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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한 시위 맞선 日시민연대 '카운터스'처럼
불법 계엄 후 온라인서 극우 채널 감시 시작
신남성연대 '댓글 조작' 공론화 이끈 주인공
2018년 개봉한 다큐멘터리 '카운터스'는 일본 내 혐한 세력에 맞선 일본인들의 시민연대 '카운터스'의 이야기를 다룬다. 혐오 시위를 벌이는 일본 '재일 특권을 허용하지 않는 시민모임'의 집회 참가자들과 몸싸움을 벌이는 카운터스 회원들이 포착된 다큐멘터리의 한 장면. 인디스토리 제공


이일하 감독의
2018년 다큐멘터리 '카운터스'
2010년대 '재일 특권을 허용하지 않는 시민모임'(재특회)의 혐한
시위에 맞선 일본인 시민연대 '카운터스'의 활동
을 그렸다. 카운터스는 '한국인을 죽여라'라는 팻말을 든 '한국 혐오주의자'들에 맞서 '차별 반대' 플래카드를 들고 맞불 시위를 벌였고, 혐한 시위대를 몸으로 막고 거리에 눕는 등 그들과의 물리적 충돌도 불사했다. 카운터스의 활동은
일본 최초의 '혐오표현금지법’ 제정까지
이끌어냈다.

지난해 12·3 불법 비상계엄 이후 한국 사회에도 '한국판 카운터스'가 등장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엑스(X)의 '카운터스(극우추적단)'계정이 바로 그 주인공
이다. 이들의 전장(戰場)은 일본 카운터스와는 달리 주로 온라인이다. 가짜뉴스와 음모론을 퍼뜨리는 극우 유튜버들을 감시하고,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에서 독버섯처럼 퍼지는 혐오 발언을 플랫폼에 신고하는 게 주요 활동이다. 네이버 뉴스 기사 댓글의 작성자 아이디를 추적해 누가 댓글 조작을 하는지 찾아내며, 온라인에 공개된 정보를 모아 극우 세력의 자금 출처에 의문을 던지기도 한다. 이들의 지난 4개월을 정리했다.

'서울서부지법 폭동'에 충격... 활동 본격화

극우 세력의 유튜브와 오픈카톡방 등을 감시하는 '카운터스(극우추적단)'의 엑스(X) 계정. X 캡처


'카운터스' 계정 운영자 A씨는 한국일보에 자신을 "30대 직장인"이라고만 밝혔다.
불법 계엄 사태 이후 '극우 세력을 탐색해야겠다'는 목적에서 해당 계정을 만들었고, 명칭은 일본의 시민연대 카운터스에서 땄다고 했다.
극우세력 추적을 본격화한 계기는 올해
1월 19일 '서울서부지법 폭동 사태'
다. A씨는 17일 본보와의 통화에서
"(서울)서부지법 폭동에서 위협감을 느꼈다. '태극기 부대'로 대표되던 기존 극우 세력과 달리, (서부지법에서 난동을 부린) 이들은
연령대가 다양했고 규모도 늘어났으며 무엇보다 폭력성을 강하게 표출했다"
고 말했다. 이어 "민주주의의 위협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들이 갑자기 어디서 이렇게 많이 나타났는지 궁금해졌다"고 덧붙였다.

1월 19일 새벽 윤석열 당시 대통령에 대한 내란 우두머리 혐의 구속영장이 발부되자 서울서부지법에 윤 대통령 지지자들이 진입해 난동을 부리고 있다. 뉴스1


유튜브 수익을 노리는 극우 유튜버가 크게 늘면서 혼자서 이들을 감시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A씨는 X 계정을 통해 카카오톡 오픈 채팅방으로 함께할 사람들을 찾았다. 그는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는 생각에 사람들을 모았는데 반응이 굉장히 컸고, 나처럼 극우 현상에 위기감을 느끼고 그들을 막아야겠다고 생각한 시민들이 생각보다 많았다"고 했다.
지금은 텔레그램으로 옮겨 활동하는 이들 '카운터스'는 약 100명. 극우 유튜버 계정
120개, 극우 오픈 카톡방 35곳을 계속 모니터링
하고 있다.

