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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거주 배우자와 ‘같은 세대’ 불인정
형식 아닌 실질로 세대 여부 판단
[법알못 판례 읽기]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대법원이 주택재개발사업에서 ‘하나의 세대’를 판단할 때 주민등록표 같은 형식적 기준이 아닌 실질적 주거와 생계 공유 여부를 기준으로 해야 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이에 따라 재개발 사업에서 토지 소유자들의 분양권이 확대될 가능성이 열렸다.

수십 년간 재개발·재건축사업에서 논란이 되어온 ‘하나의 세대’ 개념에 대한 명확한 판단 기준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는 평가다.

대법원 제2부(주심 오경미 대법관)는 최근 A 씨 등이 D구역 주택재개발정비사업조합을 상대로 낸 수분양권 존재 확인 등 청구의 소 상고심에서 원심을 파기하고 수원고등법원에 환송했다(2022두50410).

이번 판결로 인해 전국적으로 진행 중인 수많은 정비사업에서 조합원 자격과 분양권 부여 기준이 달라질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 거주 배우자와 같은 세대 묶여 1주택만 배정


이번 사건은 재개발구역 내 토지와 주택을 소유한 A 씨와 배우자 B 씨, A 씨의 동생인 C 씨가 각각 주택 분양을 신청했으나 조합이 ‘하나의 세대’로 간주해 1주택만 배정한 사례다. 이들은 별도의 주택을 소유하고 각자 분양신청을 했지만 주민등록상 같은 세대에 속한다는 이유로 분양권이 제한됐다.

2019년 10월 7일 당시 A 씨는 단독 세대주로, B 씨와 C 씨는 A 씨와 C 씨의 아버지인 H 씨를 세대주로 하는 세대의 세대원으로 함께 등재돼 있었다. 그러나 실제로는 B 씨는 미국에, C 씨는 대한민국에 각각 거주하고 있었다.

B 씨는 2014년부터 미국에 거주하면서 간헐적으로 한국을 방문했고 2020년에는 주댈러스 대한민국 출장소에 재외국민으로 등록할 정도로 사실상 미국에 정주하고 있었다.

조합은 B 씨와 C 씨가 같은 주민등록표에 등재된 점을 근거로 이들이 ‘하나의 세대’에 해당한다고 보고 A 씨, B 씨, C 씨 모두에게 1개 주택만 분양하는 관리처분계획을 수립했다. 이에 원고들은 실질적으로 함께 거주하지 않았으므로 ‘하나의 세대’로 볼 수 없다고 주장하며 소송을 제기했다.

실질적 vs 형식적 엇갈린 1·2심


1심인 수원지방법원(재판장 정덕수)은 원고들의 손을 들어줬다. 1심 재판부는 2019년 10월 7일 당시 원고들의 실질적 주거 상황에 주목했다.

재판부는 “원고 A와 원고 B는 부부지만 A는 서울 마포구 아파트의 세대주로, B는 다른 세대에 편입된 세대원으로 각각 주민등록돼 있었고 원고 B는 2014년경부터 미국에 정주해 왔으며 원고 C는 별도의 토지와 주택을 소유하고 원고 B와 동일한 세대의 세대원으로 대한민국에 정주하고 있다”고 사실관계를 확인했다.

1심은 “위와 같은 사정을 고려하면 A와 B, 원고 C는 관리처분계획 기준일 당시 각각 별개의 세대를 이뤄 독립된 생활을 한 것이어서 하나의 세대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2020구합62779).

반면 2심인 수원고등법원(재판장 임상기)은 원심을 취소하고 원고들의 청구를 기각하며 조합의 손을 들어줬다. 항소심은 ‘세대’ 판단의 기준을 주민등록표에 따른 형식적 기준으로 봤다.

2심 재판부는 “동일한 세대를 이루고 있는 세대원인지 여부는 주민등록법령에 따라 작성된 주민등록표 등 공부에 의해 형식적으로 결정할 수밖에 없다”고 판시했다(2021누13083).

