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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 대선을 46일 앞둔 지난 18일 대전 동구 중동의 역전지하상가에서 시민들이 이동하고 있다. 대전역 인근인 이곳은 서구 둔산동 일대가 신도시로 잡으면서 이전보다 한적해진 모습이다. 송태화 기자

“충청은 투표함을 까봐야 알지!”

조기 대선이 40여일 앞으로 다가왔지만 ‘대선 바로미터’로 불리는 충청의 표심은 아직 어느 한쪽으로 기울지 않은 채 흔들리고 있었다.

국민일보가 지난 18~19일 이틀간 충청권(대전·세종·충북 청주)에서 만난 유권자들은 12·3 비상계엄이 초래한 극심한 갈등과 사회적 혼란 상황에 피로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이들은 윤 전 대통령과 국민의힘에 대한 실망감을 숨기지 않았다. 그러나 또 적지 않은 이들이 ‘어대명(어차피 대통령은 이재명)’ 기류가 강해지는 상황에 상당한 우려를 표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와 파면으로 치러지는 선거인 만큼 구여권에 대한 반발이 상당했지만, ‘이재명 일극체제’ 상황에서 민주당에 정권을 넘겨주는 것에 대한 거부감도 만만치 않은 것이다.

복잡한 마음을 접한 듯 충청의 표심은 아직 어느 한쪽으로 기울지 않은 채, 관망세가 이어지는 분위기였다. 대전에서 만난 고등학교 교사 강모(41)씨는 “충청 유권자들을 줏대 없다고 비난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우리는 지역 담론에 갇히지 않은 가장 합리적인 유권자”라고 말했다. 그는 “충청은 당 공천만 받으면 당선되는 영·호남과 다르다. 충청이야말로 편향되지 않은 중립적 시각으로 판단하는 바로미터”라며 자부심을 드러냈다.

위법한 비상계엄에 분노…“그래도 충청은 까봐야”

2022년 대선에서 윤석열 전 대통령을 선택한 충청의 구여권을 향한 바닥 민심은 냉랭했다. 12·3 비상계엄 선포가 위헌·위법했으며 국가적 위기를 초래했다는 것에 공감대가 형성돼 있었다. 18일 낮 대전시 중동 역전지하상가에서 만난 상인 박경일(47)씨는 굳은 표정으로 “다가올 대선에서 국민의힘 후보에게는 절대 투표하지 않겠다”고 했다.

박씨는 “대통령 탄핵을 2번 당한 정당인데 반드시 그에 따른 엄중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며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탓에 엄청난 국가적 손실을 발생했는데 현재 여당이 다시 집권하는 건 용납할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대전 산성동에 사는 직장인 김명진(38)씨도 “대통령이 중대한 범법 행위를 저질러 탄핵당했는데, 국민의힘이 다시 집권한다면 ‘무슨 짓을 해도 다시 집권할 수 있다’는 잘못된 선례를 남길 수 있다”고 우려했다.

다만 윤 전 대통령과 국민의힘을 향한 이들의 분노가 유력 대권 주자인 이재명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선택하겠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은 듯했다.

세종시 나성동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박호석(52)씨는 “세종은 다른 충청권에 비해 비교적 진보 성향이 강하지만 그래도 충청은 투표함을 까봐야 안다”고 했다. 박씨는 “충청은 정말 모른다”는 말을 여러 차례 반복했다. 현재는 비상계엄과 탄핵 정국 여파로 민주당 지지세가 강하게 나타나지만, 다가올 6·3 대선 표심을 속단할 수는 없다는 의미로 읽혔다.

19일 충북 청주시 흥덕구의 한 거리. 송태화 기자

민주 “세종 시대”에 기대감…李 향한 거부감도 상당

이재명 전 대표와 김경수 전 경남지사, 김동연 경기지사가 연일 ‘세종 대통령실’ ‘세종 국회의사당’ ‘행정수도 세종’을 공약하자 충청은 ‘세종 시대’에 대한 기대감에 상당히 부풀어있는 듯했다. 그러나 민주당의 가장 유력한 대권 주자인 이 전 대표를 향한 거부감을 서슴없이 드러내는 청년 유권자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었다.

대전보건대 임상병리학과 2학년에 재학 중인 김모(20·여)씨는 인생 첫 투표권을 포기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김씨는 “윤 전 대통령이 자신의 약화된 정치적 입지를 반전시키기 위해 해서는 안 될 행동을 했기 때문에 국민의힘에 표를 줄 순 없다”면서도 “이 전 대표의 최근 재판 불출석 행태 등을 보면 이재명 역시 대통령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김씨는 “뽑을만한 사람이 없어 결국 인생 첫 투표권은 행사하지 않기로 했다”며 아쉬워했다.

카이스트 1학년 학생인 송민준(20)씨도 “계엄은 분명히 잘못됐지만 이 전 대표가 대안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고민 끝에 정당과 관계없이 후보들의 공약만 보고 이공계 쪽에 힘을 실어주는 후보를 선택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세종시 나성동에서 만난 60대 여성 김모씨는 “이 전 대표는 정치적 능력을 떠나 법적인 문제와 사생활 문제 등 도덕적 결격 사유가 있는 후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양당에 실망한 유권자 사이에선 제3지대를 대표할 무게감 있는 후보의 부재에 아쉬움을 나타내는 이도 있다. 청주대 광고홍보학과에 재학 중인 박모씨는 “제3지대를 대표할 만한 후보가 없는 게 아쉽다”면서 “양당 후보에게 표를 주지 않는 행위 자체로도 의미 있는 메시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준석 개혁신당 후보가 있긴 하지만 대통령 후보로서 무게감이 떨어지는 게 사실”이라고 덧붙였다.

18일 세종시 나성동의 중심거리. 이곳은 평소 직장인들로 북적이는 곳이지만 퇴근을 앞둔 금요일 늦은 오후 시간대라 비교적 조용한 모습이다. 송태화 기자

‘행정수도’ 공약은 충청 유권자 대부분 긍정

세종시에서 만난 시민들은 다른 지역과 비교해 이 전 대표와 민주당에 우호적인 목소리가 컸다. 민주당 경선 후보들은 일제히 세종시 행정수도 이전 구상을 제시하며 충청권 공략에 열을 올리는 중이다.

이 전 대표는 “세종을 행정수도의 중심으로 완성하겠다”며 대통령 세종 집무실과 국회 세종의사당의 임기 내 건립을 공약했다. 전통적인 ‘스윙보터’ 지역인 충청권 표심을 염두에 둔 전략인데, 지역 균형 발전을 앞세운 호소는 적중한 듯 보였다.

세종전통시장에서 25년째 채소가게를 운영하는 윤모(59)씨는 “이재명이라면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고 기대감을 드러냈다.

지난 18일 대전 동구 대전역 인근에 있는 농산물 시장은 한적한 모습이었다. 송태화 기자

많은 이들이 실현 가능성에 의문부호를 달면서도 일단 공론화되는 것 자체에 만족감을 느끼는 듯했다. 대전 서구 갈마동에 사는 60대 택시기사 정교일씨는 “(행정수도 완성이) 쉽지 않겠지만 사회적 대화가 진행되는 것 자체만으로도 긍정적”이라며 “인접 지역인 대전 역시 여러 유입 효과를 보지 않겠느냐”며 기대감을 드러냈다.

중앙부처에서 근무하는 공무원 윤모(32)씨는 “실현 여부를 떠나 행정수도 이런 논의가 계속돼야 한다”며 “서울과 중앙정부에 집중된 권한들을 단계적으로 이양해야 지방 분권이 강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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