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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미트리 피터슨 안다즈 서울 강남 바 매니저
“여러 주류를 섞는 칵테일도 우리의 삶과 닮아 있어”
“최고보단 좋은 친구로 기억되고파”

서울 강남구 논현동 안다즈 서울 강남에서 디미트리 피터슨 바 매니저가 칵테일을 만들고 있다. /장련성 조선일보 기자

칵테일의 세계는 참 묘하다. 단 한 잔의 음료지만, 그 안에 담긴 방정식은 무한하다. 가령 진을 베이스로 삼더라도 어떤 주류가 섞이느냐, 어떤 가니시가 얹히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향과 맛이 탄생한다. 단맛과 쌉싸름함, 허브의 향취와 과일의 산미가 얽히며 때로는 예상치 못한 조화를 만들어낸다. 그 정교한 조합 속에서 우리는 술이라는 음료를 넘어, 때론 하나의 ‘서사’를 마주하게 된다.

삶도 비슷하다. 또렷하게 구분되는 사건과 희미한 추억, 감정들이 하나둘씩 섞이며 결국 각자만의 고유한 인생의 맛을 만들어낸다. 보통의 날과 특별함, 또 흔히 지나치던 일상과 순간들이 ‘섞여’ 자신의 삶과 닮은 칵테일을 만들어 낸다. 누군가에겐 강렬하고 쓴맛이 오래 남을 수 있다. 또 누군가에게는 톡 쏘지만 달콤한 맛이 은은히 감돌 수 있다. 다만 중요한 것은 외면했던 아픔도, 자주 곱씹어 보는 기쁨도 이 한 잔을 완성하기 위해선 다 필요했다는 사실이다.

안다즈 서울 강남의 바를 책임지고 있는 디미트리 피터슨 바 매니저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에게 칵테일은 단순한 음료가 아니다. 지금의 자신을 만들어준 친구이자, 평생을 바쳐온 일, 또 결국은 곧 자신의 삶과 닮아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한 잔의 술로 사람들과 대화를 시작하고, 그 속에 조용히 손님의 이야기를 담는 일이 즐겁다. 서로의 시간을 한 데 섞은 그 순간 역시 칵테일과도 닮아 있다.

그럼 그의 삶은 어떤 재료들로 구성돼 있을까. 먼저 그 근간부터 개성이 강하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태어난 그는 두바이, 몰디브 등 다양한 문화권을 거쳐 한국에 이르렀다. 이력도 인상적이다. 두바이 아르마니 호텔에서 커리어를 시작해, 몰디브 니야마 프라이빗 아일랜드, 두바이 주메이라, 그리고 포시즌스 호텔 서울 등 세계 곳곳의 최고급 호텔을 거쳤다.

다양한 경험이 자양분이 된 덕일까. 그가 선보이는 칵테일에는 그의 여정이 고스란히 스며 있다. 머물렀던 지역의 특색, 그곳의 맛과 문화가 섞여 한 잔의 술로 다시 만들어 냈다.

디미트리 피터슨 바 매니저가 그의 시그니처 칵테일 중 하나인 '안동금씨' 칵테일을 만들고 있다. /장련성 조선일보 기자

예컨대 ‘안동금씨(Mr. Gold)’는 한국이라는 땅이 그에게 남긴 인상을 담아낸 칵테일이다. 입에 머금으면 참깨가 톡톡 터지듯 퍼지며 고소한 향이 먼저 피어난다. 그 뒤로는 오크 숙성 화요와 안동소주의 묵직한 향이 천천히 깔린다. 보리를 증류한 소주 특유의 쿰쿰한 향과 참깨의 고소함이 만나, 낯설지 않은 익숙한 풍미를 자아낸다. 한 모금 넘기고 나면 입안에 남은 고소함과 증류 소주 특유의 화함이 은은하게 어우러지고, 여기에 헤이즐넛과, 체리 리큐르의 은은한 단맛이 뒤따른다.

반면 ‘플로럴 부케(Floral Bouquet)’는 봄날의 설렘을 잔에 담은 듯하다. 라벤더와 블루문, 오렌지 블로섬 등 다채로운 꽃 향이 첫입부터 풍성하게 피어오른다. 마치 햇살 좋은 날, 나들이 길에 느껴지는 그 벅찬 기분처럼. 베이스는 테킬라지만, 마티니 스타일의 구성에 직접 만든 홈메이드 리큐르들이 더해져 바람에 퍼지는 꽃과 같은 풍미를 준다. 부드럽고도 화사한 여운은 덤이다.

