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건파’ 베선트 재무-러트닉 상무장관 나서
‘강경파’ 나바로 고문 부재한 틈타 기습 설득
‘강경파’ 나바로 고문 부재한 틈타 기습 설득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뒤에 서있는 스콧 베선트 재무장관과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 로이터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공언했던 상호관세를 발효되던 날에 즉시 보류한 것은 관세 온건파인 스콧 베선트 재무장관과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이 트럼프를 설득했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베선트 장관 등은 관세 강경파인 피터 나바로 백악관 통상제조 선임고문이 없는 틈을 타서 트럼프를 만나 상호관세 보류를 이끌어냈다고 미국 언론이 보도했다.
18일 월스트리트저널 보도에 따르면, 트럼프가 주요 통상국들을 상대로 발표한 상호관세가 발효된 지난 9일 증시가 폭락하는 등 금융시장이 요동치자, 베선트와 러트닉 장관은 이날 아침 백악관으로 급히 들어갔다. 이들이 트럼프 대통령과의 면담 약속도 없이 서둘러 백악관으로 달려간 이유는 이날 아침 나바로 고문이 백악관의 다른 장소에서 케빈 해세트 경제고문과 만남이 예정됐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다.
베선트 장관 등은 증시 폭락에 이은 미국채 투매로 금융시장이 붕괴될 우려가 보이자, 트럼프 대통령이 상호관세 보류 조처를 즉각 시행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를 설득하려면, 큰 장애물을 넘어야 했다. 나바로였다. 관세 강경파인 나바로는 트럼프 주위를 맴돌면서 관세에 대한 온건한 정책을 차단해왔다. 나바로는 토론에서 물러나지 않았고, 트럼프에게 관세를 그대로 강행해야 한다고 강력히 촉구해왔다.
트럼프 경제팀 파워게임 따라 출렁이는 관세
베선트 장관 등은 나바로가 트럼프 주변에 없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백악관으로 달려가 면담약속도 없던 트럼프를 즉각 만났다. 두 사람은 금융시장을 진정시키려면 즉각적인 상호관세 유예가 필요하고, 이를 즉각 발표해야만 한다고 트럼프를 설득했다. 이들은 트럼프가 소셜미디어이 트루스소셜에 상호관세 유예를 발표할 때까지 그의 곁을 지켰다. 또 베선트는 즉각 캐롤라인 레빗 백악관 대변인과 함께 기자들 앞에 서서 이 발표를 공식화했다.
트럼프의 발표는 금융시장 안정에 기여했다. 이날 늦게 트럼프도 금융 시장이 우려하고, 채권 시장에서 경고 징후가 나왔기 때문에 상호관세 유예를 결정했다고 밝혔다.
나바로는 트럼프의 소셜미디어 발표로 상호관세 유예 조처를 알고는 놀랐다. 이런 사정에 대해 월스트리트 저널로부터 질문을 받은 나바로를 “통상 팀을 분할 점령하려는 익명의 소식통으로부터의 장난질”이라고 답했다.
이번 일로 트럼프 행정부 경제팀 내에서의 파워 게임에 변화가 예상된다. 월가 출신의 관세 온건파인 베선트 재무장관이 향후 관세협상에서 주도권을 쥐고, 실무를 러트닉 상무장관이 행사하는 것으로 정리됐다. 베선트와 러트닉의 동맹은 트럼프 행정부 내 권력 게임이 얼마나 변화가 심한지 보여준다.
베선트와 러트닉은 트럼프 행정부 출범에 앞서 재무장관을 놓고 치열한 싸움을 벌였다. 베선트는 일론 머스크의 반대를 누르고 재무장관에 낙점됐다. 베선트보다는 관세에 강경한 러트닉은 상무장관으로 정해졌다. 하지만, 관세에서는 나바로가 트럼프에게 압도적 영향력을 가졌다.
나바로는 트럼프 1기 집권 때 백악관 국가통상위원회 국장을 지내며, 트럼프의 통상 정책에 영향을 줬다. 그는 특히 트럼프가 낙선한 2020년 대선 결과를 뒤집으려는 혐의로 의회 청문회에 소환됐으나 거부해, 의회모독죄로 복역했다. 트럼프는 나바로가 자신 때문에 복역했다고 옹호하는 등 그를 전적으로 신임했다.
나바로는 1기 집권 때에도 스티브 므누신 재무장관, 게리 콘 국가경제위원장 등 최고위 경제 수장들과 공개적인 언쟁을 마다하지 않았다. 중국 출장 때에는 므누신 재무장관과 의견이 안 맞자, 회담장 밖으로 나가 언쟁을 벌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 관세보류를 계기로 그의 영향력이 큰 타격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도 트럼프가 미국채 투매 사태까지 벌어진 금융시장 동요에 겁을 먹고는 관세 정책에서 뒷걸음쳤기 때문이다. 나바로가 주장하는 관세 강행이 어떤 결과를 부를지 트럼프가 경험한 것이다.
한편,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는 마치 자신과 트럼프의 통화가 영향을 미친 듯이 말했다. 그는 지난 14일 총리공관에서 열린 4차 경제안보전략태스크포스(TF) 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미 정부의 상호관세 적용 90일 유예 조처와 스마트폰·컴퓨터 등 일부 품목의 상호관세 부과 대상 제외 방침에 대해 “자신과의 통화 이후(미국이 한 발표)”라고 강조했다.
그는 “(트럼프와의 통화 당시) 어느 점에서 어떻게 협상을 진행해갈 것인지에 대한 (우리의) 입장을 트럼프 대통령에게 상세히 설명했다. 트럼프 대통령도 매우 만족해했다”고 말했다. 지난 8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한 대행의 통화와 미 정부의 관세 정책 변화가 인과관계가 있다는 식의 아전인수식 설명을 내놓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