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60대 용의자, 현장서 숨진 채 발견
건물 휘감은 연기 서울 관악구 봉천동에 있는 아파트가 21일 농약분무기에 인화물질을 담아 분사한 방화로 화재가 발생해 검은 연기에 휩싸여 있다. 불은 아파트 4층에서 발생했으며 방화 용의자는 현장에서 사망하고 주민 11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연합뉴스


봉천동 방화 사전 준비 정황

‘가족들에 미안’ 유서 남겨

경찰, 다른 동기 가능성 수사


60대 남성이 자신이 살았던 아파트에서 농약분사기를 이용해 불을 지른 뒤 사망했다. 70~80대 여성 2명이 불길을 피하려다 창밖으로 추락해 중상을 입었다. 이웃들은 이 남성이 위층 주민들과 층간소음으로 갈등을 빚었다고 했다.

서울 관악경찰서와 소방당국 등에 따르면 21일 오전 8시17분쯤 관악구 봉천동의 한 아파트에서 화재 신고가 접수됐다. 불은 약 1시간 뒤인 오전 9시25분쯤 모두 꺼졌지만 1명이 사망하고 2명이 중상, 9명이 경상을 입었다.

불이 난 곳은 21층 높이 아파트로 단지 내에서 고령자나 저소득층이 주로 사는 임대아파트 동이었다. 화재는 4층에서 시작됐다. 4층 집 두 채에서 창밖으로 불길이 치솟았고, 유리창이 터져 폭발하는 소리가 났다. 한 목격자는 “눈이 내리듯 유리조각이 쏟아지고 15m 떨어진 놀이터까지 날아갔다”고 전했다.

경찰 조사에 따르면 불은 60대 남성 A씨가 인화물질을 넣은 농약분사기를 이용해 방화하면서 일어났다. A씨는 401호와 404호의 복도 방향으로 난 창문을 깨고 집 안에 불을 지른 것으로 추정된다. 불이 난 두 채에 살던 70~80대 여성 두 명은 각각 창문에 매달려 있다가 추락해 중상을 입고 병원으로 이송됐다. 당시 상황을 맞은편 동에서 지켜본 주민 김모씨는 “난간에 한 사람이 매달려 있었고 두 채 옆의 집 창밖에도 매달려 있다가 추락한 사람이 있었다”고 했다.

불이 꺼진 뒤 4층 복도에서는 불에 타 숨진 시신이 발견됐다. 경찰은 폐쇄회로(CC)TV 영상과 지문 등을 분석해 변사체가 방화자인 A씨의 것으로 확인했다고 밝혔다. 경찰은 이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A씨 소유의 오토바이를 발견했다. 오토바이에는 인화물질이 담긴 기름통 2개가 실려 있었다.

불이 난 401호와 404호는 다른 두 채를 사이에 두고 있어 화재 초기부터 실화가 아닌 방화가 의심됐다. 지난해 11월 초까지 이 아파트 3층에 살던 A씨는 지난해 9월쯤 층간소음 문제로 4층 주민들과 다퉈 경찰이 출동한 일도 있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이 아파트 3층에 거주하는 한 주민은 사건 직후 기자와 만나 “A씨가 지난해 층간소음과 관련된 이유로 퇴거당했다는 얘기를 들었다”면서 “옆집에도 ‘시끄럽다’며 망치로 문을 두드린 적도 있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다만 A씨가 실제 층간소음 갈등으로 인해 퇴거했는지는 확인하기 어려웠다.

경찰은 A씨가 불을 지른 401호와 404호가 같은 층에 있기는 하지만 서로 떨어져 있어 층간소음 외의 동기가 있었을 가능성도 염두에 두고 수사를 하고 있다.

A씨는 방화를 치밀하게 준비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이날 오전 7시50분쯤 이 아파트에서 약 1.5㎞ 떨어진 자신의 현재 거주지 인근 빌라 정문 등에도 농약분사기를 이용해 불을 질렀다. 이곳은 A씨가 어머니와 함께 살던 빌라 앞이었다.

