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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궤 기록 토대로 155년 만에 환안 재현…전국서 온 가마 28기 눈길
시민 등 1천100명 규모로 열려…"전통과 현재, 미래 잇는 고리되길"


종묘 정전으로 향하는 조선 왕실 신주
(서울=연합뉴스) 임화영 기자 = 20일 서울 종로구 창덕궁에서 종묘 정전까지 조선 왕과 왕비, 대한제국 황제와 황후의 신주 환안 행렬이 이동하고 있다. 2025.4.20 [email protected]


(서울=연합뉴스) 김예나 기자 = 나발, 나각, 태평소 등 악기를 든 취타대가 창덕궁 금호문 주변에 나타나자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쏠렸다.

줄을 맞춰 선 이들은 엄숙한 표정으로 곡을 연주했다.

호위를 받으며 나타난 건 다름 아닌 가마. 그 안을 볼 수는 없었지만 '태조고황제', '성종대왕 중종대왕' 등이 적힌 의장(儀仗) 행렬이 곁을 지켰다.

일요일 오후 도심 한복판에 나타난 가마 속 주인공은 조선의 역대 왕과 왕비, 대한제국 황제와 황후의 혼이 깃든 신주(神主·죽은 사람의 위패)였다.

종묘 정전 신주 환안 행렬
(서울=연합뉴스) 홍해인 기자 = 20일 서울 율곡로와 사직로 일대에서 종묘 정전 신주 환안 행렬이 이동하고 있다. 2025.4.20 [email protected]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종묘 정전(正殿)의 주인이 본래 자리로 돌아왔다.

대규모 공사를 위해 정전에 있던 신주 49위를 창덕궁 옛 선원전으로 옮긴 지 약 4년 만의 귀환이다.

20일 서울 종로구 창덕궁과 광화문 일대에서 펼쳐진 종묘 정전 환안(還安·다른 곳으로 옮겼던 신주를 다시 제자리로 모심) 행렬이 시민들의 눈을 사로잡았다.

취타대를 비롯해 도가대, 전사대, 의장대 등 약 900명의 행렬은 마치 사극 드라마에서 볼 법한 모습으로 분장했고, 옛 복식도 갖춰 입었다. 맨 앞에는 말 7마리가 선두에 나서 도로를 거닐었다.

창덕궁 금호문을 출발한 이들이 광화문, 종로 등 도심 한복판을 행진하자 시민들은 휴대전화를 꺼내 연신 사진을 찍었고 '무슨 행사냐'며 묻기도 했다.

휴일 도심 종묘 정전 신주 환안 행렬
(서울=연합뉴스) 홍해인 기자 = 20일 서울 율곡로와 사직로 일대에서 종묘 정전 신주 환안 행렬이 세종대로를 향해 이동하고 있다. 2025.4.20 [email protected]


외국인 관광객들은 행렬을 배경으로 한 채 '셀카'(셀프 카메라)를 남겼다.

금호문 일대에서 행사를 보던 이병헌 씨는 "155년 만에 열리는 행사를 보러 일부러 찾아왔다. 우리 옛 전통과 문화를 되살린 모습이 웅장하다"고 벅찬 감정을 표했다.

왕의 신주를 옮기는 의례를 재현할 수 있었던 건 기록 덕분이다.

헌종(재위 1834∼1849) 대인 1835∼1836년에 종묘를 증축한 과정을 정리한 '종묘영녕전증수도감의궤'(宗廟永寧殿增修都監儀軌)에는 이안과 환안 과정이 남아있다.

'종묘영녕전증수도감의궤'
한국학중앙연구원 디지털 장서각 소장. [국가유산청 재판매 및 DB 금지]


당시 기록에 따르면 조선 왕실은 종묘에 있던 신주를 경희궁에 이안(移安·신주를 다른 곳으로 옮겨 모심)했다가 정전과 영녕전 공사가 끝난 뒤 다시 옮겼다.

그러나 의궤 내용 그대로 행사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국가유산청 궁능유적본부 관계자는 "(왕의 신주를 운반하는) 신여(神轝), 신연(神輦) 등 가마를 고증하고 준비하기가 가장 어려운 숙제였다"고 전했다.

당시 기록에는 신여 4대, 향용정(香龍亭) 8대, 신연 8대를 사용해 총 2번 환안했다고 돼 있다. 궁 밖에서 왕의 신주를 운반하는 신연의 경우, 16번 움직인 셈이다.

'종묘영녕전증수도감의궤' 반차도에 그려진 '신연'
한국학중앙연구원 디지털 장서각 소장. [국가유산청 재판매 및 DB 금지]


의궤에 기록된 인원도 한 번에 1천420명, 총 2천840명에 달한다.

궁능유적본부 측은 "가마를 모두 제작할 수 없기에 신여, 향용정, 신연 각 1대를 제작하고 나머지는 기존 가마를 수리하고 빌려 28기를 확보했다"고 설명했다.

국가유산청은 전문가 자문을 거쳐 오늘날 현실에 맞게 행사 규모를 조정하되, 시민 행렬단 200명이 함께하는 방식으로 의례를 재현했다.

한국에 지인을 만나러 왔다가 행렬단에 참가했다는 호주인 제임스 그리마 씨는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더 알게 돼 즐겁다"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종묘영녕전증수도감의궤' 반차도에 그려진 가마
왼쪽부터 신여, 향용정. 한국학중앙연구원 디지털 장서각 소장. [국가유산청 재판매 및 DB 금지]


7살 딸과 함께 행사를 본 박유선 씨는 "우연히 나들이 나왔다가 행사를 봤는데 아이가 좋아했다"며 "우리 문화와 역사를 소개하는 행사가 더 늘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국가유산청은 이날 오후 6시 30분께 종묘 정전에서 신주가 무사히 돌아왔다고 고하는 고유제(告由祭)를 열 예정이다.

이어진 기념행사에서는 종묘 정전 월대를 배경으로 외벽 영상(미디어 파사드)을 활용한 특별 공연 등이 펼쳐진다.

국가유산청은 "600년을 이어온 제례 전통이 다시 재현되는 오늘이, 전통과 현재, 그리고 미래를 잇는 소중한 연결고리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종묘 정전으로 향하는 조선 왕실 신주
(서울=연합뉴스) 임화영 기자 = 20일 서울 종로구 창덕궁에서 종묘 정전까지 조선 왕과 왕비, 대한제국 황제와 황후의 신주 환안 행렬이 이동하고 있다. 2025.4.20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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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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