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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 마지막 7인, 그 곁의 기록]
② 생존자 강일출 할머니의 곁
간병과 동행을 묵묵히 도운 큰딸과 손자
"중국 타지서 가족 책임졌던 강인한 엄마"
"'위안부' 때 피해 물어볼 엄두조차 못냈다"
"치매 앓는 할머니 대신 염원 들어드릴 것"

편집자주

위안부 피해 생존자는 이제 7명 남았습니다. 세계 곳곳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는 약 20만 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되는데, 국내에 신고·등록된 피해자 수는 고작 240명(2022년 기준). 대부분이 제대로 된 일본의 사과도 배상도 받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지요. 남은 일곱 분의 할머니도 평균 나이 95.7세입니다. 긴 세월 싸워온 할머니들과 이들의 곁을 지킨 이들을 만났습니다.
2019년 경기 광주시 소재의 위안부 피해자 쉼터인 나눔의 집에 거주 중이던 강일출 할머니. 당시 91세였던 그는 이제 치매 증상이 심해져 요양병원에 머물고 있다. 이한호 기자


늘 꼿꼿하게 일본의 만행을 증언하던 '위안부' 피해 생존자 강일출(97) 할머니. 치매를 앓아 요양병원에 있는 할머니의 호된 증언은 이제 기록으로만 만날 수 있다.

"사실 이 얘기, 같이해보는 건 처음이에요. 그동안 이런 대화 아예 안 했어요."


강 할머니의 곁엔 엄마를 위해 중국에서 건너온 딸 쉬유란(가명·63)씨, 그리고 강씨의 손자이자 유란씨의 조카인 강성민(가명·39)씨가 있다. 조선족 남성과 결혼해 평생 중국에서 살아야 했던 강씨가 위안부 피해를 알리고 한국 국적을 회복한 뒤, 유란씨와 성민씨도 한국 국적을 취득해 한국인이 됐다. 성민씨는 한국식 이름을 만들고 할머니의 성을 따랐다.

지난달 26일 서울 구로구의 한 공유형 사무실에서 일본군 위안부 생존자 강일출(97) 할머니의 딸과 손자가 본보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 이들은 정작 강씨의 '위안부' 피해에 대해선 서로 터놓고 얘기한 적이 없다고 전했다. 최주연 기자


지금도 강씨를 매일같이 극진히 돌보고 있지만 정작 '위안부' 피해에 대해 서로 터놓고 얘기한 적이 없다고 한다. 피해자 가족에게 그때의 일은 떠올리기도 힘들 만큼 가혹하다고.

그럼에도 지난달 26일 오후 서울 구로구의 한 공유형 사무실에서 이들은 나란히 인터뷰에 응했다. 중국에서 산 세월이 길어 우리말도 서툴지만 어렵게 내린 결정이었다. 결심하게 된 이유를 묻자 성민씨는 종이 두 장 빼곡히 적어온 글부터 건넸다. 글 말미에
"더 많은 사람들이 할머니의 이야기를 알게 되길 바란다"
고 적혀 있었다.

중국 타지서 자식 홀로 키워... 고향 그립다던 엄마

지난달 26일 서울 구로구의 한 공유형 사무실에서 강씨의 손자 성민(가명)씨가 본보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 그는 어릴 적 할머니가 해준 음식을 떠올리더니 "한국에 와서도 그렇게 맛있는 음식은 다시 못 먹었다"고 말하며 웃었다. 최주연 기자


1944년 강씨는 고향인
경북 상주
에서 16세가 됐을 무렵 일본군에 의해 중국 위안소로 끌려가 피해를 입었다. 당시 강씨는 장티푸스에 걸렸고, 군인들은 병이 옮을까 봐 그를 산으로 끌고 가
태우려 했다.
죽음의 문턱까지 갔던 강씨는 당시 일본군이던 조선 사람의 도움을 받아 목숨을 건졌다. 이후 해방을 맞았지만 귀국할 여력이 되지 않아 중국에 체류했다.

