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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기업·자회사 동시 상장으로 '기업가치 희석' 논란…LG·두산 등 비판 잇따라
'소수주주 희생해 문어발 확장' 지적…법규 미비, 당국 연성규제 실효성 의문 커
韓 중복상장률 18% 달해…美 MS, 애플, 테슬라 등 자회사 많아도 모기업만 상장 관행화


중복 상장 (PG)
[김선영 제작] 일러스트


(서울=연합뉴스) 김태균 기자 = 모기업과 주력 자회사가 함께 상장하는 '중복상장'은 한국 증시의 고질적 저평가의 주원인으로 꼽힌다.

모기업의 가치를 희석해 투자자들에게 피해를 준다는 비판을 받지만, 지배주주의 사업 확장 수단으로서 이점 때문에 중복상장을 포기하지 못하는 주요 대기업을 중심으로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상법 등 현행법에는 중복상장에 대한 규정이 뚜렷이 없는 데다 증시 밸류업(기업가치 제고)을 주요 정책으로 내건 정부 당국도 규제에 소극적이어서 투자자들의 불만이 증폭하고 있다.

20일 금융투자 업계에 따르면 LG전자는 작년 12월 인도법인의 현지 기업공개(IPO)를 본격 추진하면서 중복상장 논란에 휩싸였다.

LG전자가 100% 지분을 보유한 인도법인은 10년 이상 인도 가전제품 시장에서 1위를 차지했다. 이런 '알짜' 사업 부문을 따로 상장하면 LG전자로 갈 투자자금 수요가 줄어 주가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이 시장의 우려다.

LG전자 측은 인도와 한국 시장의 투자자가 달라 자금 유출 우려가 없고, 인도 IPO가 100% 구주매출(신주 발행 없이 기존 주식 매각) 형태인 만큼 조달 금액이 고스란히 국내 본사로 돌아온다고 강조했지만, 논란은 여전하다.

LG그룹은 올해 2월 상장한 IT 서비스 계열사 LG CNS의 유가증권시장(코스피) 상장 때도 중복상장을 둘러싼 분란을 겪었다.

지주사 LG는 LG전자, LG화학, LG생활건강, LG유플러스, HS애드 등 주력 자회사가 몽땅 상장된 상태인 만큼, LG CNS조차 따로 상장하면 투자자들이 LG 주식을 살 이유가 크게 준다는 것이다.

LG의 주가는 LG CNS의 상장 준비가 본격화된 작년 10월 초 7만9천원대에서 지난 18일 현재 6만3천200원으로 20% 하락했으며, LG CNS 상장일인 지난 2월5일(7만2천100원)과 비교하면 12% 이상 내렸다.

금융투자업계의 한 관계자는 "LG그룹은 2022년 LG화학에서 LG에너지솔루션을 떼어내 재상장하면서도 주주이익 침해 파문이 컸고 이 문제는 상법에 주주 충실 의무를 넣자는 논의를 촉발했다"며 "결과적으로 중복상장 관련해 계속 이름이 오르내리게 돼 사측(LG그룹)으로서는 당혹스러운 상황일 것"이라고 평했다.

SK그룹도 중복상장 문제로 도마 위에 올랐다.

그룹 주력 계열사인 SK이노베이션은 2021년 이차전지 소재 조직을 분할해 SK아이이테크놀로지(SKIET)를 상장했고, 다른 자회사인 SK온과 SK엔무브의 상장도 잇달아 추진해 모기업 가치를 낮춘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한국거래소는 최근 SK엔무브의 상장 예비 심사 전 협의에서 주주 보호 방안의 보완을 요구해 IPO 진행에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는 전망이 커진 상태다.

국내 주식 시장 (PG)
[김토일 제작] 일러스트


두산그룹도 논란이 적잖다.

두산에너빌리티는 올해 2월 체코 자회사 두산스코다파워를 체코 증시에 상장해 LG처럼 중복상장 지적이 나온다.

두산에너빌리티의 다른 자회사인 두산밥캣과 두산로보틱스 역시 별도 상장됐고, 이 두 회사는 주주 권익을 침해하며 부당 합병을 추진한다는 물의까지 빚었다.

중복상장은 모회사와 자회사의 이익이 이중으로 계산(더블카운팅)되는 결과를 빚어, 밸류에이션(기업가치 평가)을 깎는 요인이 된다.

반면 대기업 지배주주(오너가)에게 중복상장은 매력이 크다. 유상증자 등으로 자금을 모으면 오너가의 지분이 대거 희석되지만, 자회사를 상장하면 지배력은 변화 없이 외부 자본을 끌어와 그룹의 덩치를 키울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중복상장은 일반주주와 지배주주 사이의 이해충돌 문제가 생기지만, 국내 법규에는 중복상장을 금지하거나 제한하는 조항이 없다.

금융 당국은 대신 상장심사를 엄격히 하고 물적분할 시 기업이 주주보호 방안을 지배구조보고서에 적도록 하는 등 '연성 규제' 정책을 펴고 있지만, 이를 회피하면서 IPO를 강행할 길이 많아 실효성이 의심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IBK투자증권의 작년 11월 집계에 따르면 한국의 중복상장 비율은 18.4%로 일본(4.38%), 대만(3.18%), 미국(0.35%) 등 주요국에 비해 압도적으로 높다.

특히 미국은 투자전문회사인 버크셔해서웨이와 같은 극소수 사례를 제외하면 주요 기업이 중복상장을 한 경우를 찾기 어렵다.

예컨대 마이크로소프트(MS)는 커리어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링크드인', 코드 공유 플랫폼 '깃허브', 게임 마인크래프트의 개발사인 '모장' 등 다수의 알짜 자회사를 갖고 있지만 모회사인 MS 빼고는 모두 비상장사다.

애플, 테슬라, 알파벳(구글 모회사), 메타플랫폼(페이스북 모회사), 엔비디아, 아마존 등도 마찬가지다.

여의도 KRX 한국거래소
[자료사진]


한편 국내에서도 아직 사례가 많지 않지만, 자발적으로 중복상장 문제를 해결해 주주가치를 제고한 회사들이 생기고 있다.

동원그룹 지주사 동원산업은 최근 상장 자회사 동원F&B를 포괄적 주식 교환을 통해 상장 폐지키로 해 시장의 호평을 받았다.

메리츠금융그룹도 2023년 메리츠증권과 메리츠화재를 상폐하고 그룹 내 상장사를 지주사 1곳으로 단일화했다.

소수주주 플랫폼 '액트' 운영사인 컨두잇의 이상목 대표는 "국내 기업 중 주주가치를 훼손하면서 구태적 확대를 고집하는 경우가 아직 많아 답답한 심정"이라며 "중복상장이 주가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인식이 널리 퍼진 만큼 주주환원과 같은 글로벌 기준을 재상기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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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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