"광주가 쪼개졌다? 직접 확인하니 거짓말!"

2월 15일 광주 금남로 일대에서 보수단체 '세이브코리아' 집회 참가자들이 태극기와 성조기를 흔들고 있다. 광주=김진영 기자


카운터스는 주로 모니터링 대상의 혐오 발언을 각 플랫폼에 적극적으로 신고하는 활동을 한다. "
혐오 발언을 막는 해결의 키는 플랫폼 사업자가 갖고 있기 때문
"이라는 게 A씨의 설명이다. 그는
"극우 유튜버와 카톡방의 혐오 발언을 X 계정에 알리고 신고를 독려하는 것은 각 플랫폼 사업자에게 '책임감을 보여 달라'고 요구하는 과정"
이라며 "많은 사람이 '영상에 문제가 있다'고 신고를 하면 유튜브도 (계정의 수익 창출 중단, 계정 삭제 등의) 판단을 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온라인을 떠나 오프라인 세상에 직접 출동해 '팩트체크'를 한 적도 있다.
지난 2월 15일 광주에서 보수 기독교 단체 '세이브코리아' 주최로 윤석열 당시 대통령 탄핵 반대 집회
가 열렸을 때 A씨도 현장으로 향했다. 그날 보수 언론들과 극우 세력 커뮤니티에선 "탄반(탄핵 반대) 집회에 수만 명이 모였다" "광주가 반으로 쪼개졌다" 등 주장을 쏟아냈다. 정말인지 검증이 필요했다.

A씨는 탄반 집회 참석자를 태우고 온 버스 64대의 유리창에 적힌 단체명을 일일이 확인했다.
모두 보수 단체나 교회에서 온 것
이었다. '광주'의 여론으로 보기 힘들었다. "집회가 끝나고 버스가 모두 떠나고 난 자리에는 30명 정도만 남아서 '우리가 진짜 광주의 우파'라고 했어요.
대부분의 집회 참석 인원은 동원된 사람들이었습니다. '
광주가 쪼개졌다'는 주장은 눈속임인 것을 확인한 거죠."


2월 15일 윤석열 당시 대통령 탄핵 찬반 시위가 열린 광주에서 집회 참가자들이 타고 온 버스에 대한 조사 결과를 공개한 카운터스의 엑스(X) 계정. X 캡처


신남성연대 '좌표방' 활동 폭로

카운터스가 모니터링하던 극우 성향 오픈카톡방이 5일 해산된 소식을 알리는 카운터스 엑스(X) 계정. 카운터스 X 캡처


극우 세력의 네이버 기사 댓글 조작을 추적해 알리기도 했다. 지난달 카운터스는 X 계정에
극우 성향 단체 신남성연대가 조직한 2만9,000명 규모의 단체 텔레그램방에서 일정 기간 좌표를 찍은 기사의 댓글을 전수 분석한 결과를 공개
했다.
"댓글 부대는 약 2,500명 규모로 상위 15명이 두 달여 동안 1만 개가 넘는 댓글을 작성했다"
는 결론이었다.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내란 행위에 대한 긍정적 여론을 조성하기 위해 관련 기사 링크를 텔레그램 단체 대화방에 공유한 뒤, 조직적으로 뉴스 댓글 순위 조작에 나섰다는 뜻이다.

성과도 있었다. 카운터스가 밝힌 내용이 언론 보도로 알려지자,
신남성연대 단체방에서 최다 댓글 작성자가 본인의 댓글 1,087개를 모두 삭제
했다. 더불어민주당은 최근 배인규 신남성연대 대표 등을 '댓글 조작을 통한 업무방해' 등 혐의로 고발했다.

