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한국 화장품 산업은 전성기를 맞이했다.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 화장품 수출 규모는 102억 달러(14조8800억원)로 사상 처음 100억 달러를 돌파했다. 전년 85억 달러 대비 20.6% 급성장한 결과다. 이 같은 호실적에 K-뷰티가 반도체·조선·자동차에 이어 새로운 수출 효자 상품이 될 거라는 예측도 나온다. 독특한 성분과 콘셉트로 중국 등 주로 아시아 시장을 호령했던 과거와 달리, 미국·일본·유럽 등 화장품 주류 시장에서 글로벌 브랜드와 대등하게 경쟁을 펼치고 있는 지금이다. 비크닉이 지구촌을 매혹하고 있는 K-뷰티의 현재를 조명하고, 현재의 경쟁력을 만든 원동력을 돌아본다. 또한 지속 가능한 흥행을 위해 K-뷰티가 갖춰야 할 것은 무엇일지도 살펴본다.〈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①샤넬·랑콤의 프랑스 제친 한국…. 미·일 수입국 1위
②61년 전 에티오피아로 첫 수출… K-뷰티 헤리티지 만든 이 회사 [비크닉]
③K-뷰티는 카테고리 킬러?...‘넥스트-쿠션’ 나오려면
한국의 화장품 수출 역사는 지난 2000년대 초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대한 화장품산업연구원에 따르면 2000년부터 2003년까지 1억 달러 수준에 머물렀던 화장품 수출액은 2004년부터 2011년까지 조금씩 늘어 2012년 10억 달러를 돌파한다. 이후 2014년부터 큰 폭으로 성장, 2021년 92억 달러까지 고성장을 거듭하다 코로나19로 잠시 주춤, 지난해 100억 달러를 돌파했다.
눈 떠보니 화장품 선진국? K-뷰티 80년사 과거 국내 화장품 산업은 주로 브랜드와 제조, 혹은 브랜드·제조·유통이 통합된 형태로 전개됐다. 이른바 종합 화장품 기업 시대다. 2003년을 기점으로 브랜드와 유통은 결합하되, 제조가 분리된 ‘원 브랜드숍’이 등장했다. 생산 및 제조를 ODM(제조업자 개발 생산), 즉 외주로 돌린 원 브랜드숍은 저렴한 가격과 비교적 높은 품질로 당시 ‘저렴이’라는 신조어가 만들어질 정도로 선풍적 인기를 끌었다. 이는 일정 규모의 제조 시설 없이는 진입할 수 없었던 화장품 시장의 장벽을 크게 낮추는 결과를 만들었다. 국내 브랜드의 수가 확연히 늘기 시작한 시점이기도 하다. 삼일 PwC 경영연구원이 지난해 4월 발간한 ‘K-뷰티 산업의 변화’ 보고서에서는 이 시기를 “제품 출시 기간이 기존 2년에서 6개월 정도로 짧아졌고, (비교적 출시 기간이 긴) 해외 브랜드와의 경쟁은 제한되고, 국내 브랜드 사이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국내 브랜드가) 경쟁력을 높일 수 있었던 시기”라고 분석했다.
한국의 뷰티 헤리티지 “전 세계 사람들 핸드백 속에 우리 립스틱이 하나씩 있으면 좋겠다.” 2007년 서경배 아모레퍼시픽 그룹 회장이 경기 용인 신갈 연구소 방문 자리에서 언급한 한 마디다. 당시만 해도 화장품 산업은 사양산업 혹은 내수 산업으로 치부하던 시기였다. 시장 상황도 해외 브랜드 위주로 흘러갔다. 18년이 지난 지금 아모레퍼시픽은 K-뷰티를 대표하는 기업으로 자리 잡았다. 중국 등 아시아 시장을 넘어 미국 시장까지 확장하고 있는 시점이다.
아모레퍼시픽은 지난 80년간 한국 뷰티 산업의 기틀을 마련하고, 선도해온 기업이다. 무엇보다 현재 K-뷰티의 최대 장점으로 꼽히는 ‘혁신 기술’의 뿌리에 아모레퍼시픽이 있다. 1932년 동백 머릿기름으로 시작해, 1951년 국내 첫 순식물성 ABC 포마드, 1966년 세계 최초 한방화장품 ‘ ABC 인삼크림’ 등 ‘최초’의 기록은 국내 화장 문화를 선도해왔다. 신규 카테고리 개발에도 앞섰다. 1997년 순수 레티놀 화장품을 개발하고, 2008년에는 K-뷰티를 대표하는 혁신 상품인 쿠션 파운데이션을 내놨다. 2015년에는 자는 동안 피부를 돌보는 ‘슬리핑 뷰티’ 제품으로, 2018년에는 크림 스킨이라는 새로운 제형으로 도전을 이어갔다.
