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묘 정전 보수 공사 5년 만 완료
155년 만 환안 행렬 장관 연출
3.5㎞ 행렬에 시민 1,100명 참여
왕실 제례 '종묘대제' 6년 만 공개
155년 만 환안 행렬 장관 연출
3.5㎞ 행렬에 시민 1,100명 참여
왕실 제례 '종묘대제' 6년 만 공개
20일 서울 종로구 일대에서 창덕궁 구(舊) 선원전에 임시 봉안됐던 왕과 왕비의 신주 49위를 종묘 정전으로 다시 옮기는 환안제(還安祭)가 거행되고 있다. 손효숙 기자
20일 오후 2시 30분쯤 교통이 통제된 서울 광화문광장에 말과 가마가 모습을 드러냈다. 검은 용머리 장식을 올리고 녹색 비단을 덧댄 가마 28기를 호위하는 1,000여 명 행렬이 궁중음악 취타 선율에 맞춰 줄지어 움직였다. 화려한 주렴을 단 가마가 품은 것은 조선 왕가의 신주(神主·죽은 사람의 위패). 창덕궁 선원전에 모셨던 조선의 왕과 왕비, 대한제국 황제와 황후 49위 신주를 종묘 정전으로 옮기는 환안(還安) 행렬이다. 이날 창덕궁을 출발한 호송 행렬이 안국역 사거리를 지나 광화문과 세종대로, 종로의 빌딩 숲을 배경으로 이어지는 동안 시민들은 숨죽여 장엄한 멋을 음미했다. 155년 만의 재연인 데다 조선시대를 포함해도 네 번째인 드문 의식에는 내국인 150명과 외국인 50명 등 사전 모집한 시민 200여 명이 동참했다.
그래픽=강준구 기자
155년 전 그때처럼...2시간 환안제 재연
종묘영녕전증수도감의궤 반차도 속 신연 가마의 모습. 한국학중앙연구원 제공
1870년(고종 7년) 거행된 환안제는 헌종(재위 1834∼1849)대 제작된 '종묘영녕전증수도감' 의궤의 '이환안반차도' 등을 바탕으로 완벽하게 재연했다. 조선시대엔 신주를 신전 밖으로 옮기는 것을 '이안(移安)', 다시 모시는 것을 '환안(還安)'이라고 했는데 의궤를 통해 세밀한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5년 전 이안제는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약식으로 치렀으나 이날 환안제는 의궤에 입각해 최고 예우를 갖췄다.
이날 행렬에서 단연 눈길을 끄는 것은 원래 모습대로 고증 제작된 '신주 가마'였다. 궁 밖에서 신주를 운반한 '신연(神輦)' 9기, 궁 안에서 이동 시 사용한 '신여(神轝)' 10기, 제사에 사용한 향로와 향합을 운반하는 '향용정(香龍亭)' 9기 등 가마 28기가 사용됐다. 이 가운데 종묘 1실에 신주를 옮길 가마 3기가 이번에 특수 제작됐다. 옻칠을 담당한 박귀래 나전칠장(강원도 무형유산)과 단청칠을 담당한 이정기 악기장(국가무형유산), 주렴 작업을 책임진 박성춘 담양 죽렴장(전라남도 무형유산) 등 무형유산 보유자들이 공정별로 투입돼 5개월에 걸쳐 만든 결과물이다.
왕의 신주를 운반하는 가마 신연(神輦). 궁 밖에서 이동 시 사용했다. 국가유산청 제공
5년 만에 돌아온 국보 '정전'...신주 49위 품다
보수 공사를 마친 '종묘 정전' 전경. 국가유산청 제공
행렬은 총 3.5㎞ 도심 구간을 두 시간 동안 천천히 움직여 오후 4시쯤 서울 종묘 정전에 도착했다. 정전은 1395년 태조 이성계가 창건한 뒤 600년 넘도록 왕실 제례가 이어져 온 한국 전통 건축의 정수로 꼽힌다. 격조 있는 맞배지붕이 20개 기둥으로 이어지는, 국내 현존 목조 건축물 중 가장 긴 건물이다. 1985년에는 국가지정문화유산 국보로 지정됐고, 1995년 한국 최초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됐다. 올해로 등재 30주년을 맞았다.
2014년 이뤄진 안전 점검 결과 구조적 균열, 기와 탈락, 목재의 노후화 등 문제가 확인돼 국가유산청은 2020년부터 보수 공사에 돌입했다. 1991년 이후 약 30년 만에 이뤄진 대대적 공사를 거치며 7만 장에 이르는 기와를 공장제 기와에서 수제 기와로 교체하고, 정전 앞 시멘트 모르타르 대신 수제 전돌을 설치했다. 수리과정에서 정전의 개보수 의미와 기록이 담긴 상량문(上樑文)이 발견되기도 했다.
이날 신주 49위를 종묘 정전과 영녕전 49실에 옮겨 봉안한 후에는 무사 환안을 알리는 고유제(告由祭)가 이어졌다. 고유제는 국가와 사회, 가정에 큰 변화가 있을 때 신령에게 지내는 제사를 뜻한다. 고유제는 사단법인 전주이씨대동종약원 주관으로 약 200명이 참여해 전통 절차에 맞춰 봉행됐다.
600년 제례 전통 계승...'종묘대제' 공개도
종묘 정전에서 열리는 고유제. 국가유산청 제공
이날 환안제를 시작으로 제례 전통을 체험할 수 있는 행사가 이어진다. 오는 26일부터 일주일간 진행되는 '묘현례(廟見禮·혼례를 마친 왕비나 세자빈이 종묘에 인사를 드리는 의식)'를 비롯해 24일부터는 정전에서 종묘제례악 야간 공연을 선보인다.
다음 달 4일에는 종묘에서 종묘대제가 6년 만에 공개 봉행된다. '종묘대제'는 왕실의 의례와 무용, 음악이 어우러진 종합 예술로 문화적 가치를 인정받아 2001년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 대표 목록으로 등재됐다. 1474년에 편찬된 국가의 기본 예식인 국조오례의 중 길례에 속하며, 국왕이 직접 거행하는 가장 큰 규모의 제사다. 1969년 복원돼 현재까지 그 명맥을 이어오고 있으며, 매년 5월 첫 번째 일요일에 유교의 예법과 절차를 엄격히 지켜 웅장하고 엄숙한 의식으로 거행된다. 국가유산청 관계자는 "환안제를 통해 종묘 정전의 새로운 출발을 알리고, 600년을 이어 온 제례 전통을 재현해 과거와 현재, 미래의 소중한 연결고리가 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종묘대제 포스터. 국가유산청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