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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의 날' 맞아 최중증 성인 발달장애인 지원 일일 체험
대화·관계 맺기 어려운 지적·자폐성 장애인 낮활동 도와
"우리가 누리는 이 세상을 발달장애인도 마땅히 누려야"


'행복을 바라봄, 일상을 담아봄, 희망을 이어봄'
(서울=연합뉴스) 오인균 인턴기자 = 지난 1일 서울의 한 장애인복지관 내부 모습. 2025.04.20


(서울=연합뉴스) 오인균 인턴기자 = 혹여 낯선 이를 보고 놀랄까 싶어 멀리 떨어져 긴장한 채 서 있었다.

친해지는 게 먼저라는 조언을 되새기며 조심히 다가갔다.

장갑을 끼고 발에 보습 크림을 발라주는 일로 '접촉'을 시작했다. 건조해진 피부를 관리해 주고 살을 맞대면서 교감을 나누는 것이다.

발 마사지에 시원하다는 듯 웃은 그는 그제야 기자를 빤히 쳐다봤다. 처음 눈을 마주친 순간이었다.

'장애인의 날'(4월20일)을 앞두고 기자는 그렇게 최중증 성인 발달장애인 A씨의 낮 활동을 지원했다.

섣부른 지원이 자칫 누가 될까 염려하며 진행한 8시간의 봉사활동은 돌봄의 사회적 역할과 책임에 대해 돌아보는 시간이 됐다.

'발달 장애인과 함께 합니다'
(서울=연합뉴스) 오인균 인턴기자 = 지난 1일 서울의 한 장애인복지관 내부 모습. 2025.04.20


지난 1일 서울의 한 장애인복지관.

자·타해 등 '도전행동'으로 인해 기존 돌봄서비스를 받기 어려운 지적·자폐성 장애인(발달장애인)을 위해 전문교육을 받은 인력이 일대일로 배치돼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는 곳이다. 현재 A씨를 포함해 총 4명의 발달장애인이 서비스를 받고 있다.

복지관의 설명에 따르면 발달장애인은 어릴 때부터 뇌의 발달이 일반적인 성장 패턴과 다르게 이뤄져 다른 사람과 의사소통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이들은 다른 사람과 자연스럽게 대화하거나 관계를 맺기가 어려울 수 있다. 특정한 행동을 반복하거나, 특정한 소리나 촉감에 민감하게 반응하기도 한다.

2023년 7월부터 이 복지관을 찾고 있는 A씨는 이날 등원하자마자 화장실 쓰레기통을 버리겠다고 했다. 특정 물건을 모아서 버리는 행동 자체를 즐기는데 이날은 쓰레기통을 버리고 싶어 한 것이다.

전담 직원이 물건을 버리는 행동이 습관화되지 않도록 설득하고 다른 활동에 흥미를 느끼게끔 이날 일과표를 설명한 후에야 A씨는 자리에 앉았다. 그러나 발 마사지에 잠시 안정을 취하는가 했던 A씨는 다시 쓰레기통이 생각난 듯 일어나려 했다. 이에 그가 가장 좋아한다는 커피 마시기를 제안했다.

A씨는 "커피, 커피"라며 커피믹스와 종이컵을 찾아 정수기에서 물 온도를 능숙하게 조절했다. 기자에게 마셔보라고 권하기도 했다. "첫인상 점수를 잘 딴 모양이네요"라는 직원의 말에 기꺼이 커피를 받아 마셨다.

'활동실은 내가 치운다'
(서울=연합뉴스) 오인균 인턴기자 = 지난 1일 서울의 한 장애인복지관에서 발달 장애인 당사자가 활동실 옆 복도를 직접 청소하고 있다. 2025.04.20


어느새 점심시간. 복지관 1층에 장애인과 직원들이 함께 식사하는 식당이 있지만 최중증 발달장애인들은 식판에 밥을 받아와 3층 활동실에서 따로 먹는다.

다른 직원과 A씨의 식사 보조를 교대해야 해 후딱 먹고 활동실로 갔더니 A씨는 TV 앞에서 동요를 부르고 있었다. 행여나 예기치 못한 일이 발생할까 봐 한눈도 팔지 못하고 지켜봤다. 복지관에서는 공백 없이 발달장애인 옆을 살피기 위해 직원들이 쉬는 시간도 교대로 가진다.

활동공간에는 벽과 바닥 모서리마다 충격 방지용 안전 매트가 설치되어 있고 조명·난방 스위치도 높은 위치에 설치되어 있다. 또 사물함 등 가구 손잡이도 매립형으로 되어 있다. 안전사고나 도전행동을 예방하기 위해서다.

낮 12시 30분께 운동으로 오후 일과가 시작됐다.

실내 자전거를 타기로 한 A씨는 페달을 힘껏 굴리다가도 연거푸 멈췄다. 옆에서 파이팅을 외치며 등을 두드려주자 포기하지 않고 완주했다. 15분간 타고 자전거에서 내려온 A씨에게 기자가 두 손을 펼쳐 보이니 '하이 파이브'로 호응했다. 이날 두 번째로 서로의 눈이 겹친 순간이다.

다음 운동은 윗몸일으키기. 기자가 무릎을 잡아준 상태에서 A씨는 목표한 50회를 해냈다. 다시 '하이 파이브'를 하려 했지만 이번에는 곧장 커피를 찾으며 고개를 돌려버렸다. 갑자기 "쓰레기통 버려"라고 반복해 말하거나 알 수 없는 말을 읊조리는 등 짧은 대화도 이어가기 어려웠다. 최대한 눈을 맞추며 마음을 읽어내려 애썼지만 역부족이었다. 반면 복지관 직원은 A씨의 작은 말소리도 놓치지 않았고 원하는 바를 정확히 파악해 들어줬다.