강씨는
조선족 남자를 만나 결혼
하고 중국에서 큰딸인 유란씨와 두 아들을 낳았다. 6·25 전쟁통에 남편을 잃고 중국군 간호사로 입대, 30년간 근무하며 손자들까지 한 집에서 길러냈다. 이후 1991년에야 '위안부' 피해 신고를 독려하는 한 시민단체 신문광고를 보고 직접 연락해 귀국했다. 유란·성민씨 등 그의 가족은 그로부터 몇 년이 더 지나 강씨를 따라 한국으로 들어왔다.

2023년 5월 8일 오후 경기도 광주시 나눔의집에서 열린 '어버이날 기념행사 & 박옥선 어르신 상수연 잔치'에서 이용수 할머니(왼쪽)와 강일출 할머니(오른쪽)가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가족은 강씨가 어디서든 삶을 개척하던 강인한 사람으로 기억했다. 성민씨는 "할머니는 가족의 건강을 잘 챙겼다"며 "내가 아플 때도 링거 등 기본적인 의료 처치를 다 해 병원 갈 필요도 없었다"고 회상했다. 김치, 청국장, 매운 생선조림 등 타지에서 하기 어려운
한국음식도 척척 해 자식과 손자들을 먹였다
. "한국에 와서도 그렇게 맛있는 음식은 다시 못 먹었다"고 성민씨는 말했다.

지난달 26일 서울 구로구의 한 공유형 사무실에서 강일출 할머니의 손자 성민(가명)씨가 본보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 그는 어릴 적 강씨에게 "중국어도 잘 모르는데 어떻게 중국에서 사느냐"고 물었지만 그때마다 강씨는 구체적인 답변 대신 애칭을 부르며 손자를 보듬었다. 최주연 기자


어린 손자는 할머니가 어쩌다 중국에 정착하게 됐는지가 늘 궁금했다. 성민씨는 이따금 "할머니에게 중국어도 잘 모르는데 어떻게 여기에서 살아?" 하고 묻기도 했다. 그때마다 강씨는 "중국인들이 도움을 많이 줘서 괜찮아"라고만 했고, 답변을 더하는 대신 중국어 애칭 '루루'라고 부르며 성민씨를 보듬었다. 그 다정한 목소리를 듣고 있자면 의문은 금세 잊히곤 했다.

딸의 기억 속 강씨는
"고향에서 먹은 곶감이 참 맛있었다"거나 "부모님을 보고 싶다"
는 말을 자주 하며 고향을 그리워했다. 하지만 그것도 매번 순간에 그쳤을 뿐, 이내 강씨는 근무와 살림이 바쁜 일상으로 돌아갔다. 성민씨는 "그땐 잘 몰랐지만 연고도 없는 곳에서 혼자 가족을 책임지는 게 할머니로선 많이 힘들었을 것"이라고 했다.

차마 묻지 못한 그날... 할머니는 이제 기억을 잃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해결을 위한 한일 외교장관회담을 하루 앞두고 양국 간 국장급 협의가 열렸던 2015년 12월 27일 경기 광주시 나눔의 집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강일출 할머니가 발언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강씨가 '위안부' 피해자라는 사실을 가족이 알게 된 건 강씨가 스스로 피해 신고를 한 뒤 귀국하고 나서다. 강씨는 귀국 이후 경기 광주시 나눔의 집에서 지내면서 국내외를 막론하고 피해 증언 활동에 적극 나섰다.

이 무렵부터 강씨는 간혹 가족과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다가도
"일본이 나쁘다" "뭐든 순서대로 사과부터 해야지"
라며 울컥 화를 냈다고 한다. 그때마다 가족이 할 수 있는 일은 곁을 묵묵히 지키는 것뿐이었다. 유란씨는 늘 나눔의 집을 찾아 강씨를 돌봤고, 성민씨는 여력이 될 때마다 강씨 외부 활동에 동행했다.

