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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극장가 매출과 관객수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크게 줄며 극장가 부진이 이어지고 있는 17일 서울 시내 한 영화관에서 관람객들이 영화 티켓을 출력하고 있다. 뉴시스
지난달 극장가 매출과 관객수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크게 줄며 극장가 부진이 이어지고 있는 17일 서울 시내 한 영화관에서 관람객들이 영화 티켓을 출력하고 있다. 뉴시스
“창고 영화로 근근이 버텨왔는데, 그마저도 바닥났어요. 내년부터가 진짜 문제입니다.”(메이저 투자배급사 관계자)
한국 영화의 곳간이 말라가고 있다. 최근 2~3년 간 영화 시장을 지탱해온 ‘창고 영화’(코로나19 팬데믹으로 개봉 연기됐던 작품)들이 소진돼가는 반면, 뒤를 이을 신작 제작이 원활하지 않기 때문이다.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 통계에 따르면, 코로나 이전이던 2019년 45편(개봉작 기준)에 달했던 한국 상업영화(순제작비 30억원 이상)는 팬데믹이 한창이던 2021년 17편까지 줄었다가, 2022년 이후 35편 이상으로 다시 늘었다. 창고 영화들이 대거 쏟아져 나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올해는 상업영화 개봉 편수가 다시 감소할 전망이다. 코로나 이전 매년 40편 이상의 영화를 시장에 공급해왔던 5대 투자배급사(CJ ENM, 롯데엔터테인먼트, 쇼박스, NEW,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의 올해 개봉작 수도 20여 편에 그칠 것으로 보인다.

특히 CJ ENM은 '어쩔수가없다'(박찬욱 감독), '악마가 이사왔다'(이상근 감독) 단 두 편에 불과하다. 오랜 기간 시장 점유율 상위권을 지켜온 CJ ENM의 부진은 영화산업의 어려움을 방증한다.

극장은 스크린을 채우기 위한 고육지책으로 재개봉작을 늘리고 있다. 지난해 재개봉 편수는 228편으로, 전년보다 80편 증가했다. 관련 집계를 시작한 2013년 이후 최대치다.




한국영화 보릿고개, 내년부터 본격 시작

문제는 내년 이후 전망이 더 어둡다는 것이다. 영화 제작 기간 2~3년을 감안할 때, 코로나 때 투자 경색의 여파가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미치면서 한국 영화 보릿고개가 시작될 거란 우려가 나오고 있다.

흥행작이 꾸준히 나와야 그 수익으로 재투자가 이뤄지고 신작이 계속 만들어지는데, 흥행은커녕 손익분기점에도 못 미치는 영화가 수두룩하다. 영진위에 따르면, 지난해 개봉한 상업영화 37편 중 손익분기점을 넘긴 영화는 10편에 불과했다. 극장 관객 수도 지난해 1억2313만명으로 코로나 이전(2019년 2억2668만명)의 절반 수준에 불과한 상황이다.

김형석 영화평론가는 "'파묘' '범죄도시' 등 천만 영화가 간간이 나오지만, 대부분의 영화들이 '중박'(300만 관객 이상)에도 못 미치면서 수익성이 악화되고 있다"며 "재투자가 위축되면서 내년 이후 영화 라인업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말했다.

롯데컬처웍스 이경재 콘텐츠사업본부장은 "투자 제작이 결정되는 작품이 거의 없어 모든 투자배급사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면서 "내년은 어떻게든 20편 내외의 작품을 내놓을 수 있겠지만, 내후년이 더 심각하다"고 말했다. 영화에 투자하는 벤처캐피탈 관계자는 "수익성 악화로 투자배급사의 투자 결정이 더욱 신중해지고 있다. 투자가 결정되는 편수가 코로나 이전의 절반 수준"이라면서 "영화 투자 시장이 얼어붙었다"고 토로했다.

가장 우려스러운 시나리오는 개봉 편수 감소가 수익성 악화, 투자 위축으로 이어지고, 제작비 감소로 인해 콘텐트 질까지 떨어지는 악순환에 빠지는 것이다. 올해 칸 국제영화제에 한국 실사 영화가 단 한 편도 초청받지 못한 것은 침체된 영화계 상황과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다.

박혜은 영화저널리스트는 "코로나 여파로 인한 영화계 보릿고개가 2~3년 간 이어질 것 같다. 폐업하는 중소 제작사도 늘고 있다"면서 "흥행작이 나오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도 정부 차원의 투자 지원책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정부가 침체된 영화산업에 마중물 부어줘야

침체된 영화 시장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선 가장 먼저 투자가 활성화돼야 한다는 게 영화업계의 공통된 의견이다. 민간 투자에만 기댈 수 없는 상황이기에, 정부 지원이 마중물 역할을 해줘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익명을 요구한 한 영화투자사 대표는 "투자배급사들이 영화의 씨앗을 움트게 하는 기획개발비조차 제작사에 지급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면서 "올해 말 끝나는 제작비 세액공제 제도를 연장하거나 상시화하는 등 영화 산업을 살리기 위해 정부가 발 벗고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윤하 영진위 정책개발팀장 또한 "가장 큰 문제는 제작되는 영화 편수가 줄고 있다는 것"이라며 "기획·개발 단계부터 활발해질 수 있도록 정부가 투자배급사·제작사에 대한 지원을 해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높아진 영화 제작비에 비해 정부 예산 지원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있다. 김형석 영화평론가는 "문체부가 올해 중예산 영화에 100억원을 지원하기로 했지만, 배급·마케팅 비용만 10억~15억원에 달하는 상황에서 과연 몇 편이나 수혜를 받을 지 모르겠다"며 "더 많은 예산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롯데컬처웍스 이경재 본부장은 모태펀드(콘텐트 산업을 지원하는 정부 주도의 펀드) 상호출자제한 규제 완화를 촉구했다. 모태펀드가 CJ ENM, 롯데,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등 대기업 집단에 속한 영화사 작품에 투자할 수 없게 돼있는 점을 짚은 것이다. 그는 “지금은 대기업이냐 아니냐를 따질 때가 아니다. 붕괴가 시작된 한국영화 시장을 살리기 위해 그런 규제를 한시적으로라도 풀어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극장 매출이 전체 영화산업 매출의 70%를 차지하는 상황에서, 코로나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극장에 대한 지원도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CGV 황재현 전략지원 담당은 "관객 유치를 위해 오래된 극장 시설 개선 및 특화관 확대를 위한 재원이 필요한데, 코로나 이후 누적 적자 때문에 신규 대출을 받기 힘든 상황"이라며 "정부가 저금리 대출 등 금융 지원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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