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대선 민심 바로미터 충청 르포
尹 계엄 전날 찾은 공주 시장은 '배신감'
수도 이전에 들썩 세종 기대 우려 교차
대전 시민들 "대선 날까지 지켜보겠다"
보수세 강한 충주 '이재명 비토' 강해
"점잖은 한덕수 괜찮잖아" 대안론도
尹 계엄 전날 찾은 공주 시장은 '배신감'
수도 이전에 들썩 세종 기대 우려 교차
대전 시민들 "대선 날까지 지켜보겠다"
보수세 강한 충주 '이재명 비토' 강해
"점잖은 한덕수 괜찮잖아" 대안론도
지난 21일 충남 공주 산성시장에서 시민들이 장을 보고 있다. 산성시장은 윤석열 전 대통령이 지난해 12.3 불법계엄 전날 방문한 곳이다.
"윤석열 고향은 무슨 고향 시끄러운 소리하지 말라 그랴. 이번엔 다를겨."
지난 21일 충남 공주시 산성시장에서 만난 정육점 주인 김종호(56)씨는 윤석열 전 대통령 이야기를 묻자 연신 고개를 저으며 손사래를 쳤다. 공주는 윤 전 대통령의 부친인 고(故) 윤기중 연세대 명예교수의 고향으로 윤 전 대통령은 지난 대선에서 '충청의 아들'을 자처했고, 충청 표심을 등에 업고 당선됐다.
하지만
충청 민심은 차갑게 돌아서
있었다. 특히 산성시장은 지난해 12·3 불법계엄 전날 윤 전 대통령이 찾았던 곳이었던 만큼, 배신감과 충격이 풀리지 않은 듯
했다. "그간 행동을 보면 탄핵은 당연한 거지. 그래도 정치를 해본 사람을 뽑았어야 했는데..."
김씨의 깊은 한숨이 휑한 시장 골목을 가득 채웠다. 채소가게에서 만난 김모(60대)씨는 "야당이 너무 잡아당기니까 힘들긴 했겠지. 근데 계엄령은 진짜 아니야, 40년, 50년 전에 하던 걸 왜 지금 하냐고"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계엄 이후 손님이 더 줄었다며 울상인 상인들이
"무조건 경제 살리는 일 잘하는 사람이 대통령이 돼야혀"
라고 목소리를 높이자, 한 어르신도 팔리지 않는 산두릅을 소쿠리에 한 움큼 옮겨 담으며 "다 맞다. 내 주변도 이미 많이 돌아섰다"
라고 읊조리며 호응했다. '충청을 잡으면 대권을 잡는다'
는 말이 나올 만큼, 충청은 역대 대선마다 민심의 바로미터 역할을 해왔다. 이번엔 윤 전 대통령 탄핵으로 치러지는 대선인 만큼, 바닥 정서엔 정권 심판론
이 깔려 있었다. 다만 보수세가 강한 지역에선 유력 대선 후보인 이재명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에 대한 비토 정서도
사라지진 않았다."글쎄요. 윤석열은 절대 아니지만, 이재명은 모르겄네요."
, "6월 3일 마지막 순간까지 누구 찍을지 지켜 봐야하지 않겄어요."
지난 21일, 22일 충남 지역 4곳(세종·대전·천안·공주)과 충북 충주에서 만난 유권자들은 막판까지 알 수 없다는 표정만 지어 보였다. 세종시 행정수도 이전 기대감에 들썩
그래픽=강준구 기자
그나마 충청 표심 중 가장 들썩이는 곳은 세종
이었다. 지난 대선과 총선에서 민주당의 손을 들어줬던 지역이었던 만큼 정권 심판 여론은 공고했다. 세종시에서 만난 많은 공무원들 다수가 이번 대선은 '심판 선거'
라고 입을 모았다. 특히 정치 초보에게 국정운영을 맡겨서는 안 된다는 논리
가 컸다.이번 대선에는 정책적인 경험이 많아 노련하게 잘할 것 같은 이 전 대표를 뽑을 생각"
이라고 했다. 이재명 전 대표가 내건 세종 수도 이전 공약에 대한 기대감도 치솟는 분위기
다. 공인중개사 김진숙씨는 "탄핵 선고 이후 실거래가가 5,000~6,000만 원씩 뛰기 시작했다"며 "집 못 팔아서 안달 났던 사람들도 다시 매물을 거둬들이고 있다"고 귀띔했다. 세종시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허재무(32)씨는 "그동안 장사가 너무 어려워서 민주당의 행정수도 이전 공약 대한 기대가 크다"며 "여의도만 가도 사람이 북적북적하지 않느냐"
고 반겼다. 세종시는 정부부처가 옮겨왔지만, 대표적인 베드타운으로 전락하며 자영업자들의 무덤이란 평가를 받아왔다. 당장 10년 넘게 방치된 세종시 나성동 '백화점' 부지가 임시 주차장으로 쓰일 만큼 지역 경제는 폭삭 주저 앉았다. 다만 반신반의하는 분위기도
있었다. 역대 정권이 세종 이전을 띄웠지만 흐지부지된 탓에 "이번에도 말뿐일 것"이라는 회의감도
적지 않았다. 자영업자 박모(58)씨는 "서울 인구가 반 이상인데 어떻게 그걸 다 물리치고 오겠냐"면서 "충청도를 핫바지로 보고 헛공약 하는 것
"이라고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세종 이전 추진에 대한 진정성 여부에 따라 표심이 크게 출렁일 수 있는 대목이다.대전 천안은 신중모드... 한덕수 대안론도
충청 민심의 풍향계인 대전은 역시나 쏠림 없이 로키 모드
였다. "후보가 정해지면 마음을 정하겠다"며 신중론이 우세했다.
