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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개 유엔 회원국 수교 완성 업적
재건 참여 길 트고, 북한 압박 효과도
과도 정부와 수교, 안정화까진 먼 길

편집자주

광화'문'과 삼각'지'의 중구난'방' 뒷이야기. 딱딱한 외교안보 이슈의 문턱을 낮춰 풀어드립니다.

조태열(왼쪽) 외교부 장관이 10일(현지시간) 시리아 다마스쿠스에서 아스아드 알-샤이바니 시리아 외교장관과 ‘양국 간 외교관계 수립에 관한 공동성명’에 서명한 후 악수하고 있다. 다마스쿠스=AP 뉴시스


국제축구연맹(FIFA) 월드컵 4회 연속 출전에 도전 중인 한국 축구국가대표팀 ‘캡틴’
손흥민(33)이 마땅히 갈 기회를 여러 번 맞았음에도 못 간 나라
가 있습니다. 지난 2018년 러시아, 2022년 카타르 대회까지 두 차례의 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 예선에서 ‘홈 앤드 어웨이’로 맞붙게 됐던
‘중동의 복병’ 시리아
입니다.

시리아는 지난해 말 바샤르 알아사드 정권 몰락 이전까지 14년에 걸친 내전 탓에 자국 홈경기를 제3국에서 치러야만 했습니다.
2016년 9월 홈경기는 말레이시아에서, 2022년 2월 홈경기는 아랍에미리트(UAE)에서 치렀습니다
. 2019년 10월 평양 원정까지 다녀왔던 손흥민에게도 시리아의 문은 열리지 않은 겁니다. 그만큼 정세가 불안해 다가서기 어려운 나라였단 얘깁니다.

그런 시리아는 우리 외교사에도 꽤 아픈 존재였습니다. ‘정상국가’로 여겨지는 웬만한 나라와 수교를 맺었는데, 북한과 혈맹 관계였던 터라 시리아 손을 잡기 서로 껄끄럽고 힘들었습니다. 지난해 2월 또 다른 북한의 ‘형제 국가’ 쿠바와 수교를 맺은 우리에겐 191개 유엔 회원국(북한 제외) 가운데 유일하게 수교를 맺지 못한 나라로 남아 있었습니다.

준비된 선수에게 다가온 기회



2021년 7월 7일 경기 안산시 단원구 안산와스타디움에서 열린 '2022 카타르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3차전 대한민국과 시리아의 경기에서 손흥민이 골을 넣고 기뻐하고 있다. 뉴시스


우리 정부는 그러나 결정적 득점 기회를 놓치지 않았습니다. 지난 54년간 시리아를 통치한
아사드 정권이 지난해 말 붕괴된 틈을 타, 외교부가 빠르게 파고들어 과도정부 출범 약 4개월여 만에 수교
를 맺었습니다. 가슴에 담아뒀던 '모든 유엔 회원국과의 수교'란 꿈을 이룬 겁니다.

준비된 선수에게 다가온 기회는 이렇게 팀을 살리는 골로 연결됩니다. 위대한 성과입니다. 지난 10일 시리아와 수교 후 조태열 장관은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영상까지 직접 게시하며 '마무리 홈런'이라는 표현까지 썼습니다. 마무리 홈런보다는 ‘끝내기 홈런’이란 표현을 많이 씁니다만, 용어가 좀 다르면 어떻습니까. 리더십 공백 상황에서도 시원하게 ‘북한 혈맹 뚫기’ 프로젝트를 마무리한 데 대한 후련함을 조 장관의 글을 보며 조금이나마 함께 느낄 수 있었습니다.

12·3 불법계엄 이후 최근까지 △미국 에너지부의 민감국가 지정 △코리아 패싱 △관세 전쟁 등 각종 미국발 악재에 이어 최근 언급된 △일본의 ‘원 시어터(One Theater)’ 구상까지, 하나만 터져도 시끄러울 법한 소식들이 우르르 터져오는 상황에 모처럼 국민들에게도 반가운 소식이었을 겁니다.