현재 K-뷰티 흥행의 강력한 요소 두 가지는 ‘혁신성’ 그리고 ‘가성비’다. 모두 제조 기술이 뒷받침되어야 이룰 수 있는 요건이다. 아모레퍼시픽은 국내 화장품 제조 기술을 선도해 온 독보적 기업이다. 1954년 국내 최초 화장품 연구실을 개설, 1978년 태평양기술연구소를 거쳐 현재의 아모레퍼시픽 R&I 센터에 이르기까지 혁신 기술 연구·개발을 지속하고 있다. 아모레퍼시픽 R&I 센터는 창립 이래 현재까지 피부 고민 별 기초 연구 논문 약 470건, 성분 및 기반 기술 특허 약 240건(2024년 기준 누계) 등을 기록했다.
1964년 ‘오스카’부터, 해외 개척 선봉 아모레퍼시픽은 현재의 K-뷰티 글로벌화의 중심에 서 있는 기업이기도 하다. 아모레퍼시픽의 해외 시장 개척은 1964년 ‘오스카’로 거슬러 올라간다. 영화상에서 따온 오스카 화장품 20여 종이 에티오피아에 수출되면서 국내 화장품 수출 1호라는 역사를 남긴 것. 수백 달러의 견본 수출에 불과했지만, 1970년대 태국·보르네오·홍콩 등으로 수출하며 기록한 130만 달러의 실적을 이끈 최초의 도전이었다. 1990년대에는 중국 시장 개방의 가능성을 일찌감치 예견, 1992년 중국 지사를 세우는 등 글로벌을 향한 본격적 여정을 시작했다. 2000년 상하이 현지 법인 설립, 2014년 상하이 뷰티 사업장 준공을 통해 중국 사업 성장 가속화를 달성했다.
지금 K-뷰티가 가장 눈부신 성장을 이루고 있는 미주 시장에도 이른 도전장을 냈다. 2003년 뉴욕 소호에 아모레퍼시픽 플래그십 스토어로 첫발을 내디딘 이후, 2010년대 초반까지 미주 전역 50여개 이상의 백화점에 입점하는 성과를 올리기도 한다.
현재 아모레퍼시픽은 서구권을 중심으로 성장하는 ‘글로벌 리밸런싱’에 집중하고 있다. 지난해 해외 매출은 전년 대비 20.6% 증가한 1조6789억원을 기록했다. 특히 지난해 서구권을 중심으로 높은 성장세를 이뤘고, 그룹 역사상 처음으로 미주 지역이 중화권을 넘어 가장 큰 매출을 올리는 해외 시장이 됐다. 아모레퍼시픽의 미주 지역 매출액은 2023년 2867억원에서 2024년 5246억원으로 83% 증가했다.
아모레퍼시픽은 3년 안에 북미 시장 매출 3위권에 오른다는 목표를 세웠다. 김승환 아모레퍼시픽 대표는 “현재 북미 시장에서 3.7%인 점유율을 2027년까지 10%대로 늘릴 것”이라며 “코스알엑스 인수 이후 인디 브랜드와 메가 브랜드의 시너지를 살린다면 전통 강자인 프랑스 에스티로더나 로레알보다 앞서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글 싣는 순서
①샤넬·랑콤의 프랑스 제친 한국…. 미·일 수입국 1위
②61년 전 에티오피아로 첫 수출… K-뷰티 헤리티지 만든 이 회사 [비크닉]
③K-뷰티는 카테고리 킬러?...‘넥스트-쿠션’ 나오려면
한국의 화장품 수출 역사는 지난 2000년대 초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대한 화장품산업연구원에 따르면 2000년부터 2003년까지 1억 달러 수준에 머물렀던 화장품 수출액은 2004년부터 2011년까지 조금씩 늘어 2012년 10억 달러를 돌파한다. 이후 2014년부터 큰 폭으로 성장, 2021년 92억 달러까지 고성장을 거듭하다 코로나19로 잠시 주춤, 지난해 100억 달러를 돌파했다.