이곳에 사는 한 주민은 “A씨가 투명한 액체를 벽 쪽으로 뿌리는 모습을 보고 ‘소독하나?’라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불을 붙였다”고 말했다. 다른 주민이 소화기를 들고나와 불을 껐는데, A씨는 말도 없이 태연하게 오토바이를 몰고 사라졌다고 했다. 다행히 이곳의 불은 크게 번지지 않았다. 경찰은 A씨가 분사장치가 제대로 작동하는지 시험해보기 위해 미리 방화를 해본 것으로 추정했다.

주민들은 A씨가 평소 다른 사람들과 관계가 좋지 않았다고 말했다. 신모씨(21)는 “다른 사람들한테 욕을 하거나 침을 뱉는 모습을 봤다”면서 “층간소음이 심하고, 욕설을 하면서 주변에 말싸움을 걸거나 밀쳤다”고 말했다. 다른 주민은 “채소 장수가 트럭을 타고 광고 방송을 하면 ‘시끄럽다’고 창밖에다 욕을 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경찰 관계자는 A씨의 집에 그가 남긴 유서와 함께 현금 5만원이 있었다고 밝혔다. 유서에는 ‘가족들에게 미안하다. 어머니 병원비에 보태달라’는 내용이 적힌 것으로 전해졌다.

경향신문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47035 [교황 선종] 유언따라 로마성당 지하 장식없는 무덤에 안장 랭크뉴스 2025.04.22
47034 김경수 "통일부를 평화협력부로 바꿀 것... 착한 2등은 없다" [인터뷰] 랭크뉴스 2025.04.22
47033 [단독] '어게인 금정' 한동훈의 해피워크... 함께 걸으며 표심 파고들기 [캠프 인사이드] 랭크뉴스 2025.04.22
47032 "장식없는 무덤, 묘비엔 이름만"…탈권위 교황의 검박한 유언 랭크뉴스 2025.04.22
47031 [단독] 다른 사람 범죄 혐의로 기소하고 재판받게 한 '황당 검찰' 랭크뉴스 2025.04.22
47030 "이건희 때와 다르다"…이재용 경호원 없이 다니는 이유 랭크뉴스 2025.04.22
47029 트럼프 연준 흔들기에 뉴욕증시 2% 이상 하락 랭크뉴스 2025.04.22
47028 [교황 선종] 트럼프 "멜라니아와 함께 장례식 참석"…재집권 후 첫 외국 방문 랭크뉴스 2025.04.22
47027 얼마나 잘팔리길래…다이소·편의점 이어 대형마트도 뛰어든 ‘이 시장’ 랭크뉴스 2025.04.22
47026 선종 프란치스코 교황 입관…바티칸 현지 표정은? 랭크뉴스 2025.04.22
47025 무임승차 부담만 1조…지하철 출퇴근족 허리 휜다[양철민의 서울 이야기] 랭크뉴스 2025.04.22
47024 尹 “계엄령은 칼…요리·수술·살인 모두 가능” 랭크뉴스 2025.04.22
47023 시장 찾아 어묵 안 먹어도 '지지율 50%'… 이재명 '정책 집중' 통했다 랭크뉴스 2025.04.22
47022 "코스피 5천 열겠다"‥'기본소득·성 평등' 공약 랭크뉴스 2025.04.22
47021 [단독] 건진법사, 전 통일교 간부에 수억 받은 정황…尹 부부 만남 주선 조사 랭크뉴스 2025.04.22
47020 "그의 손길이 11년의 버팀목"... 세월호·위안부·쌍용차·장애인 그리고 교황 랭크뉴스 2025.04.22
47019 “집에서 멀리 떨어진 대학갈수록 결혼 늦추고, 계층인식 낮을수록 출산 미룬다” 랭크뉴스 2025.04.22
47018 [단독]주요 식품·외식 기업 절반은 “미국산 GMO 감자, 원료로 안 쓰겠다” 랭크뉴스 2025.04.22
47017 “외국인 느는데, 정보가 부족”… 통계청, 외국인 통계 확대 추진 랭크뉴스 2025.04.22
47016 트럼프 또 “금리 내려라”…금융 시장 ‘흔들’ 랭크뉴스 2025.04.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