'위안부' 피해에 대해 강씨와 터놓고 대화해본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 둘은 모두 "엄두도 못 냈다"며 고개를 저었다.
성민씨는 "매번 내가 대학교 다니는 얘기 같은 일상 주제로 화제를 돌렸다"며
"그렇지 않으면 할머니도 우리도 너무 힘들기에 그게 우리의 최선이었다"
고 했다.

강씨는 80대에 접어들며 치매 증상이 심해졌다. 처음 변화를 감지한 건 강씨와의 외부 동행에 자주 나섰던 성민씨였다. 강씨는 성민씨 이름을 잊어버리고 아들 이름을 부르거나, 나눔의 집에서 무작정 빈손으로 나와 성민씨 집으로 찾아오는 등 안 하던 실수를 했다.

성민씨는
강씨의 치매 증상
이 진행되던 당시를 떠올리며 말했다. "처음에는 가족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했어요.
많이 울었어요
. 말도 못 해요. (치매 증상을) 더 일찍 알지 못한 걸 후회했어요."

강씨의 평생을 괴롭혔던 '위안부' 피해의 기억은 약 70년이 지나서야 그렇게나마 지워졌다.

"치유 못 해드려 무력해지지만... 포기하지 않을 것"

지난달 26일 서울 구로구의 한 공유형 사무실에서 일본군 '위안부' 강일출 할머니의 가족들이 본보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 최주연 기자


강씨는 2023년 말을 기점으로 건강 상태가 악화돼 경기 성남의 한 요양병원으로 거처를 옮겼다. 거동이 불가능해진 지금은 유란씨가 매일 강씨를 찾아 식사를 돕고 기저귀를 갈아주며 세심하게 돌보고 있다. 그렇게 정성을 다하는 이유를 묻자 유란씨는 당연하다는 듯 "엄마니까"라고만 답했다.

성민씨도 몇 주에 한 번씩 강씨를 찾아 안부를 확인한다. 다만 그는
"이제 할머니 상태가 좋지 않아 찾아봬도 같이할 수 있는 게 거의 없다"
며 슬퍼했다. 또
"할머니의 상처를 완전히 치유해드릴 수 없다는 무력감을 느낄 때가 많다"며 "지금도 수요집회를 볼 때면 (생업에 종사하느라) 직접 참여하기 어렵단 현실에 힘이 빠지기도 한다"
고 털어놨다.

성민씨가 우리말이 서툰 점을 감안해 미리 작성해온 글. 글의 말미에는 "더 많은 분들이 할머니의 이야기를 알게 되기를 바란다"고 적혀 있다. 최은서 기자


그러면서도 성민씨는 강씨가 세상을 떠난 이후 자신의 역할을 치열하게 고민하고 있다. 그는 대학생 때부터 짬이 날 때마다
해야 할 일을 적어둔 목록
을 보여줬다. △청소년 대상 교육 프로그램 개발 △전쟁 성폭력 관련 기관 네트워크 구축 △일본 정부의 공식 사과 촉구를 위한 국제 활동 등. 여전히 실행이 요원하지만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꼭 필요한 일들이었다.

성민씨는
"할머니와 세계의 또 다른 피해자들을 위해 '위안부' 피해를 알리고 일본으로부터 사과와 배상 받는 일을 포기하지 않을 것"
이라며 "당장은 생업에 전념해야 하지만, 신중하게 생각한 뒤 행동해 할머니의 염원을 들어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끝으로 강씨가 다시 건강해진다면 어떤 대화를 나누고 싶은지 물었다. 시종일관 표정이 어둡던 유란씨는 처음으로 미소를 띠며 짧은 우리말로 답했다. "엄마가 좋아하는 얘기(하고 싶어요). (엄마가 늘 그리워 했던) 상주 곶감같이, (엄마가 들으면) 웃을 얘기."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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