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겸 국무총리가 지난 8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겸 국무총리가 향후 미국과의 관세 협상에서 주한미군 방위비 문제를 연계해 논의할 가능성을 시사했다. 경제와 안보는 별개라는 입장이던 정부가 방위비 문제와 연계할 수 있다는 여지를 드러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한 권한대행은 지난 17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진행된 영국 파이낸설타임스(FT)와의 인터뷰에서 주한미군 주둔 관련 협정을 다시 논의할 의사가 있음을 시사했다고 총리실이 20일 밝혔다. 한 권한대행 인터뷰는 이날 공개됐다.
FT에 따르면 한 권한대행은 ‘관세·통상 문제와 주한미군 방위비·주둔 등 안보 문제를 연계해 협상하겠다’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발언과 관련해 현재는 안보 문제를 논의할 “명확한 틀(clear framework)”은 없다고 밝혔다.
한 권한대행은 그러면서 “사안의 성격에 따라(depending on the issues)” 지난해 바이든 행정부 시절 체결된 2만8500명의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 협정을 재개할 수 있다고 했다. FT는 이에 관련해 한 권한대행이 “의지를 시사했다(signalled a willingness)”고 표현했다.
한국 정부가 향후 미국과의 관세 협상에서 주한미군 방위비와 연계해 논의할 가능성을 시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8일 한 권한대행과 통화한 직후 “원스톱 쇼핑”이라며 방위비 문제까지 포함한 ‘패키지 딜’을 거론해왔지만 정부는 선을 그어왔다.
정부는 경제와 안보는 별개라며 조선·액화천연가스(LNG)·무역균형 등 3개 분야 위주로 연계해 협상하겠다는 방침을 밝혀왔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을 “머니 머신(현금인출기)”이라며 주한미군 분담금 대폭 인상을 강조해왔다는 점에서 안보 문제와 연계한 협상은 한국에 불리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관세·방위비 연계를 거듭 시사해온 상황에서 정부가 이에 맞는 협상 전략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일각에서 제기돼왔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16일(현지시간) 일본과의 첫 관세 협상에서 일본의 방위비 부담 확대를 거론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이번 주 진행될 한·미 첫 관세 협상에서도 방위비 문제가 다뤄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다만 정부는 한 권한대행의 ‘방위비 논의 의지’ 내용이 FT의 해석이라며 거리를 뒀다. 총리실은 이날 FT 인터뷰 관련해 배포한 참고자료에서 “우리 정부는 주한미군의 안정적 주둔 여건 보장을 위해 필요한 지원을 다하고 있다”며 “이와 관련 방위비 분담 특별협정을 충실히 이행해나가고 있다”고 밝혔다.
총리실은 그러면서 “현재로서는 방위비 분담 관련 어떠한 협상 제안도 없으며 어떤 검토도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고 덧붙였다. 미국을 상대로 한 협상력을 약화하지 않으려는 전략으로 해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