, 대법서 징역 25년 확정 랭크뉴스 2025.04.24
48139 홍준표 “입장 바뀌었다… 韓대행과 단일화 협상 가능” 랭크뉴스 2025.04.24
48138 이재명 45%·한동훈 21%·이준석 8%···가상 3자 대결[NBS] 랭크뉴스 2025.04.24
48137 달라진 홍준표 "반명 빅텐트, 한덕수뿐 아니라 이준석도 함께 할 것" 랭크뉴스 2025.04.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