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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사는 80대 노인 요청
광주 동구 봉사자들 ‘정리’
“집 깨끗해져 좋아” 만족감
한 봉사자가 지난 10일 광주 동구 대인동의 80대 남성이 홀로 사는 집에서 찬장을 정리하고 있다. 강현석 기자


A씨(81)가 사는 광주 동구 대인동 원룸에는 사진 100여장이 벽에 가득 붙어 있었다. 수영복을 입은 중년 남성은 바닷가에서 자신만만한 포즈로 서 있었고, 가족이나 지인과 함께 찍은 사진에서는 미소가 흘렀다.

23일 광주 동구가 시행하는 ‘공공유품정리’ 사업 현장에서 만난 A씨는 “가장 소중한 물건이 무엇이냐”는 물음에 주저 없이 “사진”이라고 했다. A씨는 며칠 전 동사무소의 안내를 받고 집안 정리를 부탁했다. 이날 그가 혼자 사는 원룸에서는 방안 구석구석 쌓아뒀던 ‘삶’을 비우는 일이 진행됐다.

광주 동구가 전국에서 처음으로 시행한 이 사업은 생전에 물건을 미리 정리해 죽음을 대비토록 하자는 취지다. 필요없는 물건을 재활용하거나 이웃과 나눔으로써 자원순환도 실천할 수 있다.

자원봉사자로 구성된 ‘나비활동가’와 구청·동사무소 공무원 10여명이 오전 10시부터 정리에 나섰다. 덩치 큰 4인용 식탁과 의자 4개가 가장 먼저 밖으로 나왔다. ‘붕붕카’(유아용 자동차)와 낡은 장롱도 원룸을 떠났다. 사실 붕붕카와 식탁은 그가 사용하던 물건은 아니다. 김정애 동구 복지정책과장은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주변에서 버린 식탁과 어린이 자동차를 들여놓으신 것 같다”면서 “말씀은 안 하시지만 가족에 대한 그리움을 이렇게 물건으로 달래는 분들이 꽤 있다”고 설명했다.

A씨 집에는 유독 여행용 가방이 많았다. 그는 “젊었을 때는 여행을 참 좋아했다”며 이제는 여행가방이 필요없다고 했다. 전남 목포가 고향인 그는 청년 시절 상경해 서울에서 40여년간 살았다고 한다. 그러나 사업 실패 이후 가족과도 관계가 단절됐고, 6년 전부터 광주의 허름한 원룸에서 기초생활수급자로 홀로 산다. 머리맡에는 한가득 약이 든 봉지도 있었다. A씨는 ‘정리’의 의미를 알지만 굳이 내색하지 않았다. 집이 어느 정도 정돈되자 A씨는 “깨끗하니 아주 좋다. 이만하면 됐다”고 말했다. 사진 속 누군가가 찾아와도 부끄럽지 않을 정도라고 했다. A씨가 그토록 아끼는 사진은 남겨뒀다.

자원봉사자들은 2개월간 전문 교육을 받고 자격증을 취득한 이들이다. 노년 주민들을 자주 만나는 만큼 장례지도사와 죽음 전문가들로부터 노년의 삶과 심리 등에 대한 교육도 받았다. 지난해 7월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사업을 통해 지금까지 7명이 삶을 차분히 정리했다고 한다. 나비활동가 하춘례씨(64)는 4년 전 어머니의 죽음을 겪은 뒤 자원봉사자로 참여하고 있다. 하씨는 “어머니께서 슬퍼할 가족들을 위해 생전에 유품을 미리 정리해 두셨더라”라면서 “이 사업은 남겨질 사람들의 슬픔을 덜어주는 일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임택 광주 동구청장은 “공공유품정리 사업은 노년의 ‘마지막 존엄’을 지켜주고 1인 가구의 사회적 고립을 예방하는 효과도 있다”고 밝혔다.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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