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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만에 유죄 확정… 그사이 종합병원 근무
업무상 과실치사상 책임 유무 떠나 면허 유지
일반 범죄 금고 이상 면허 취소…수년째 지연
"생명 다루는 직업, 의사 면허 엄격 관리해야"

편집자주

우리나라에서 의사는 실수로 의료 사고를 내면 처벌 받지 않습니다. 일반 범죄로 금고형 이상을 받아도 실제 의사면허 취소 처분까지 하세월인 경우도 많습니다. 의대 재학 중 파렴치한 범죄로 징계를 받아도 졸업장만 따면 의사 국가시험을 치를 수 있습니다. 한마디로 '종신 면허'나 다름없는 의사면허 제도의 문제점을 짚어봅니다.
2월 서울 시내의 한 의과대학 병원에서 한 의료진이 이동하고 있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련 없음. 뉴시스


2015년 1월 19일 새벽 1시 30분, 당시 39세였던 권일훈(가명)씨가 숨졌다. 권씨는 2014년 12월 초 오른발 괴사 치료를 위해 서울의 한 대학병원 성형외과에 입원했고, 무사히 수술을 마친 뒤 일반 병실로 옮겨졌다. 그때까지 치료는 순조로웠다. 그러나 수술 당일 저녁, 갑자기 심정지가 왔다. 이후 중환자실로 옮겨졌으나 20일간 의식을 되찾지 못했고 끝내 사망했다. 마취나 수술 직후 단시간의 진통 효과를 주기 위해 사용하는 약물인 펜타닐 과다 투여가 사인이었다.

유족 고발로 수사가 시작됐고 펜타닐 처방을 내린 성형외과 전공의 윤모씨가 재판에 넘겨졌다. 윤씨는 2023년 5월 1심에서 금고 3년(업무상 과실치사)에 벌금 100만 원(의료법 위반)을 받았으나 이듬해 12월 2심에서 금고 2년에 집행유예 3년(벌금 100만 원은 유지)으로 감형됐다. 윤씨의 상고 취하로 올해 1월 형이 확정됐다. 윤씨는 권씨 사망 직후부터 지금까지 줄곧 환자를 진료하고 있다. 현행법상 의사는 업무상 과실치사로 처벌받아도 면허 취소가 되지 않아서다. 의료법 위반의 경우도 금고형 이상이 나와야 면허 취소 요건에 해당한다.

환자 사망해도 과실치사엔 의사 면허 유지

윤모씨 재판 일정 및 근무 타임라인. 그래픽=이지원 기자


업무상 과실치사상 범죄를 의사면허 취소 요건에서 제외한 건 소신껏 진료할 수 있는 환경을 보장해주기 위해서다. 의사도 사람인지라 실수로 의료 사고를 낼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처럼 면죄부를 주는 게 온당하지 않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이번 사건만 봐도 전공의 윤씨가 조금만 더 주의를 기울였다면 사고가 나지 않았을 수 있다는 정황이 수사, 재판 과정에서 속속 드러났다.

권씨 사망 원인이 된 펜타닐은 오남용 시 극단적 중독과 사망에 이를 수 있는 마약성 진통제다. 호흡 억제 효과를 관리할 수 있는 전문가만 처방할 수 있고 매우 조심스럽고 신중하게 다뤄져야 한다. 그러나 판결문에 따르면 윤씨는 통상 투여량인 펜타닐 0.05~0.1㎎보다 5~10배 많은 0.5㎎을 투여하도록 처방했다. 한국일보가 입수한 과오보고서엔 사고 당시 담당 간호사가 "처방된 용량을 주는 것이 맞느냐"고 윤씨에게 재차 확인했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과오보고서는 사고 후 간호사들이 병원에 제출한 문건이다. 간호사들도 투여량에 의문을 나타낸 것이다. 또 펜타닐과 같은 약물은 환자 상태를 실시간 파악해 응급조치가 가능한 모니터링 장비가 완비된 상태에서 투여해야 한다. 하지만 고인은 이런 설비가 없는 일반 병실에서 펜타닐 주사를 맞은 것으로 파악됐다.

사고 후 처리 과정도 석연치 않다. 고인은 심정지가 온 뒤 중환자실로 옮겨졌다가 신장내과로 전과돼 사망 전까지 혈액투석 등을 받았다. 당시 윤씨가 직접 작성한 전출기록지와 협진의뢰서 등엔 본인의 펜타닐 투여와 관련한 의료 행위가 빠져 있다. 검찰은 윤씨에게 의료법 위반 혐의를 적용하며 자신의 잘못을 숨기기 위한 목적이라 판단했다. 재판부 역시 심정지가 온 뒤라 소생 가능성이 낮긴 했지만 펜타닐 처방 미기재로 적절한 치료가 이뤄지지 않았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또 다른 의료 사고로 이어지기도