조 장관 예우에 놀라고, '고퀄' 영상에 또 놀라

지난 10일(현지시간) 수교를 위해 시리아를 방문한 조태열(왼쪽) 외교부 장관이 아스아드 알-샤이바니 시리아 외교장관과 단둘이 차량에 앉아 있다. 외교부 제공


최근 외교부 당국자가 출입기자들에게 설명한 시리아와의 수교 작전은 매우 속도감 있되 치밀하게 전개됐습니다. 2월 초 김은정 외교부 아프리카중동국장이 이끄는 정부 대표단이 시리아 과도정부 측에 수교 의사를 타진, 공감대를 형성한 뒤 지난달 18일 국무회의에서 시리아와의 수교 방침이 결정됐습니다. 이틀 뒤인
20일 박일 주레바논대사가 세부 협의를 진행한 뒤 조 장관의 시리아 방문이 극비리에 추진
됐습니다. 기가 막힌 반격 기회에 물 흐르는 듯한 패스 연결로 결정적 쐐기 골을 넣은 장면과 견줄만 합니다.

우리
정부 대표단의 시리아 방문은 2003년 이후 22년 만
이었다고 합니다. 전쟁 상흔이 아직 가시지 않은 데다 과도정부의 서투른 의전, 보안, 안전 문제 등 외교당국의 걱정이 많았을 겁니다. 우리 대표단의 다마스쿠스(시리아 수도) 체류 일정을 5시간 남짓으로 잡은 이유도 아직은 불안정한 시리아 정세를 고려한 것으로 보입니다. 정부 대표단도 최소화하고, 이 때문에 영상 등을 촬영할 공보 인원도 포함시키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10일 새벽 출국해 카타르 도하를 거쳐 시리아 다마스쿠스에 도착한 우리 대표단은 시리아의 세심한 경호와 의전에 크게 놀랐다고 합니다. 외교부 당국자는 “장관 회담을 마치고 외교부에서 대통령궁으로 이동할 때 갑자기 알샤이바니 장관이 운전석에 앉아 두 분만 한 차로 이동하게 됐다”며
“본인이 직접 운전을 하는 것은 아랍권에서는 최고의 예우”
라고 설명했습니다.

조 장관과 알샤라 시리아 임시 대통령의 면담이 끝난 직후엔 뜻밖의 선물도 도착했습니다. 양국 수교 과정이 담긴 영상을 우리 측에 빠르게 전달한 겁니다. 이 역사적인 장면을 제대로 기록하지 못할 수 있다는 걱정도 컸을 텐데, 조 장관과 알샤라 대통령의 면담이 끝난 직후 약 한 시간 만에 도착한 영상의 ‘퀄리티’가 상당히 높아 대표단 모두가 놀랐다고 합니다. 조 장관은 이 영상을 ‘마무리 홈런’ 소회와 함께 SNS에 공개하기도 했습니다.

북한과 시리아 수교 58주년을 맞은 지난해 7월 주북 시리아 대사관원들이 조국해방전쟁승리기념관을 참관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했다. 평양=조선중앙통신


극적이었던 이번 수교에 따른 기대 효과도 큽니다. 우선
①우리의 시리아 재건사업 참여 기회
가 열립니다. 외교부 당국자에 따르면 시리아는 어려운 과정에서도 국가를 재건한 경험이 있는 한국을 때문에 중요한 파트너로 인식하고, 여러 분야에서의 협력과 지원을 기대하고 있는 것으로도 전해졌습니다. 특히 알샤라 대통령은 우리의 정보기술(IT), 에너지 등 여러 분야에서 한국의 경험을 필요로 한다며 실무단 파견 제안 및 ‘전략적 관계’ 수립 의사도 밝혔다고 합니다. 향후 시리아에 대한 제재 해제가 본격화하면 한국이 재건 시장에 참여할 수 있는 우호적 기반이 구축된 셈입니다.

전문가들도 우리나라의 시리아 재건사업 참여 전망을 밝게 봤습니다. 장지향 아산정책연구원 중동연구센터장은 “시리아 입장에선 한국이 참여하면 고마워할 일”이라면서 “현재 사우디아라비아와 UAE, 카타르 등 산유국들도 시리아 과도 정부와 관계를 돈독히 하기 위해 경쟁을 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 우리 정부의 빠른 움직임이 긍정적인 결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봤습니다. 우리 정부는 시리아의
재건 시장 규모가 최대 4,000억 달러(약 580조 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
하고 있습니다.