지난달 이탈리아 볼로냐에서 열린 세계 최대 미용 전시회 '2025 이탈리아 볼로냐 코스모프로프'에 역대 최대 규모의 통합 한국관이 마련됐다. 사진 코트라
눈 떠보니 화장품 선진국? K-뷰티 80년사 과거 국내 화장품 산업은 주로 브랜드와 제조, 혹은 브랜드·제조·유통이 통합된 형태로 전개됐다. 이른바 종합 화장품 기업 시대다. 2003년을 기점으로 브랜드와 유통은 결합하되, 제조가 분리된 ‘원 브랜드숍’이 등장했다. 생산 및 제조를 ODM(제조업자 개발 생산), 즉 외주로 돌린 원 브랜드숍은 저렴한 가격과 비교적 높은 품질로 당시 ‘저렴이’라는 신조어가 만들어질 정도로 선풍적 인기를 끌었다. 이는 일정 규모의 제조 시설 없이는 진입할 수 없었던 화장품 시장의 장벽을 크게 낮추는 결과를 만들었다. 국내 브랜드의 수가 확연히 늘기 시작한 시점이기도 하다. 삼일 PwC 경영연구원이 지난해 4월 발간한 ‘K-뷰티 산업의 변화’ 보고서에서는 이 시기를 “제품 출시 기간이 기존 2년에서 6개월 정도로 짧아졌고, (비교적 출시 기간이 긴) 해외 브랜드와의 경쟁은 제한되고, 국내 브랜드 사이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국내 브랜드가) 경쟁력을 높일 수 있었던 시기”라고 분석했다.
그래픽 박현아
점차 품질은 높이고, 가격을 낮추며, 소비자 반응과 트렌드를 재빠르게 수용하면서 경쟁력을 갖춰갔던 국내 화장품 시장은 2015년 또 다른 전기를 맞이한다. 바로 온라인 채널의 활성화다. 브랜드와 제조만이 아니라, 유통까지 분리되면서 오프라인 점포를 내지 않아도, 제조 시설을 갖추지 않아도 화장품 브랜드를 만들어 팔 수 있게 됐다. 식품의약안전처에 따르면 국내 화장품 책임 판매업체(브랜드사)는 2023년 기준 3만1524개. 10년 전인 2013년 2884개에서 10배 늘었다. 또한 이 시기 폭발적으로 커졌던 중국 시장은 한국 화장품 산업의 양적 성장을 가져왔다. 첫 번째 K-뷰티 웨이브다. 2014년부터 2018년까지 가파르게 성장하던 중국발 수출 곡선은 2017년 사드 사태와 2020년 코로나19로 기세가 꺾인다.
일본 도쿄 시부야에 위치한 멀티 잡화점 로프트에서 현지 고객들이 한국 화장품 브랜드를 둘러보고 있다. 유지연 기자
하지만 위기는 곧 기회로 반전을 맞았다. 중국 시장의 하락세로 주춤했던 수출 실적은 2019년부터 시작된 K-팝 열풍과 함께 두 번째 K-뷰티 웨이브 시기를 맞이한다. 포스트 코로나19 이후 2023년부터 중국 일변도가 아니라 동남아시아·일본·미국·중동 등 수출 시장이 다변화한 것은 또 다른 기회다. 이른바 K-뷰티의 ‘글로벌화’다. 특히 미국이라는 전 세계 최대 화장품 시장(단일 국가 기준 비중 20%, 코스모프루프 기준)을 개척했다는 데 의미가 크다.
한국의 뷰티 헤리티지 “전 세계 사람들 핸드백 속에 우리 립스틱이 하나씩 있으면 좋겠다.” 2007년 서경배 아모레퍼시픽 그룹 회장이 경기 용인 신갈 연구소 방문 자리에서 언급한 한 마디다. 당시만 해도 화장품 산업은 사양산업 혹은 내수 산업으로 치부하던 시기였다. 시장 상황도 해외 브랜드 위주로 흘러갔다. 18년이 지난 지금 아모레퍼시픽은 K-뷰티를 대표하는 기업으로 자리 잡았다. 중국 등 아시아 시장을 넘어 미국 시장까지 확장하고 있는 시점이다.
