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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배우 윤여정. CJ ENM 제공
1966년 TBC(동양방송) 탤런트 공채를 통해 배우가 됐다. 활동 초기부터 두각을 나타냈다. 1969년 라이벌 방송 MBC로 스카우트됐다. 드라마 ‘장희빈’(1971)으로 안방극장의 별이 됐다. 같은 해 충무로의 이단아로 불리던 김기영(1919~1998) 감독 영화 ‘화녀’로 스크린 데뷔를 했다. TV드라마 출연료가 영화 출연료보다 더 많은 시기였다. 여배우 필수코스로 여겨졌던 수영복 화보 한번 찍지 않았다. 20대 시절 배우 윤여정(78)은 시류 편승과는 거리가 멀었다.
□ 1974년 가수 조영남과의 결혼과 미국 이민으로 한동안 카메라 앞에 서지 못했다. 1986년 한국으로 돌아온 이후에는 시련의 연속이었다. 조영남과의 이혼은 연기 활동에 장벽이 됐다. ‘이혼녀’의 방송 출연은 당시 금기였다. “남편에게 순종하고 결혼 약속을 지켜야 한다는 것을 어긴 사람”(윤여정)이라는 이유에서였다. 윤여정은 두 아들 양육과 생계를 위해 의도치 않게 금기를 무너뜨렸다. 윤여정이 없었다면 이혼 여배우의 TV 출연은 더 미뤄졌을 것이다.
□ 예순을 넘어선 이후에도 파격적이면서도 왕성한 연기 행보는 이어졌다. ‘돈의 맛’(2012)에서는 남자 부하직원을 성착취하는 재벌가 부인을, ‘죽여주는 여자’(2016)에서는 종로 일대 노인들을 상대하는 ‘박카스 할머니’를 각각 연기했다. 2012년 출연작 두 편(‘돈의 맛’ ‘다른 나라에서’)이 칸국제영화제 경쟁 부문에 초청받는 진풍경을 연출했다. ‘미나리’(2020)로 아카데미상 여우조연상을 수상하며 한국 영화사 최초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 윤여정은 지난 19일 미국 연예매체들과의 인터뷰에서 맏아들이 동성애자라는 점을 밝혀 눈길을 끌었다. 미국 영화 ‘결혼 피로연’ 개봉(18일)을 맞아서다. 그는 동성애자 손자를 둔 여인 자영을 연기했다. 윤여정은 “내가 한국에 돌아갔을 때 대중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모르겠다”며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삐딱한 시선을 각오한 발언이었던 셈이다. 윤여정이 팔순을 눈앞에 두고도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활동할 수 있는 건 저 진취적이면서도 개방적인 태도 때문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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