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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 전경. 한겨레 자료사진

지난해 6월 서울대 인권센터(인권센터)에 직장 내 괴롭힘을 신고한 이 대학 무기계약직 행정직원 ㄱ(37)씨는 신고 2주 만에 황당한 일을 겪었다. 함께 일했던 정규직 실무관 ㄴ씨의 괴롭힘 경위를 적은 ‘신고 내용’ 사본이 통째로 당사자인 ㄴ씨에게 넘어간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신고 사실이 알려지며 ㄱ씨는 난처한 상황에 부닥쳤다. ㄴ씨는 ‘ㄱ씨가 오히려 나를 괴롭혔다’는 내용의 ‘역신고’를 했고, ㄱ씨는 이를 소명하는 과정에서 공황장애가 재발했다. 분리 요청으로 새로 발령받은 부서에도 신고 사실이 알려져 적응에 어려움을 겪었다. ㄱ씨는 결국 지난달 20일 일을 그만뒀다.

서울대 내부의 분쟁·갈등 사건을 다루는 인권센터가 직장 내 괴롭힘 등 신고 내용을 가해자로 지목된 피신고인에게 그대로 전달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인권센터 쪽은 “충실한 조사를 위해서”라고 설명하지만, ‘2차 피해’ 우려 탓에 고용노동부 매뉴얼조차 괴롭힘 신고 내용은 피신고인은 물론 모든 이에게 비밀로 할 것을 강조한다.

인권센터는 23일 한겨레에 분쟁 사건 처리에 있어 피신고인에게 신고 내용을 전달하고 있음을 인정했다. 인권센터는 다만 “피신고인이 신고 내용을 알고 이에 대해 답변을 할 수 있도록 하고, 그 이후에 진행되는 신고인·피신고인 대면조사 과정에서 충실한 조사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라고 신고 내용 전달 이유를 밝혔다. ㄱ씨 또한 신고 내용 전달이 사건 처리 ‘절차’라고 안내받았다. ㄱ씨는 “신고서에 쓴 내용이 통째로 가해자에게 전달되는 줄 알았다면 인권센터를 찾지 않았을 것”이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이런 절차는 직장 내 괴롭힘 등 분쟁 사건 처리에 있어 매우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뒤따른다. 정현철 직장갑질119 사무국장은 “수많은 기업·기관의 직장 내 괴롭힘 사안을 다뤄왔지만, 신고서를 피신고인에게 전달하는 절차가 있는 곳은 처음 본다”며 “이는 피신고인이 조사 참고인 등과 미리 입을 맞추거나, 신고인에 대한 2차 피해로 이어질 수 있어 매우 부적절하다”고 지적했다.

실제 고용노동부의 ‘직장 내 괴롭힘 예방·대응 매뉴얼’(매뉴얼)은 신고서를 비밀로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매뉴얼은 “개인의 인격권과 사생활의 비밀을 엄격하게 지킴으로써 사업장 내 2차 피해를 예방하려는 목적으로, 비밀이 신고서에 기재되었는지를 불문하고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다른 사람에게 제공되어선 안 될 것”이라고 규정한다. 매뉴얼은 피해자에게 ‘사건 처리 절차의 모든 과정에 대해 철저히 비밀이 유지될 것임을 고지하라’는 내용도 담고 있다.

신고서 유출 가능성은 다른 피해자들의 신고를 주저하게 만드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지난해 인권센터를 찾았던 재학생 ㄷ(23)씨는 신고 내용이 가해자에게 전달될 수 있다는 이야기에 신고서를 새로 썼다고 한다. 그는 “처음 쓴 신고서에는 목격자 등 참고인이 여럿 등장하는데, 신고서를 전달받은 피신고인이 미리 (참고인들에게) 손쓸 수 있다는 생각에 신고서를 다시 썼다”며 “인권센터 절차가 피해자 보호에 초점이 맞춰져 있기보다는 가해자 방어권에 유리하게 구성된 것 같다”고 말했다.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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