게티이미지뱅크


치명적인 과실로 사망사고를 내 재판을 받는 동안에도 윤씨는 정상적으로 환자를 돌봤다. 사고 당시 대학병원 전공의였던 그는 2018년 2월쯤 전문의 자격을 취득한 뒤 2020년 2월까지 전임의로 해당 병원에서 계속 근무했다. 이후 2020년 4월쯤 경기 고양의 대학병원 성형외과로 옮기는 등 1, 2심 재판 과정 내내 환자를 진료하다 형이 확정된 직후에야 해임됐다. 최종심 결과가 나오자 병원 측이 인사위원회를 열어 당연면직 처리한 것이다. 그러나 윤씨는 한 달 뒤인 올해 2월 고양의 다른 종합병원에 바로 재취업했다. 형 확정 직후인데도 윤씨를 채용한 이유에 대해 해당 병원 측은 "윤씨가 다른 병원에서 계속 진료를 봐온 걸 고려했다"며 "의료 대란으로 의료진 수급이 어려워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 해명했다.

"마약성 진통제를 간호사가 '너무 많지 않냐'고 하는데도 투여하도록 해 심정지로 인한 뇌사에 이르게 만들었습니다. 의무 기록조차 성실하게 하지 않아 자신의 과실을 숨기려는 의사가 어떻게 대학병원에서 환자를 보며 다른 의사를 가르칠 수 있습니까."

고인 어머니 장모(78)씨는 지난해 11월 재판부에 낸 탄원서를 통해 이렇게 호소했다. 유족들의 피 토하는 절규에도 현행법상 윤씨와 같은 과실범의 의료 행위를 막을 방법은 없다. 이에 때로는 비슷한 사고가 반복되기도 한다. 2014년 가수 신해철의 수술을 집도했다가 사망케 한 의사 강모(55)씨는 또 다른 의료 사고로 올해 2월 금고 1년을 선고받았다. 박호균 법무법인 히포크라테스 변호사는 "과거엔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에도 의사 면허를 취소할 수 있었다"며 "법이 개정되며 반복적 의료사고나 중대한 과오를 저지른 의사에 대해서도 아무런 처분이 내려지지 않게 됐다"고 쓴소리를 했다.

형 확정 후에도 수년째 면허 유지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이 지난달 6일 국회도서관 대강당에서 열린 의료사고안전망 강화를 위한 정책토론회에서 축사를 하고 있다. 뉴시스


업무상 과실치사상 외에 다른 범죄로 처벌받은 의사들에 대한 면허 취소 처분 역시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형 확정 후 취소 처분까지 오래 걸려서다.

애초 의사들은 의료법 위반 혐의로 금고 이상 형을 받았을 때만 면허 취소 대상이었지만 2023년 11월 개정 면허취소법에 따라 사기·성범죄·음주운전 등 일반 범죄를 저질러도 금고 이상 형이 선고되면 면허가 박탈된다.

그러나 검찰의 형 확정 사실 통보 후 보건복지부 내부 심의를 통해 면허가 취소되기까지 보통 수 년이 걸린다. 이 기간 진료를 이어가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신현호 법무법인 해울 변호사에 따르면 2002년 인천에서 무면허 의료업자와 동업해 형사처벌을 받은 의사가 2013년에 면허가 취소된 사례도 있다. 신 변호사는 "그 의사는 11년간 서울에서 개업해 진료를 계속한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처럼 현재 있는 면허 취소 규정도 제대로 이행되지 않는데 정부 차원에서 아예 형사처벌을 면제하는 방안이 추진돼 논란이 일기도 했다. 복지부는 지난달 '의료사고 안전망 강화를 위한 정책 토론회'에서 필수의료 분야의 경우 사망사고가 발생해도 당사자 간 합의가 이뤄지면 반의사 불벌(피해자가 처벌을 원치 않는다는 의사를 표시하면 형사처벌 불가)을 적용한다는 방침을 발표했다. 의료사고 심의위원회가 기소 자제를 권고하면 수사기관이 받아들여야 한다는 내용도 담겼다. 1년 이상 이어진 의정갈등 해소를 위한 일종의 '당근책'이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형사처벌 면제는 신중해야 할 뿐 아니라 의사 면허도 지금보다 더 엄격히 관리돼야 한다고 말한다. 박호균 변호사는 "영리 목적이나 부정한 동기가 개입되면, 업무상 과실치사죄라도 면허가 취소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면허 취소 처분 결정 전까지 의료 행위가 계속되는 사각지대를 막기 위해 박 변호사는 "의료인, 시민단체, 법조인 등이 참여하는 위원회를 구성해 면허 취소 여부를 논의하는 '임의적 면허 취소 규정'을 만들면 된다"고 대안을 제시했다. 신수경 법무법인 영 변호사도"사법부가 면허 취소 수위의 형을 선고하면 복지부는 신속하게 심사를 해야 한다"며 "의사가 국민 건강에 미치는 영향력을 고려해 지연과 공백이 발생하지 않도록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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