"혐오·거짓말로 돈 버는 자유? 용납 못 해"

카운터스의 조사로 극우 성향 단체 신남성연대의 네이버 기사 댓글 조작 의혹이 보도된 후 가장 많은 댓글을 단 작성자가 자신의 댓글을 모두 삭제했다는 소식을 알리는 카운터스 엑스(X) 계정. X 캡처


카운터스는 모니터링 과정에서 발견한 내용을 신속히 자체 계정이나 온라인 게시판에 정리해 올린다. 국가인권위원회에 안병희씨가 '캡틴 아메리카' 복장을 하고 나타나 행패를 부린 날, 그가 가짜뉴스를 퍼뜨렸던 과거 온라인 활동 이력을 정리해 게시한 게 대표적이다. 극우 성향 유튜브가 특정 시스템을 이용해 조회수를 크게 늘리는 '뷰봇'을 사용했다는 의혹 제기도 카운터스의 추적으로 가능했다. 이는 언론 보도 등을 통해서 더 널리 알려지게 됐다.
혐오 발언이 넘쳤던 오픈 채팅방에선 카운터스를 의식하며 "말 조심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오기도 했다.


A씨는 카운터스의 활동에 자부심을 표했다. 그는 "혐오나 증오를 표출하고 사회적 약자를 공격하거나 민주주의 체제를 부정하는 현상을 우리 사회는 절대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는 걸 많이 보여줬다고 생각한다"고 자평했다. 그러면서 "그들에게도 유튜브를 통한 표현의 자유는 있겠지만, 거짓말로 돈을 벌 자유는 우리가 용납하지 않겠다는 메시지를 전달해 줬다고 생각한다"고 부연했다.

"신생 단체 '자유대학', 자금 댄 배후 추적해야"

윤석열(왼쪽) 전 대통령이 헌법재판소의 파면 결정 일주일 만인 11일, 서울 용산구 한남동 대통령 관저를 떠나기에 앞서 정문 앞에서 자신을 지지하는 자유대학 소속 학생과 포옹하고 있다. 정다빈 기자


윤 전 대통령 파면 이후 기존 개신교 단체가 주축이 된 극우 운동의 기세는 한풀 꺾였다. 유튜브 규제에 따라 극우 유튜버의 수익 창출이 중단되는 사례도 속출하고 있다. 아울러 혐오 발언과 음모론을 퍼뜨리던 오픈카톡방 일부도 해체 수순을 밟았다.

그러나 A씨는 경계심을 거두지 않았다. 그는
"앞으로도 극우 세력은 2030을 조직화하려는 운동을 계속 펼칠 것이고, 상당한 시간과 돈도 투자하고 있다
"
고 했다. 특히 지난 11일
윤 전 대통령의 한남동 대통령 관저 퇴거 당시 그를 맞았던 '과잠'(대학교 학과 점퍼)을 입은 대학생 모임 '자유대학'
에 주목했다. 지난 1월 대학생 익명 커뮤니티 '에브리타임'에서 윤 전 대통령 탄핵을 반대하는 대학생들이 모여 결성된 단체로, 윤 전 대통령 파면 이후에도
'윤 어게인(Yoon Again)'을 외치며 시위와 거리
행진
을 하고 있어서다.

눈여겨봐야 할 대목도 있다고 A씨는 짚었다. 자유대학에 대해 그는 "대학생 시위에 어울리지 않게 첫날부터 큰 돈이 드는 20톤 트럭과 크레인, 플라잉 스피커를 가지고 나왔다"며
"온라인에 공개된 후원 내역을 보니, 결성 한 달밖에 되지 않은 신생 단체에 후원금 1,800만 원이 일주일 만에 들어왔다"
고 했다. "과연 일반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낸 것인지, 누군가 의도를 갖고 키워 주기 위해 돈을 대고 있는 것인지 배후를 철저히 조사해야 한다"는 게 A씨 주장이다.

'극우추적단' 카운터스의 활동은 앞으로도 계속될 예정이다. 서로 만난 적은 한 번도 없는, 온라인 속 '느슨한 연대'로 연결돼 있는 카운터스에 대해 A씨는 이렇게 말했다. "사실 직장도 다녀야 하니 (카운터스 활동에) 엄청난 품을 들이지는 않습니다.
일상에서 혐오 발언을 무시하지 않고 하나하나 모으는 것뿐입니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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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021900030004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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