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가 17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영국 언론사 파이낸셜타임스(FT) 크리스찬 데이비스 서울지국장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국무총리실 제공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의 "미국 항공기 구매 의향" 발언으로 항공업계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한 대행이 미국의 관세 압박을 풀어내는 여러 카드 중 하나로 언급한 것인데, 업계 관계자들은 23일 "추가 항공기를 구매할 계획도, 여력도 없다"며 난색을 표하고 있다.

항공업계에 혼란이 시작된 건 지난 20일 영국 언론사 파이낸셜타임스(FT)에 한 대행의 인터뷰가 실리면서다. 한 대행은 이 인터뷰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28분간의 '좋은' 전화 통화를 했다"며 "한국이 상업용 항공기 구매를 포함하여 무역 흑자 축소에 대해 논의할 의향이 있다"고 말했다.

미국과의 관세 협상을 앞두고 있는 시점에 한 대행이 직접 '항공기 구매'를 언급하면서 관련 업계는 잠시 혼란에 빠졌다. 미국 보잉사의 항공기 추가 구매 압박이 있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중국의 보잉사 항공기 인도 거부 사태까지 이어지면서 "해당 물량을 관세 협상 중인 우방국이 떠안야 하는 것 아니냐"는 걱정까지 이어졌다.

업계는 추가 항공기 구매 가능성에 대해 선을 긋고 있다. 대항항공은 이미 보잉사의 777-9 20대, 787-10 20대, 이외 기종 10대 구매 계획을 구체화했다. 미국의 관세 부과 조치가 수면 위에 오른 3월 21일 워싱턴DC에서 이런 내용이 담긴 서명식을 열었고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과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장관도 함께했다. 회사 관계자는 "서명식에 담긴 구매 물량은 대한항공에는 약 10년치에 해당한다"며 "더 이상 구매할 계획은 없다"고 말했다. 정부도 아직까지 국내 주요 항공사를 상대로 미국 항공기 추가 구매 의향을 묻는 등 구체적인 행동을 취하고 있진 않다고 한다.

항공업계는 보잉사 수주 잔고가 5,000대에 달해 항공기를 추가 구매한다고 해도 관세 협상에 카드로 쓰일지 회의적이란 입장이다. 항공기 시장은 공급자가 미국 보잉사, 유럽 에어버스 정도라 항상 공급보다 수요가 넘친다. 한 항공업계 관계자는 "중국이 미국과의 갈등으로 보잉사 항공기를 인수하지 않아도 해당 물량을 대기 수요에 넘기면 그만"이라며 "중국으로 가야 할 물량을 미국과 관세 협상 중인 우방국에 떠넘길 일은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국일보

이상무 기자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