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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년 단편집의 24년 영문판 ‘너의 유토피아’
한국 작가로는 처음 최종후보 올랐으나 불발
시상식 행사서 “변희수 하사” 호명·낭독
18일 저녁(현지 시각) 미국 시애틀 노웨스콘 47에서 열린 ‘2025 필립 K. 딕상’ 시상식에서 정보라 작가가 최종 후보에 오른 자신의 에스에프(SF) 단편집 ‘너의 유토피아’의 일부를 낭독하고 있다. 고 변희수 하사가 모티프가 된 ‘그녀를 만나다(To Meet Her)의 마지막 대목이다. 노웨스콘 유튜브 갈무리

정보라 작가가 ‘세계 3대 에스에프(SF) 문학상’이라 꼽히는 ‘필립 케이(K). 딕’의 최종 후보에 올랐으나 아쉽게도 수상하진 못했다. 한국인 작가의 한국어로 쓰인 작품이 필립 K. 딕상 최종 후보에 오른 건 처음이었다.

필립 K. 딕상 심사위는 18일 저녁 7시(현지 시각) 미국 시애틀 노웨스콘 47(미국 SF·판타지 컨벤션)에서 열린 시상식을 통해 본상에 브렌다 페이나도의 ‘타임 에이전트(Time’s Agent)’, 특별언급상에 안드리안 차이코프스키의 ‘에이리언 클레이(Alien Clay)’를 선정했다고 발표했다. 이들과 함께 올 1월 발표된 최종 후보 6종에 포함된 유일한 번역서가 정 작가의 단편소설집 ‘너의 유토피아(Your Utopia)’(안톤 허 옮김, 알곤퀸북스)였다.

필라델피아 SF협회 후원으로 1983년 제정된 이 상은 미국에서 전년도 페이퍼백으로 출간된 작품 가운데 “뛰어난 SF 소설”을 해마다 가려 수여한다. 영화 ‘블레이드 러너’, ‘마이너리티 리포트’, ‘토탈 리콜’ 등의 원작을 포함해 36편 장편소설과 100편 이상의 단편을 발표한 미국의 대표적 SF 작가 필립 K. 딕(1928~1982)을 기리고 있다. 휴고상, 네뷸러상과 함께 명실공히 ‘세계 3대 SF 문학상’으로 불린다. 다만 미국 시장을 무대로 하는 터, 1983년 1회로부터 필립 K. 딕상은 미국·영국·캐나다 작가가 휩쓸었다. ‘아차상’ 격의 ‘특별언급상’만 일본·아이슬란드·이스라엘·나이지리아 작가가 드물게 받은 전례가 있다.

2024년 1월말 미국에서 출간된 영문판 ‘너의 유토피아’의 표지.

‘너의 유토피아’는 정 작가의 두번째 소설집 ‘그녀를 만나다’(2021)의 영문판으로 지난해 1월부터 미국, 영국, 호주 등지에 소개됐다. 앞서 시사주간지 ‘타임’이 ‘2024 올해의 책’으로 선정한 바 있다.

작가의 외할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담아 파슨킨병을 앓은 입주자 할머니를 사랑하게 되고, 그의 마지막을 지켜보게 되는 인공지능 엘리베이터가 등장하는 ‘One More Kiss, Dear’ 등 8편이 담겼다. 인간에게 버려진 행성에서 고장 난 일련번호 314의 휴머노이드와 그를 태우고 떠도는 스마트카 기계(‘나’)의 대화로 시작하는 작품이 표제작이다. 이들은 서로의 ‘유토피아’를 묻는다. 마지막 수록작 ‘씨앗’까지 작품은 상실과 절망, 애도, 사랑, 투쟁, 희망으로 관통되겠다.

2010년부터 비정규직 대학 강사로 활동했던 정 작가의 창작 원천은 한국 문학과 그가 전공한 슬라브 문학, 그리고 차별과 격차의 당대 사회다. 노동·인권운동 현장의 단골 시위자로, 줄기차게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을 요구해 왔다. 첫 자전적 SF 단편집이라 할 ‘지구 생물체는 항복하라’(2024), 몇달 뒤 나온 첫 에세이 ‘아무튼, 데모’에서 드러나는 대로다. 한국 사회가 경험시키는 절망과 공포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투쟁과 스릴이 작품 곳곳에서 형상화된다. 지난달 ‘윤석열 파면’을 헌법재판소에 촉구하는 작가 한줄에 정 작가가 새긴 말은 “내란 수괴 처단하고 평등사회 건설하자”였다. ‘너의 유토피아’의 작가의 말도 “우리는 모두, 여전히, 다 같이, 싸우고 있다”로 갈무리된다.

정보라 작가의 2022년 모습. 이정용 선임기자 [email protected]

정 작가는 이날 시상식에 참석, 각 작품을 소개하는 무대에서 수록작 ‘To Meet Her’의 마지막 대목을 직접 낭독했다. 고 변희수 하사(1998~2021)로부터 착상해 되레 원 없는 발화(“내일모레 120살” 할머니가 화자다)의 난장을 펼치는 ‘그녀를 만나다’이다.

저는 행복합니다.”


나는 화면을 바라보며 울었다. 그 말이 너무나 듣고 싶었다. 그녀가 행복하다고 하는 말을 들었으니 이제 나는 여기서 죽어도 여한이 없겠다고 생각했다. …소리 없이 혼자서 마음껏 울었다. 울면서 그 서늘했던 봄날의 지하철을 생각했다. 노란 잔디가 아직 되살아나지 못했던 차가운 광장의 나지막한 외침을 생각했다.


“힘을, 보태어, 이 변화에.”


“변희수 하사를 기억합니다.”


정 작가는 단편집 ‘저주토끼’의 영문판(안톤 허 옮김)으로 2022년 부커상 국제 부문 최종 후보, 2023년 한국인 작가 최초로 전미도서상 번역부문 최종 후보에 오른 바 있다.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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