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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화해위 신형식씨 진실규명 과정서 밝혀
김영호 통일부 장관이 2023년 10월11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외교통일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의원의 질의를 듣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1987년 이산하(66·본명 이상백)의 시 ‘한라산’을 책에 실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검거됐던 전 녹두출판사 전무 겸 편집장 신형식(65·전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연구소장)씨가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로부터 인권침해를 인정받았다. 이 사건과 관련해 지난해 9월 이산하 시인에 이어 두 번째 진실규명이다. 신씨가 당시 녹두출판사 사장이었던 김영호(65) 통일부 장관 쪽으로부터 만나자는 연락을 받고 약속장소에 나갔다가 체포됐다는 사실도 조사 결과 확인됐다.

진실화해위는 23일 오후 열린 제108차 전체위원회에서 ‘국가보안법 위반 불법구금 등 인권침해 사건’ 피해자 신씨에 대해 진실규명(피해 확인) 결정을 내리고 국가에 대해 공식사과와 피해 및 명예 회복을 위한 조치를 권고했다.

신씨는 1987년 4월 녹두출판사 전무 겸 편집장으로 재직하던 중 치안본부 대공3부 수사관들에 의해 불온서적을 제작·판매했다는 혐의로 연행돼 5월 서울지검으로 송치됐다. 당시 경찰이 신씨를 검거한 이유는 신씨의 출판사에서 낸 사회과학전문지 ‘녹두서평’ 창간호에 이산하 시인의 장편서사시 ‘한라산’이 실렸기 때문이다. ‘한라산’은 한국사회에 제주 4·3 사건의 실상을 폭로하며 충격을 준 작품이었다.

당시 내무부 치안본부는 “‘한라산’이 제주 4·3폭동을 의거로 미화시켰다”며 이산하 시인을 수배하고 검거를 위한 수사를 하던 중, 녹두출판사에서 ‘녹두서평’, ‘세계철학사’, ‘정치경제학 원론’ 등 불온서적을 제작·판매했다며 당시 출판사 대표 김영호와 전무 신형식을 대상으로 수사를 확대했다. 이들은 모두 검거돼, 김영호 장관은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과 자격정지 3년형을, 신씨는 징역 1년6월에 집행유예 3년, 자격정지 2년형을 선고받았다. 도피했던 이산하 시인은 같은 해 11월 검거돼 징역 1년6개월, 자격정지 1년을 받았다.

진실화해위 조사 결과, 신씨는 1987년 4월25일 치안본부 수사관들에 의해 검거된 뒤 구속영장이 발부·집행된 같은 해 4월28일까지 불법 구금된 채 구타 및 가혹행위를 당하면서 심리적으로 위축된 상태에서 허위자백을 강요받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진실화해위는 이런 수사 과정에서의 위법행위는 신체의 자유를 제한한 중대한 인권침해일 뿐만 아니라 형법 제123조(직권남용) 및 제124조(불법체포, 불법감금)에 해당하고, 형사소송법 제420조 제7호 등의 재심사유에 해당한다고 보았다.

이번 진실규명 과정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신씨의 체포 과정이다. 신씨는 진실화해위 조사에서 체포된 경위에 대하여 “당시 녹두출판사 사장인 김영호가 저보다 먼저 검거되었는데, 김영호 사장의 와이프가 (제 처를 통해) 연락이 와서 4월25일 오후 2시경 강남구(청담동) 안세병원 사거리에서 만나자고 해서 나갔는데 김영호가 아닌 대공 수사관들이 저를 기다리고 있다가 검거를 하고 난 뒤 인근 여관으로 데리고 갔다”고 진술했다. 경찰이 김영호 장관을 통해 신씨를 유인해 체포했다는 것이다.

이산하 시인(이상백)의 장편서사시 ‘한라산’을 실은 1987년 사회과학전문지 <녹두서평> 창간호. 한겨레 자료사진

신씨의 배우자도 참고인 진술에서 같은 내용으로 이야기하며 “그때 도망다니는데 필요한 돈이나 숙소를 알려주려고 만나자고 한 줄 알았는데 나중에 (김 장관 때문에) 잡혀갔다는 것을 알게 되고 몸서리도 쳐지고 죄의식도 느껴지고 스스로도 그 사실에서 피하려고 하고 했었다”라고 진술했다. 김 장관의 배우자는 진실화해위의 출석 요구에 응하지 않았다.

김 장관은 당시 신씨가 잡히기 나흘 전 검거된 상태였다. 그의 공판기록에는 “제가 4월21일 .치안본부에 연행되어 27일 구속영장이 발부되기 이전까지 3평쯤 되는 완전히 밀폐된 방안에 밤낮을 가리지 않고 자백할 것을 강요받았고, 몸이 완전히 탈진된 상태에서 담당 수사관이 묻는 내용대로 제가 긍정적으로 답하는 식으로 조사가 이뤄졌다”며 가혹행위에 대해 언급하는 내용이 나온다.

신씨와 이산하 시인은 부산 혜광고 동기동창이다. 김 장관과 신씨는 서울대 동아리 선후배 사이다. 장편서사시 ‘한라산’은 김영호와 신씨, 이산하 시인 세 사람이 얽힌 인연 속에서 탄생했다. 다만 감옥을 나온 김 장관은 전혀 다른 길을 갔다. 김 장관은 집행유예로 풀려난 뒤 미국으로 유학을 다녀와 성신여대 교수를 지냈고, 2005년 뉴라이트 학자 모임인 ‘뉴라이트싱크넷’의 운영위원장을 맡았다. 뉴라이트 성향의 ‘대안 교과서’ 집필을 목표로 한 ‘교과서포럼’에도 참여했다. 이명박 정부 시기에는 통일비서관을 지냈고, 2023년 7월 윤석열 정부에서 통일부 장관에 임명됐다.

신씨는 한겨레와 통화에서 “체포된 날 김영호 장관을 만나러 가는 길이었다”며 “잡혀서 뒷골목 여관으로 갔더니 옆방에서 비명이 들렸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납북어부들을 취조하는 소리였다”고 말했다. 김 장관에 대해서는 “엠비 시절 말기, 그가 통일비서관을 하던 시절 서울 플라자호텔(현 더 플라자호텔 서울)에서 스쳐 지나가듯 악수했었고, 통일부 장관이 된 이후엔 2023년 연말 모임에서 만났다”고 덧붙였다.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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