순간과 기억을 담아내고 있는 칵테일을 만들지만 그의 바램은 다소 소박하다. 최고가 아니어도 좋다. 좋은 친구와 나누는 한 잔의 술처럼, 함께 있음에 행복할 수 있는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고 했다. 사실 그가 진짜 남기고 싶은 것은 그 이름보다는 감정, 기술보다는 기억일지 모른다.

디미트리 피터슨 바 매니저의 시그니처 칵테일 두 종. 왼쪽은 한국적인 맛을 살린 '안동금씨', 오른쪽은 봄의 화사함을 담아낸 '플로럴 부케(floral bouquet)이다. /장련성 기자

―간략한 자기소개 부탁드린다.

“디미트리 피터슨이다. 현재 안다즈 서울 강남에서 수석 소믈리에, 믹솔로지스트로 일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6년 넘게 근무했고, 남아프리카공화국 출신이다. 이전에는 두바이와 몰디브 등지에서도 일했다. 한국에 오기 전에는 두바이 주메이라에서 소믈리에로 근무했고, 그 경험이 지금의 나에게 큰 자양분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호텔 산업이 얼마나 빠르게 변화하는지, 그리고 음식과 음료 산업이 얼마나 경쟁적인지를 직접 체감할 수 있었다.”

―다양한 곳에서 일하면서 어떤 것들을 경험했나.

“주메이라 안의 알 나심, 주메이라 마디낫 등 다양한 레스토랑에서 일했고, 총 36개 팀과 협업한 경험이 있다. 그곳에서는 뚜렷한 개성과 매력이 없으면 살아남기 힘들다. 손님들의 국적도 워낙 다양해서 미국, 유럽 등 각국의 취향을 모두 고려해야 했고, 그 과정에서 ‘니치 마켓’을 찾아야 한다는 걸 배웠다. 나는 그 답을 ‘진(Gin)’에서 찾았다.”

―왜 진인가.

“진은 다양한 가니시와 토닉, 주류 등으로 무궁무진한 조합을 만들 수 있다. 특히 한국에 와서는 ‘준원 진’처럼 인삼이나 대추 같은 한국의 정취를 담은 식물을 활용한 진에 관심이 많아졌다. 각 지역의 향과 색을 담은 진은, 그 지역의 정체성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술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디미트리 피터슨 바 매니저가 칵테일을 제조하기 위해 준비하는 모습. /장련성 기자

―소믈리에, 바텐더, 믹솔로지스트로도 활동해 왔는데, 각각의 역할이 어떻게 다른지 궁금하다.

“바텐더는 손님에게 음료를 제공하고, 그들의 취향에 맞게 추천을 해주는 역할을 한다. 믹솔로지스트는 창작가에 가깝다. 새로운 음료를 개발하고, 조합도 고민하는 창작 활동을 주로 한다. 소믈리에는 여기에 와인까지 더해 전문적으로 다루는 것이라 생각한다. 모두 중요한 역할이다. 물론 이 역할을 혼자 해내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개인적으로는 늘 좋은 팀원들과 함께 해서 다행이었다. 안다즈 역시 마찬가지다. 안다즈는 힌디어로 ‘개인적인 스타일(Personal Style)’을 뜻한다. 그에 맞는 음료를 만들기 위해 주로 나는 방향성을 제시하거나 아이디어를 공유한다. 그 이후 안다즈 팀원들이 상상을 실제로 만들어 낸다. 놀랍다.”

―칵테일 등 주류가 주는 매력은 무엇인가.

“술은 결국 사람을 이어주는 ‘가교(架橋)’와도 비슷하다. 좋은 사람들과 함께할 때, 좋은 대화가 필요할 때, 한 잔의 술은 큰 역할을 한다. 물론 책임감 있는 음주가 중요하지만, 좋은 와인 한 잔이나 칵테일 한 잔이 사람 사이를 자연스럽게 이어주는 걸 많이 봤다.”

―기억에 남는 술이 있는가.

“1972년산 샤또 라뚜르. 예전에 한 손님이 바에 와서 나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갑자기 케이스를 열고 이 와인을 꺼냈다. 마실 장소를 찾고 있다길래 우리 레스토랑을 추천했고, 결국 나와 함께 마시게 됐다. 그분이 꼭 나와 마셔야 할 이유는 없었지만, 함께 나눠주셨다는 사실이 큰 감동이었다. 맛도 훌륭했지만, 무엇보다 그 순간이 아직도 선명히 기억에 남는다. 맛은 잊힐지라도 기억은 오래간다.”