②고립 심화에 따른 북한의 태도 변화
도 지켜볼 만한 포인트입니다. 시리아는 북한과 1966년 수교한 뒤 반세기 넘게 밀접한 관계를 맺어왔지만, 과도정부는 아사드 정권이 긴밀한 관계를 맺은 북한이나 러시아와의 관계는 최소화한다는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당장 시리아 주재 북한 대사관 외교관들도 지난해 12월 아사드 정권이 무너진 뒤 전원 탈출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북한이 우리와 수교를 꽤 적극적으로 방해한 것으로 알려졌던 쿠바에 이어, 시리아까지 한국과 수교를 맺으면서 믿을 구석이 크게 줄어든 겁니다.

홍민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쿠바와 수교 때도 마찬가지였겠지만, 이번에도 충격이 있을 것”이라면서도 “다만 북한 내부적으로도 외통수처럼 진영 논리의 대립 구조를 벗어날 때라는 걸 인식하고 다극화 질서 속에서 입지를 강화하기 위한 전략을 짤 것”이라고 봤습니다. 여러모로 북한엔 혼란스러운 상황이 더해진 셈입니다.

"과도정부 뿌리는 HTS… 언제 돌변할지 몰라"

2017년 7월 시리아 수도 다마스쿠스에 모인 시리아 국민들이 자국대표팀의 러시아월드컵 본선행 진출 실패에 눈물을 흘리며 아쉬워하고 있다. 당시에도 시리아는 호주와 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플레이오프 홈경기(1차전)를 말레이시아에서 치러야 했다. 다마스쿠스=AFP 연합뉴스


조 장관의 끝내기 홈런은 우리 외교 역사상 의미 있는 기록으로 남을 겁니다. 그러나 언제가 될지 모를 조 장관 퇴임 후에도 새로운 경기, 새 시즌은 계속 이어집니다. 12·3 불법계엄 이후 무너진 국가 이미지 회복, 미뤄지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와의 다각적 논의 등 쌓인 과제도 후임 장관이 이어받아야 할 짐입니다. 홈런의 여운은 간직하되 '빠던(bat flip·배트 던지기)' 같은 세리머니는 아껴야 할 이유입니다.

당장 전문가들도 과도 정부와 맺은 이번 수교가 안정적으로 지속될지 한동안은 지켜볼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조심스레 제시합니다. 장 센터장은
“과도정부 뿌리가 시리아 반군 세력 중에서도 하야트 타흐리르 알샴(HTS)이라는 점을 염두에 둬야 한다”
고 지적합니다. HTS의 목표도 시리아의 민주화가 아닌 근본주의적 이슬람 국가 건설로 전해집니다. 민주화에 한발 다가선 듯하지만,
어느 순간 ‘종교적 이유’를 대며 돌변할 가능성을 열어둬야 한다는 얘기
입니다. 2011년 독재자 무아마르 카다피 축출 이후 리비아 재건사업에 뛰어들었던 한국 기업들이 지금까지도 불안정한 여건에 놓여 있는 점도 참고해야 할 점이라고 합니다.

2006년 딕 아드보카트 감독이 이끄는 축구대표팀을 지원하기 위해 시리아를 방문했던 전직 대한축구협회 간부는 수교 소식에 "(내전 시작 전이던) 그때도 당시 한국 교민이 봉제 사업을 하던 사업가 한 명뿐이었던 것으로 안다"며
"당시 우리 대표팀이 경기했던
시리아 북부의 알레포의 경기장이 폭파되고 도시 전체가 '살육의 현장'으로 보도되는 걸 보고도 믿기 어려웠다"고
합니다. 그때도 열악했지만 갈수록 처참해진 시리아에는 어떤 변화가 올까요. 부디 한국과 손잡은 과도정부가 시리아를 성공적으로 재건해
내전에 지친 국민들이 자국 선수들을 자국 경기장에서 마음 놓고 하나 된 목소리로 응원할 날
이 하루빨리 오길 바랍니다.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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