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앵커 ▶
프란치스코 교황은 즉위 당시 '가난한 이들의 성자'라 불리는 '아시시의 프란치스코'를 본떠 즉위명을 정했습니다.
그 이름처럼 가장 낮은 자리, 더 소외된 이들에게 향했던 프란치스코 교황을 11년 전 방한 당시 만난 이들은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요?
이정은 기자입니다.
◀ 리포트 ▶
교황이 직접 거행하는 시복 미사.
100만 명이 파파·교황을 만나러 광화문 광장에 모였습니다.
그런데, 카퍼레이드를 돌던 교황의 시선이 한 곳에 멈춥니다.
"파파 파파!!"
당시 통역을 담당했던 정제천 신부가 상황을 설명하자, 프란치스코 교황이 바로 차에서 내렸습니다.
[정제천 신부/당시 교황 통역 담당]
"머리에 노란띠를 하고 있으니까 금방 눈에 띄더라고요. '여기에 세월호 유가족들이 계십니다' 하니까 당신 차를 세우시더라고요."
세월호 참사에 대해 알고 있던 교황은 한국에서의 일정 대부분 사제복에 '노란 리본'을 달고 있었습니다.
[김영오/세월호 참사 유가족]
"잊어버리지 말아 주십시오. 세월호."
단식까지 하며 세월호 특별법 제정에 매달렸던 유족은, 슬픔에 공감하며 손잡아 준 교황이 각별하게 기억됩니다.
[김영오/세월호 참사 유가족]
"가슴에 노란 리본을 달고 저에게 와주셨어요. 사회적 약자들을 위해서 손을 잡아주시는 분이구나…"
그의 시선은 사회 어두운 곳곳을 향했습니다.
꽃동네에선 잠시만 주목받는 방문이 되지 않도록 이들의 사연에 귀를 기울였고,
[정제천 신부/당시 교황 통역 담당]
"무엇이 그들을 지탱해 주고 있는 지에 대해서 듣고 배운다면 정말로 하느님이 기뻐할 것이다 말씀하시더라고요."
명동대성당에선 미사를 집전하기에 앞서 제일 앞줄에 있던 위안부 할머니의 손부터 잡았습니다.
[정제천 신부/당시 교황 통역 담당]
"김복동 할머니가 나비를 드리고 싶어 했어요. 그러니까 당신(교황)이 그 배지를 지금 채워달라고 하셔서 배지를 채워드렸어요."
낡은 구두, 소박한 차, 철제 목걸이.
이런 단어들로 다 담길 수 없는 청빈한 삶에 더 낮고, 더 어두운 곳으로 향했던 교황은 종교를 넘어 많은 이들에게 울림을 남겼습니다.
[김영오/세월호 참사 유가족]
"교황님이 저에게 베푼 사랑과 관용의 은혜를 정말 죽을때까지 기억을 하거든요. 기억할 것이고요…"
MBC뉴스 이정은입니다.
영상편집 : 김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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