아모레퍼시픽은 지난 80년간 한국 뷰티 산업의 기틀을 마련하고, 선도해온 기업이다. 무엇보다 현재 K-뷰티의 최대 장점으로 꼽히는 ‘혁신 기술’의 뿌리에 아모레퍼시픽이 있다. 1932년 동백 머릿기름으로 시작해, 1951년 국내 첫 순식물성 ABC 포마드, 1966년 세계 최초 한방화장품 ‘ ABC 인삼크림’ 등 ‘최초’의 기록은 국내 화장 문화를 선도해왔다. 신규 카테고리 개발에도 앞섰다. 1997년 순수 레티놀 화장품을 개발하고, 2008년에는 K-뷰티를 대표하는 혁신 상품인 쿠션 파운데이션을 내놨다. 2015년에는 자는 동안 피부를 돌보는 ‘슬리핑 뷰티’ 제품으로, 2018년에는 크림 스킨이라는 새로운 제형으로 도전을 이어갔다.
미국 LA의 선셋대로에 설치된 화장품 멀티숍 세포라의 광고판. 라네즈 수면 세럼의 출시를 알리고 있다. 사진 라네즈 US 공식 인스타그램
현재 K-뷰티 흥행의 강력한 요소 두 가지는 ‘혁신성’ 그리고 ‘가성비’다. 모두 제조 기술이 뒷받침되어야 이룰 수 있는 요건이다. 아모레퍼시픽은 국내 화장품 제조 기술을 선도해 온 독보적 기업이다. 1954년 국내 최초 화장품 연구실을 개설, 1978년 태평양기술연구소를 거쳐 현재의 아모레퍼시픽 R&I 센터에 이르기까지 혁신 기술 연구·개발을 지속하고 있다. 아모레퍼시픽 R&I 센터는 창립 이래 현재까지 피부 고민 별 기초 연구 논문 약 470건, 성분 및 기반 기술 특허 약 240건(2024년 기준 누계) 등을 기록했다.
경기도 용인에 위치한 '아모레퍼시픽 R&I 센터' 전경. 사진 아모레퍼시픽
1964년 ‘오스카’부터, 해외 개척 선봉 아모레퍼시픽은 현재의 K-뷰티 글로벌화의 중심에 서 있는 기업이기도 하다. 아모레퍼시픽의 해외 시장 개척은 1964년 ‘오스카’로 거슬러 올라간다. 영화상에서 따온 오스카 화장품 20여 종이 에티오피아에 수출되면서 국내 화장품 수출 1호라는 역사를 남긴 것. 수백 달러의 견본 수출에 불과했지만, 1970년대 태국·보르네오·홍콩 등으로 수출하며 기록한 130만 달러의 실적을 이끈 최초의 도전이었다. 1990년대에는 중국 시장 개방의 가능성을 일찌감치 예견, 1992년 중국 지사를 세우는 등 글로벌을 향한 본격적 여정을 시작했다. 2000년 상하이 현지 법인 설립, 2014년 상하이 뷰티 사업장 준공을 통해 중국 사업 성장 가속화를 달성했다.
지난 1964년 국내 화장품 최초로 해외에 수출된 오스카 브랜드. 사진 아모레퍼시픽
지금 K-뷰티가 가장 눈부신 성장을 이루고 있는 미주 시장에도 이른 도전장을 냈다. 2003년 뉴욕 소호에 아모레퍼시픽 플래그십 스토어로 첫발을 내디딘 이후, 2010년대 초반까지 미주 전역 50여개 이상의 백화점에 입점하는 성과를 올리기도 한다.
현재 아모레퍼시픽은 서구권을 중심으로 성장하는 ‘글로벌 리밸런싱’에 집중하고 있다. 지난해 해외 매출은 전년 대비 20.6% 증가한 1조6789억원을 기록했다. 특히 지난해 서구권을 중심으로 높은 성장세를 이뤘고, 그룹 역사상 처음으로 미주 지역이 중화권을 넘어 가장 큰 매출을 올리는 해외 시장이 됐다. 아모레퍼시픽의 미주 지역 매출액은 2023년 2867억원에서 2024년 5246억원으로 83% 증가했다.
그래픽 박현아
아모레퍼시픽은 3년 안에 북미 시장 매출 3위권에 오른다는 목표를 세웠다. 김승환 아모레퍼시픽 대표는 “현재 북미 시장에서 3.7%인 점유율을 2027년까지 10%대로 늘릴 것”이라며 “코스알엑스 인수 이후 인디 브랜드와 메가 브랜드의 시너지를 살린다면 전통 강자인 프랑스 에스티로더나 로레알보다 앞서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