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위비 문제·알래스카 LNG 참여 등 언급 놓고
통상 관료들 “눈치 없는 사람이 하긴 어려운 일”
통상 관료들 “눈치 없는 사람이 하긴 어려운 일”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이 21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경제안보전략 TF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제공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와의 관세협상을 지휘하고 있는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겸 국무총리와 통상당국 간에 ‘협상 기조’ 관련 태도가 미묘하게 엇갈리고 있다. 관세와 엮은 방위비 증액 논의, 알래스카 액화천연가스(LNG) 개발 참여 등 국가에 장기간 영향을 주는 사안에 대해 한 권한대행은 ‘거침 없이’ 미국에 긍정적 신호를 보내고 있다. 반면 통상당국은 ‘신중모드’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양측의 간극이 커질수록 관료들의 속앓이도 깊어간다.
“눈치 없는 사람이 하기엔 어려운 일인 것 같다.” 오는 24일 오후 9시로 예정된 미국과의 관세 협상을 준비 중인 정부 관계자의 말이다. 그는 방위비 증액, 알래스카 LNG 참여 등 민감한 이슈에 대해 미국에 쉽게 여지를 주는 한 권한대행을 보면서 자신을 ‘눈치 없는 사람’에 빗댔다. 한 권한대행에 발 맞추지 않는 ‘신중 모드’가 옳다고 생각되는데, 그렇다고 한 권한대행과 다른 생각을 대외에 마냥 드러내기도 어렵다는 것이다. 즉 적절한 ‘처신’의 수위를 찾기 힘들다는 뜻이었다.
한 권한대행과 관료들의 간극을 보여주는 최근 사례는 방위비 언급이다. 지난 20일 공개된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 인터뷰에 따르면 한 권한대행은 미국과의 관세 협상에서 방위비 증액이 논의될지에 대해 “현재로서는 안보 문제를 논의할 명확한 틀이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사안에 따라” 방위비 협정을 재논의할 의사가 있음을 내비쳤다. 한국이 먼저 무역·안보 패키지 딜 가능성을 언급한 것이어서 파장이 큰 발언이었지만 정작 협상을 준비하는 통상당국은 “전혀 검토한 바 없다”는 입장이다.
알래스카 LNG 개발을 두고도 한 권한대행은 가속페달을 밟은 바 있다. 그는 지난 14일 “하루이틀 새 알래스카 LNG와 관련해 한·미 화상 회의가 있을 것”이라며 특별한 진전이 있는 것처럼 언급했다. 하지만 알고보니 정부 관계자는 참여하지 않는 한국가스공사와 알래스카가스라인개발(AGDC) 실무진 간의 화상회의였다. 당시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는 “해당 사업의 경제성 검토를 위해 그동안 (알래스카가스라인개발 측에) 필요한 정보, 자료를 제공해달라고 요청해왔다. 이번 화상회의도 그런 대화의 일환”이라고 설명했다. 한·미 간 논의에 진전이 있어서 개최된 회의가 아니었던 것이다.
한 권한대행과 재정·통상수장의 입장차도 점차 선명해지고 있다.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16일 국회에서 “미국과의 관세 협상은 절대 서두르지 않는다. 최종적인 결정은 새 정부에서 하면 된다”고 말했다. 미국과의 이번 관세협상이 새 정부에 바통을 넘겨주기 위한 ‘징검다리 협상’임을 분명히 한 셈이다. 반면 한 권한대행은 ‘대행체제 정부’가 지휘하는 협상의 민주적 정당성을 묻는 FT의 질문에 “‘대행 대통령’과 ‘선출된 대통령’이 할 수 있는 일 사이에 차이가 없다”고 말했다. 국익에 장기간 영향을 주는 사안이라 할지라도 한 권한대행이 ‘지휘’할 수 있다는 입장이 깔려 있다.
미국에 대한 태도도 다르다. 한 권한대행은 FT와의 인터뷰에서 “우리의 산업 역량, 경제 발전, 문화, 성장, 부는 모두 미국 덕분”이라며 ‘보은론’을 펼쳤다. 반면 안덕근 산업부 장관은 “섣불리 협상을 타결하기보다는 짚고 넘어갈 사항이 있어 양국이 상호 호의적으로 풀도록 협의를 이어 나갈 것”이라며 ‘호혜’를 강조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