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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선종한 로마 가톨릭 프란치스코 교황이 지난해 5월 10일 로마의 오디토리움 델라 콘칠리아치오네에서 열린 한 행사에 참석, 깊은 상념에 잠겨 있다. [AP=연합뉴스]
21일(현지시간) 선종한 프란치스코 교황은 젊은 시절부터 폐가 약했다. 21살이던 1957년 늑막염을 앓으며 오른쪽 폐의 일부를 잘라내는 수술을 받았다.

고인은 지난 2월 14일 폐렴으로 로마 제멜리 병원에 입원했다. 입원 후에도 상태가 악화돼 여러 차례 호흡곤란을 일으켰고 고용량 산소 치료와 수혈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지난 3월 23일 38일간의 입원 생활을 마치고 퇴원해 최근 외부활동을 서서히 재개한 참이었다.

선종 전날인 20일은 부활절이었다. 교황은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당 2층 발코니에 휠체어를 타고 나타나 성 베드로 광장에 모인 신도들을 향해 “형제자매 여러분, 행복한 부활절입니다”라고 인사를 했다. 그러고 하루 만에 선종 소식이 전해졌다. 이날 안젤로 코마스트리 추기경이 대독한 부활절 연설에서 교황은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의 상황이 개탄스럽다”며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의 휴전을 촉구한다”고 했다.

2000년 가톨릭 역사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은 각별한 의미가 있는 인물이다. 유럽 출신이 아니라 남미 출신이기 때문이다. 가톨릭 역사를 통틀어 교황은 늘 이탈리아인의 전유물이었다. 이유가 있다. 교황은 원래 로마의 주교였다. 로마는 제국이었고, 로마 주교는 교황이 됐다. 교황을 선출하는 추기경단의 대다수도 이탈리아인이다.

이탈리아의 울타리를 벗어나 교황이 된 첫 사례가 요한 바오로 2세(폴란드)다. 이후 베네딕토 16세(독일)로 이어졌지만, 여전히 유럽 출신이 교황이 됐다. 유럽의 울타리를 벗어난 첫 교황이 바로 아르헨티나 출신의 프란치스코 교황이다. 2013년 3월 교황 선출 당시에는 엄청난 파격이었다. 물론 남미의 가톨릭 성장세와 고인이 이탈리아 이민자 가정 출신이란 점이 ‘남미 출신 교황’을 가능케 한 징검다리로 작용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격식보다는 본질을 중시했다. 그가 일반 사제가 아니라 수도회(예수회) 출신인 까닭이 크다. 고인에게는 오랜 수도와 묵상을 통해 일구어낸 영성가의 눈이 있었다. 이전 교황들이 교리와 제도에 묶여 주저주저하던 사안에 대해서도 과감한 개혁과 파격적 메시지를 내놓았다.

2014년 프란치스코 교황이 음성꽃동네를 찾아 오미현씨의 이마에 입을 맞추고 있다. [연합뉴스]
한 인터뷰에서 고인은 이런 질문을 받았다. “동성애자가 선한 의지를 가지고 교회를 찾는다면 어떡하겠습니까?”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렇게 답했다. “내가 누구길래 그들을 심판할 수 있겠습니까.” 동성애 합법화에는 반대하지만, 인간에 대해 심판은 하지 않았다. 그건 전적으로 하느님의 몫이기 때문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사제가 되기 전부터 아르헨티나 빈민촌을 드나들었다. 그곳에는 마약을 유통하는 마피아가 있었다. 치안이 미치지 않았다. 총에 맞아 죽을 수도 있었다. 고인은 그곳에서 봉사활동을 했다. 추기경이 된 뒤에도 빈민촌 활동을 계속했다. 외부에 알리지도 않았다. 그가 교황에 선출됐을 때 아르헨티나 빈민촌에서는 ‘빈민가의 교황’이 나왔다며 기뻐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소탈한 행보로 큰 감동을 주기도 했다. 아르헨티나 추기경 시절에도 고인은 교구에서 제공되는 자동차와 운전기사를 거절했다. 대신 버스와 지하철을 타고 다녔다. 거기에는 “나도 평범한 사람이다”는 메시지가 담겨 있었다. 당시 고인은 이렇게 말했다.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지 알려면 지하철에 끼여서 다니기도 하고, 사람들이 밀면 밀려도 봐야 한다. 대중이 사는 걸 똑같이 살아봐야 한다. 그래야 대중이 무엇을 원하고, 무엇을 느끼는지 알 수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평소에도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빈민촌을 드나들 때부터 그랬다. 2001년에는 에이즈 환자들을 방문해 발을 씻어주고, 그들의 발에 입을 맞추었다. 교황이 타는 의전 차량을 이탈리아어로 ‘파파모빌레(Papamobile)’라고 부른다. 방탄 장치는 기본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취임 직후, 전임 교황들이 타던 방탄차를 마다하고 일반 차량에 올랐다. 이유를 묻자 “제게 불상사가 일어날 수도 있다는 걸 압니다. 하지만 그건 신의 뜻이지요”라고 답했다. 고인은 자신의 뜻보다 신의 뜻을 먼저 물었다. 또 그걸 따르고자 하는 수도자적 자세와 영성이 있었다.

교황으로 선출된 후 고인은 이스라엘을 찾았다. 그리고 한국도 방문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남한과 북한으로 갈라져 있는 지구촌 분단의 현장을 몸소 찾았다. 그곳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은 예수가 내놓았던 화해와 용서의 메시지를, 다시 세상을 향해 내놓았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개혁적이었다. 교황청 관료주의와 바티칸 은행 등 가톨릭 내부를 향해 변화를 일구었다. 또 동성애 환대 문제 등을 놓고 교회 내 보수파와 갈등을 빚기도 했다.

예수회 출신의 수도자 교황답게 그의 말 한마디, 일거수일투족에는 늘 사랑과 영성의 향기가 배어 있었다. 이제는 지구촌이 그 향기를 그리워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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