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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 예비의사 못 걸러내는 양성 체계
의료 행위 높은 윤리적 기준 적용해야

편집자주

우리나라에서 의사는 실수로 의료 사고를 내면 처벌받지 않습니다. 일반 범죄로 금고형 이상을 받아도 실제 의사면허 취소 처분까지 하세월인 경우도 많습니다. 의대 재학 중 파렴치한 범죄로 징계를 받아도 졸업장만 따면 의사 국가시험을 치를 수 있습니다. 한마디로 '종신 면허'나 다름없는 의사면허 제도의 문제점을 짚어봅니다.
16일 서울의 한 의과대학 앞에서 시민들이 오가고 있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련 없음. 뉴스1


2017년 1월 서울 한 의대 동아리 수련회 술자리에서 의대생 A씨가 B씨 등 동기 3명을 성추행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B씨의 피해 신고에 학교 측은 A씨에게 휴학을 권고하는 선에서 수습하려 했다. B씨는 애써 사건을 잊으려 노력했지만 5년이 지난 2022년 대학 수련병원 임상실습 중 A씨와 마주치며 다시 악몽에 갇혔다. 참다 못한 B씨는 졸업을 앞둔 2023년 2월 교내 성평등센터에 피해 사실을 알렸고 A씨는 그해 말 무기정학 처분을 받았다.

그러나 A씨 징계는 3개월 만인 지난해 3월 해제됐다. A씨는 유급당한 한 과목을 재수강한 뒤 대학을 졸업했다. 이어 같은 해 가을 의사 국가고시(국시)에도 합격해 곧 흰 가운을 입는다. 반면 A씨의 징계 해제를 까맣게 모르고 있던 B씨는 뒤늦게 큰 충격을 받았고 우울증에 시달리다 끝내 의사의 꿈을 포기했다. 가해자가 버젓이 의사가 되는 상황을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B씨는 "이민까지 고려 중"이라고 털어놨다. A씨에 대한 징계 해제 이유에 대해 학교 측은 "총장 승인까지 거쳐 절차상 문제가 없다"고만 해명했다. A씨 측은 "무기정학 기간 중 집에서 자숙했으며 의정 갈등으로 의대생들이 대거 휴학하는 와중에 징계 해제 처분을 받았다"고 답했다. 그는 B씨에 대해선 "피해자가 정신적 고통을 겪고 있다는 점이 안타깝고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고 했다.

형사처벌 받아도 의사 될 수 있어

감옥. 게티이미지뱅크


불법 행위를 한 의대생도 의사면허를 어렵지 않게 취득할 수 있는 의료인 양성 체계에 문제가 있다는 목소리가 높다.

의사 국시는 의대 학사 학위만 있으면 응시할 수 있다. 재학 중 파렴치한 성범죄를 저질러도 제적만 피하면 된다. 설령 제적을 당해도 다른 의대에 진학해 졸업하면 그만이다. 징계를 넘어 금고형 이상의 형사처벌을 받아도 일정 시간만 지나면 의사가 될 수 있다. 실형 집행 종료 후 5년, 집행유예 기간 종료 후 2년이 지나거나 선고유예 기간이 만료되면 국시 응시 자격이 생긴다.

2011년 5월 서울 한 의대에서 술에 취한 동기를 집단 추행하고 불법 촬영해 징역형을 받고 제적당한 의대생 3명 중 1명은 형기를 마친 뒤 다른 의대에 입학해 2020년 의사면허를 획득했다. 그는 이름을 바꾼 채 의술을 익히고 있다. 2022년 6월에도 동기들이 옷 갈아입는 모습을 불법 촬영한 다른 의대생 C씨가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학교는 제적 대신 무기정학 처분을 내렸다. 집행유예 기간 종료 후 2년이 지나고 징계가 해제되면 국시를 볼 수 있는 길이 열리는 셈이다. C씨에 대한 징계 해제 계획을 묻자 대학 측은 "아직 변동(계획)은 없지만 학생이 반성하고 피해 학생들이 졸업하거나 해당 기간(집행유예)이 끝나면 학과장 요청에 따라 징계위에서 해제 여부를 심의할 수 있다"며 가능성을 닫아놓지 않았다.

"중대 범죄 전력, 응시 자격 박탈"



문제가 있는 예비의사를 걸러낼 수 있도록 제도 개선 필요성이 제기된다. 정형준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정책위원장은 "자기 통제가 어렵거나 타인에게 위해를 가할 가능성이 있는 사람이 면허를 취득하면 공익에도 악영향을 미친다"며 "의대 학칙에 중범죄를 저지른 사람에 대한 입학 제한, 퇴교 조치를 적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다른 국가 고시와의 형평성 문제가 있을 수 있지만 정 위원장은 "의료 행위는 배타적 권리라 다른 분야보다 더 높은 윤리적 기준을 적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호균 법무법인 히포크라테스 대표변호사도 "미국에서는 면허를 받기 위해 도덕적 결함이 없어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며 "유죄 판결을 받은 경우 면허 취득이 불가능한 주(州)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법을 개정해 중대한 범죄 전력이 있는 경우 국시 응시 자격을 박탈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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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042008470005558)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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