대전 동구 중앙시장에서 의류매장을 운영하는 임효수(75)씨는 "5월은 되어야 알지 지금은 모른다"라면서 "당이 아니라 후보를 보고 결정하겠다"고 말을 아꼈다. 대선 후보들 가운데 유력주자인 '이재명'을 이야기하는 사람만큼이나 '한덕수'를 거론하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국민의힘 경선이 진행 중이지만, 보수당 주자들을 먼저 언급하지 않을 만큼 관심 밖에서 벗어나 있었다.
이재명 선호의 기반엔 '경제 살리기'에 대한 기대
가 깔려 있었다. 50대 남성인 안모씨는 "고기도 먹어본 놈이 먹는다고 이재명 전 대표가 추진력도 있고 경험도 많으니 경제도 살리고 여러모로 잘하지 않겠냐"고 했다. 반면 보수 지지자들 사이에선 '묻지마 반명'도
거셌다. 70대 중반의 이재례씨는 "윤석열이 계엄은 잘못했지만 어떻게든 해보려고 하다보니 그런 것 아니냐"면서 "이재명을 안 좋아해서 민주당은 못 뽑는다"고 했다. 그래피=김대훈 기자
대안으로는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를 언급
하는 이들이 부쩍 많았다. 이씨는 "한덕수 총리는 우찌 나온다는것이냐"고 되물으며 "한덕수가 나온다면 뽑겠다"고 했다. 시민 김모(67)씨도 "충청도 사람이 보기엔 한덕수가 제일 점잖고 괜찮지, 안 그려? 미국하고 관계도 생각하믄 한덕수가 제일로 낫지"라고 한덕수 차출론에 힘
을 실었다. 2030 비율이 높은 천안의 민심도 오리무중
이었다. "이번 대선에서 가장 중요한 기준은 내란 종식"(30대 자영업자 최모씨)이라며 정권 교체론에 힘을 싣는 의견이 다수였지만, 일부 20대 대학생들 가운데선 이 전 대표가 친중 편향적이라며 문제 삼는 의견도 있었다. 충남대에서 만난 20대 대학생 김모씨는 "안보를 기준으로 투표를 할 것"이라며 "중국식 사회주의를 추구하는 정당은 뽑지 않을 것이다"고 잘라 말하기도 했다. 충주 김혜경이 고향이라면서 한번도 안 챙겨
지난 22일 충주시 보방동의 한 사거리에 현수막이 걸려 있는 모습.
지난 대선은 물론 민주당이 압승한 총선에서도 국민의힘 후보가 더러 당선된
충북에선 상대적으로 이재명 비토론
이 강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이 전 대표는 배우자인 김혜경 여사의 고향이 충주라는 점을 내세워 '충청 사위'론을 띄우고 있지만, 아직 충북의 마음을 달래기엔 부족해보였다. 민주당 열세 지역은 공을 들이지 않고 있다는 불만이었다. 충주시 무학시장 인근에서 세탁소를 운영하는 임모(74)씨는
김혜경 고향 (충주) 산척(면) 가서 물어봐 다 이재명 욕한다"며 "해준 것도 없는데 무슨 충청의 사위냐"고 버럭
했다. 조명가게를 하고 있는 이모(60)씨도 "내 주변엔 정권은 바뀌어야 한다고 말해도 이재명 뽑겠다고 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면서 "안 그래도 민주당이 지역에서 조직력이 부족한 상황인데 지역 현안을 해결해 준다고 나서거나 얼굴 비추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고 서운함을 드러냈다. 다만
국민의힘의 마땅한 주자가 없고, 지지자들의 표심이 갈리는 상황에서 끝내 '이재명 대세론'에 편승할 것이란 의견도
적지 않았다. 충주 주민 이모(70)씨는 "국민의힘 지지자들도 자신이 미는 후보들이 다 다르다보니 결집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이번만큼은 충주도 뒤집힐 수 있다"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