이어 “원고 B와 원고 C가 동일한 세대별 주민등록표에 등재돼 있었던 이상 원고들은 하나의 세대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또한 2심은 조례와 도시정비법의 관계에 대해 “구 도시정비법 제39조 제1항 제2호에 따라 원고 A와 원고 B 중 이를 대표하는 1명만이 조합원이 되고 원고 C는 별도의 조합원이어서 각자 분양신청을 할 수 있으나 다시 이 사건 조례 제26조 제1항 제1호에 따라 원고들 모두가 하나의 세대로 간주되기 때문에 원고들을 1명의 분양대상자로 취급하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구 경기도 조례 제26조 제1항 제1호는 전문에서 관리처분계획 기준일 현재 여러 명의 분양신청자가 하나의 세대인 경우에는 분양대상자를 1명으로 본다고 규정한다.

대법 “실질적 주거와 생계 공유가 판단 기준”


그러나 대법원은 ‘세대’의 의미를 실질적으로 해석하고 2심 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수원고등법원에 환송했다.

대법원은 “구 도시정비법이나 구 경기도 조례에서 ‘1세대’, ‘하나의 세대’, ‘동일한 세대’는 실질적으로 주거와 생계를 같이하고 있는 가구를 의미한다”고 명확히 했다(2022두50410). 이어 세대의 사전적 의미를 들어 “현실적으로 주거 및 생계를 같이하는 사람의 집단을 의미하고 ‘가구’와 동의어로 설명되고 있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만약 위 각 조항이 주민등록표 등재 등 형식만을 기준으로 ‘1세대’ 등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판단할 요량이었다면 법령 자체에서 ‘같은 세대별 주민등록표에 등재돼 있는 사람’, ‘세대별 주민등록표에 함께 등재돼 있는 사람’ 등과 같은 문언을 부기해 ‘세대’를 정의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1세대 1주택’ 원칙과 관련해 ‘정비구역 안에 있는 토지 등 소유자 사이의 이해관계를 조정해 조합원의 재산권을 보호함과 동시에 정비사업에서 토지·주택 등에 대한 투기를 억제해 정비사업의 사업성 저하를 방지하고자 하는 취지’라고 명확히 했다.

따라서 대법원은 “실제로 주거와 생계를 같이하는지를 기준으로 1세대 여부를 판단해 현실적으로 공통된 주거를 가지지 않거나 함께 생계를 영위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각자 주택을 분양한다고 해 위와 같은 취지를 해하는 바는 전혀 없다”고 판단했다.

반면 주민등록표 등재 등 형식만을 기준으로 1세대 여부를 판단할 경우 “실제로 주거와 생계를 같이하고 있으면서도 형식적으로 주민등록만 달리 두고 있는 경우 여러 채의 주택을 분양받을 수 있다는 결론으로 이어진다”고 지적했다.

이 경우 “이른바 ‘위장 세대 분리’를 막지 못하는 폐단이 발생하게 돼 오히려 ‘1세대 1주택’ 원칙의 취지에 정면으로 어긋난다”고 판단했다.

따라서 대법원은 “원고들에게 1개의 주택만을 분양하는 내용의 이 사건 관리처분계획 부분이 적법하다고 본 원심 판단에는 구 경기도 조례 제26조 제1항 제1호의 ‘하나의 세대’ 내지 ‘동일한 세대’ 등의 해석에 관한 법리를 오해해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고 결론지었다.

[돋보기]

재개발 분양권 기준 새 판례 나와


이번 대법원 판결은 실질적 생활관계를 중시하는 패러다임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그동안 재개발·재건축사업에서 세대 판단이 주민등록상 형식적 기준에 의존했던 관행에 변화가 예상된다.

원고를 대리한 법무법인 린의 강주현 변호사는 “재개발·재건축사업에서 주민등록표상 같은 세대지만 실제로는 해외 거주, 직장 문제로 별거, 사실상 별거 상태인 가족 등에게 별도 분양권이 인정될 가능성이 커졌다”고 평가했다.

다만 조합이 실질적 주거·생계 공유 여부를 어떻게 조사하고 판단할지에 대한 구체적 지침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대법원은 조합이 1차적으로 주민등록표를 기준으로 하되 의문이 있는 경우 추가 자료를 제출받아 조사·확인할 수 있다고 판시했지만 현장에서의 적용 방안은 앞으로의 과제로 남아 있다.

이번 판결은 정비사업에서 ‘1세대 1주택’ 원칙의 취지를 보다 정확히 실현하면서도 형식적 기준 적용으로 인한 불합리한 결과를 방지할 수 있는 균형점을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허란 한국경제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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