이어서 A씨가 좋아하는 활동인 종이접기를 시작했다.

A씨는 캔버스에 색종이로 접은 하트를 척척 붙여 작품을 완성했다. 복지관 곳곳에는 그가 만든 작품이 걸려 있었다. 그중 '행복을 바라봄. 일상을 담아봄. 희망을 이어봄'이라는 포스터가 눈에 띄었다.

'종이로 만드는 하트'
(서울=연합뉴스) 오인균 인턴기자 = 지난 1일 서울의 한 장애인복지관에서 발달 장애인 당사자가 종이접기를 하고 있다. 2025.04.20


오후 2시30분께 A씨와 또 다른 발달장애인 B씨, 3명의 직원이 승합차를 타고 선유도 공원으로 산책하러 나갔다. 차 안에서는 A씨와 B씨가 좋아하는 '우유 좋아', '멋쟁이 토마토' 같은 동요가 흘러나왔다.

공원에 도착했을 때 A씨 손에는 복지관 1층 화장실에서 가져온 쓰레기통이 쥐어져 있었다. 그는 공원 내 분리수거장에 쓰레기통을 버린 후에도 몇 번이고 다시 와서 잘 버렸는지 확인했다. 그러면서 그때마다 "쓰레기통 이제 끝"이라고 외쳤다.

선유도 공원은 장애인 주차장이 일반 주차장과 따로 마련돼 있고 카페도 좌석 간 간격이 넓어서 지역 사회 활동을 하기에 적합하다고 직원은 설명했다.

"장소를 장애인 친화적으로 디자인하면 장애인이 눈치 보지 않고 편안하게 시간을 보낼 수 있어요. 장애인이 장애인만 있는 공간에서만 살면 통합의 의미가 없는 것 같아요. 비장애인이 만들어둔 틀에서 장애인은 자기변호를 하기 어렵고 억울할 때가 많은데 어디서든 스스로 긍정적인 존재로 여길 수 있도록 옆에서 지지하고 있습니다."

공원 카페에서 A씨는 능숙하게 피자와 음료, 아이스크림을 고르고 결제했다. 낮 활동 중 간단한 조립 작업을 하면서 번 돈으로 직접 간식을 사 먹는 활동이었다. 체하지 않도록 물을 챙겨주며 옆을 지켰다. 옷과 손에 빨간 소스가 묻어 계속 닦아주느라 쓴 물티슈가 한가득이었다.

식기를 반납하는 사이 A씨는 카페 주방에 들어가 서랍에 커피믹스가 있는지 찾아 헤맸다. 조리 도구가 있어 자칫 위험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복지관 직원은 "예상이 가는 행동이 있고 그럴 때마다 기민하게 대처하면 된다"면서 능숙하게 A씨를 데리고 나와 상황을 수습했다.

돌아가는 차 안에서는 내일 무엇을 할지 의견을 나눴다. "배드민턴 치기, 요리하기, 동물원·수족관 가기…".

오후 5시, A씨 집 앞에 도착하니 보호자가 얼굴에 미소를 머금고 마중 나와 있었다.

우리 주변, 누군가에겐 소중한 사람
2024년 4월 19일 서울시청 인근에서 열린 23회 420장애인차별철폐투쟁 전국결의대회에서 한 어머니가 발달장애인 아들에게 오는 햇빛을 막아주고 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A씨와 같은 최중증 발달장애인 통합돌봄서비스 지원사업은 지난해 6월부터 정부 주도하에 전국 단위 사업으로 확대 시행됐다.

2021년 발달장애인 실태조사에 따르면 최중증 발달장애인이 돌봄을 받는 시간은 하루 평균 10.4시간으로, 최중증이 아닌 장애인(4.1시간)의 2.5배가 넘는다.

서비스 대상자는 18∼64세 등록 지적·자폐성 장애인으로 자·타해 등 '도전행동'의 심각성 여부를 핵심 요소로 고려해 일상생활 능력과 의사소통 능력, 지원 필요도를 종합적으로 평가해 선정한다. 보호자들의 부담을 완화하고 지역사회로부터 소외되고 있는 성인 발달 장애인에게 보통의 삶을 지원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날 A씨의 하루는 평범했지만, 이 하루를 위해서는 여러 손길이 함께 해야 했다. 다만, A씨의 하루가 모든 발달장애인의 하루를 대변하는 것은 아니라고 복지관 직원은 설명했다.

"이전에 복지관에서 지원하던 장애인 중 개별 집중 서비스를 통해 도전행동이 감소하고 타인 간 소통 능력도 좋아지면서 큰 그룹으로 옮겨 간 사례도 있습니다. 안 된다는 말은 자제하고 할 수 있는 일을 알려주고 있어요. 개인 욕구에 맞는 활동을 제공하면서 안전한 환경을 조성하다 보면 당사자의 사회 경험이 넓어집니다."

장애인을 사람 대 사람으로 마주해야 한다는 지적과 당부도 뒤따랐다.

"장애인이 우리 사회에서 동떨어진 곳에 따로 사는 게 아니라 동시대를 같이 살아가는 사람이며 비장애인이 누리는 이 세상을 발달 장애인도 마땅히 누리면서 살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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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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