디미트리 피터슨 바 매니저가 조선비즈와 인터뷰를 갖고 있다. /장련성 기자

―집에서 간단히 즐길 수 있는 칵테일이나 음료를 추천해 달라.

“봄이라면 피크닉에 어울리는 간단한 레시피를 추천하고 싶다. 과일을 몇 가지 준비하고, 레몬이나 라임도 함께 챙기면 좋다. 과일 위에 레몬 반 개를 짜서 뿌리고, 아페롤(Aperol) 스프리츠와 함께 마셔보면 정말 잘 어울린다. 준비도 어렵지 않다. 아이스와 프로세코만 있으면 금방 만들 수 있다. 와인으로는 ‘카비넷 리슬링’을 추천한다. 어느 지역 것이든 상관없다. 이 와인은 특히 한국의 떡볶이 같은 매콤한 음식과 환상적인 조합을 이룬다. 꽃향기와 함께 라임, 레몬, 파인애플 같은 과일의 풍미가 느껴지고, 산미와 약간의 단맛이 아주 좋은 밸런스를 만들어낸다.”

―여러 나라를 경험하면서 각 지역의 차이를 느꼈나.

“남아공의 경우 육류를 자주 먹어 적포도주를 곁드는 경우가 많다. 브랜디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두바이는 좀 다르다. 워낙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모여서 그런가 특정한 입맛을 지녔다고 말하기 어렵다. 한국은 이미 수준 높은 칵테일 문화를 갖고 있다. 제스트, 르 챔버 등 여러 훌륭한 바가 있고, 호텔도 마찬가지다. 나는 이곳에서 한국 사람들의 입맛을 맞춘 칵테일을 만들고 싶다. 아시아 50 베스트 바에 오르는 것도 의미가 있겠지만, 한국적인 재료와 스타일로 칵테일을 만드는 데 더 집중하고 있다. 진정성 있게 한국에 다가가고 싶다.”

―안다즈 서울 강남에서는 어떤 것을 기대할 수 있나.

“편안한 분위기다. 우리는 격식을 차리기보단 포근한 곳을 지향한다. 바텐더와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눌 수 있다. 반면 혼자만의 시간을 존중받을 수도 있다. 원하는 방향에 따라 맞출 수 있다. 친구를 원하면 친구가 돼주는 식이다. 좋은 음료도 추천받을 수 있다. 너무 격식 있진 않지만 또 너무 가볍지 않은, 이 아슬한 경계를 지키려 한다.”

―자신의 인생을 하나의 칵테일에 비유한다면?

“에스프레소 마티니. 이 칵테일을 누가 만들었는지는 기억하지 않지만, 많은 사람이 즐긴다. 나 역시 세상이 기억해 주지 않더라도 좋다. 다만 주변 사람들에게 좋은 감정을 줄 수 있으면 만족한다. 내가 만든 칵테일과 음료를 편히 즐겨주면 그만이다. 순간을 함께하는 것이 중요하다.”

디미트리 피터슨 바 매니저가 칵테일을 만들고 있는 모습. /장련성 기자

―지금까지의 여정을 평가해달라. 또 앞으로의 계획은?

“1에서 10으로 두 자면 한 6.5 정도 온 것 같다. 호텔업에 발을 들인 건 2010년이었고, 소믈리에로도 15년 가까이 일했다. 하지만 술의 세계는 아직도 너무 크다. 새로운 와인은 끊임없이 나오고 있고, 한국에서도 새로운 술들이 계속 만들어지고 있다. 할 일도, 마셔볼 술도 아직 많다. 최근 한국에서 마신 영국 위스키인 ‘잉글리쉬 (The English)’도 굉장히 인상 깊었다. 화이트 초콜릿 향이 솔솔 올라와 신기했다. 이처럼 한국의 술 문화는 점점 확장되고 있고 가능성도 많다. 더 많은 기회를 함께 만들어 가고 싶다.”

―마지막으로 한 마디 부탁드린다.

“자신이 좋아하는 술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마셨으면 한다. 그게 인생을 즐기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화이트와인을 좋아하지만 스테이크를 먹으니 레드를 마셔야지’ 같은 규칙은 잊어도 괜찮다. 오로지 자신의 입맛이 기준이 돼야 한다. 마시고 싶은 걸 마시고, 함께 있고 싶은 사람과 함께 있으면 그걸로 충분하다.“

조선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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