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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 '뚠뚠이 돈가스'를 운영하는 박종원(53)씨. 그는 15년째 가정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에게 두툼한 돈가스 등 식사를 대접해오고 있다. 김윤호 기자
'꿈나무카드 조카들아, 뚠뚠이 삼촌이 밥 한 끼 차려준다는 생각으로 편하게 와서 밥 먹자. 뭐든 금액 상관없이 얘기하기다. 매일매일 와도 괜찮아.'

21일 오전 울산 중구 성남동의 한 식당 앞. 이런 문구가 적힌 플래카드가 시선을 끌었다. 이 식당의 주인은 '뚠뚠이 돈가스'를 운영하는 박종원(53)씨. 그는 15년째 가정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에게 돈가스 등 음식을 대접해오고 있다.

'꿈나무카드'는 기초생활수급자, 소년소녀가장, 한부모·조부모 가정 등 결식 우려가 있는 아동을 위한 급식 지원 카드다. 박씨는 급식 지원 카드에 들어있는 '급식 포인트'를 차감하지 않고, 이 카드를 가진 아이들에게 무료로 돈가스를 제공한다. 카드가 없더라도 형편이 넉넉하지 않아 보이는 아이들이 식당에 오면 환하게 웃으며 돈가스를 내어준다.
'꿈나무카드 조카들아, 뚠뚠이 삼촌이 밥 한 끼 차려준다는 생각으로 편하게 와서 밥 먹자. 뭐든 금액 상관없이 얘기하기다. 매일매일 와도 괜찮아.' 21일 오전 울산 중구 성남동의 한 식당 앞. 이런 따뜻한 문구가 적힌 플래카드가 시선을 끌었다. 김윤호 기자
"눈치 안 주고 무료로 돈가스를 주는 삼촌이 있다"는 소문은 아이들 사이에서 퍼졌고, 지난 16일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이 직접 박씨를 찾아 감사의 뜻을 표하기도 했다. 박씨는 "정확하진 않지만 15년간 100명 이상의 아이들이 일주일에 한 두 번씩은 꾸준히 다녀갔고, 요즘도 아이들에게 돈가스를 내어주는 횟수가 일주일에 적게는 4번, 많게는 8번은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가 처음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을 챙기기 시작한 건 2011년, 서울 강북에서 오징어 요리 식당을 운영하던 시절이었다. 어느 날 식당 근처 공터에서 점심시간이 훌쩍 지난 후에도 흙장난하는 초등학생 남매가 눈에 들어왔다. 평소 아이들이 잘 보이지 않던 장소였고, 그 모습이 유독 눈에 띄었다고 한다. "너희 밥은 먹고 노는 거니?"라고 묻자, 남매는 "아니요. 할머니가 와야 돼요. 박스를 주우러 가셨어요"라고 대답했다. 박씨는 남매에게 식당으로 들어와 밥을 먹자고 권했고, 쭈뼛거리며 들어선 남매는 그가 내놓은 오징어 튀김과 음식을 맛있게 먹고 돌아갔다.

그날 이후 박씨의 식당에는 하나둘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돈가스가 먹고 싶어요"라는 아이들의 말에 그는 직접 돈가스를 만들어주기 시작했고, 결국 오징어 식당 2층에 돈가스 가게까지 차리게 됐다. "서울 연희동의 유명 중화요릿집에서 요리를 배울 때 익힌 튀김 실력 덕분에 돈가스를 꽤 잘 만들 수 있었고, 아이들도 좋아했어요. 장사도 잘됐어요."
울산 '뚠뚠이 돈가스'를 운영하는 박종원(53)씨. 그는 15년째 가정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에게 두툼한 돈가스 등 식사를 대접해오고 있다. 김윤호 기자
2019년 개인적인 사정으로 고향인 울산으로 돌아온 박씨는 2020년 지금의 '뚠뚠이 돈가스'를 열었다. 그리고 다시 한번 결식아동을 돕겠다는 결심을 굳혔다. "고향에도 결식아동이 있을 거라 생각했어요. 눈치 보지 않고 따뜻한 밥 한 끼를 편하게 먹을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죠."

그의 진심은 금세 퍼져나갔다. 플래카드를 보고 찾아오는 아이들이 늘었고, 멀리 떨어진 어촌 마을에서 오는 아이들에게는 포장까지 해주었다. "1년 내내 같은 옷을 입은 아주머니가 아이가 돈가스를 먹고 싶어한다고 해서 포장해 드린 적도 있었고, 할머니 손을 잡고 온 조손가정 아이도 있었어요. 아이들은 치즈 돈가스를 유독 좋아하는 것 같아요."

그가 아이들을 스스로 챙기게 된 데에는 어린 시절 기억이 영향을 미쳤다. "초등학생 때 친구들이 핫도그 먹을 때 저는 김치에 밥을 먹었어요. 그때 느꼈던 서러움이 지금의 '밥 한 끼' 봉사로 이어진 것 같아요." 박씨의 어머니는 시장에서 과일 노점 등을 했다. 아버지는 공장에서 3교대 근무를 했다. 집에서 혼자 보내는 시간이 많았던 그는 어린 시절부터 가난이 무엇인지 느꼈다고 한다.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이 지난 16일 울산 뚠뚠이 돈가스'를 찾았다. 김윤호 기자
15년간 아이들을 챙기면서 작은 보람도 느꼈다. "어릴 때 밥을 먹었던 학생이 대학생이 돼 만두를 사다 주고 가고 문자로 고맙다고 인사하는 아이들도 있어요. 손님이 좋은 일에 보태라면서 돈을 놔둔 적도 있어요." 무엇보다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이 찾아와 고마움과 존경의 뜻을 전해준 일은 그에게 큰 격려가 됐다고 한다.
울산 뚠뚠이 돈가스 입구. 김윤호 기자
박씨는 최근 새로운 꿈을 품게 됐다. 그는 현재 심리 코칭을 공부 중이며, 언젠가는 결식아동과 자립 청소년, 소외계층을 위한 '무료 급식과 진로 코칭이 결합한 복합공간'을 만드는 것이 목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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