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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세상]
레오르 즈미그로드, '이데올로기 브레인'
'서부지법 난동 사태' 첫 재판이 열렸던 지난달 10일,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지방법원 인근에서 극우 지지자들이 집회를 하고 있다. 홍인기 기자


영국 10대들이 이슬람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에 가담한 사실이 2015년 알려지면서 영국 사회가 발칵 뒤집혔다. 여러 전문가가 분석을 쏟아냈다. 온라인의 위험성, 청소년의 정서적 취약성 등이 원인으로 지목됐다. 하지만 이 같은 원인들이 10대들의 극단주의를 충분히 설명하기엔 부족했다. '이들은 다른 10대들의 뇌와 어떻게 다른가' '이데올로기에 취약한 뇌가 따로 있을까'와 같은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영국 신경과학자인 레오르 즈미그로드의 신간 '이데올로기 브레인'은 이데올로기적 사고와 우리 안의 극단주의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를 인지과학과 신경과학의 방법론을 활용해 탐구한다. 대다수 연구자들이 이데올로기를 역사적 추세 또는 사회 운동으로 접근한 반면, 저자는 이데올로기를 뇌의 작용에 따른 심리 현상으로 파악하는 데 중점을 둔다.

사고 유연성 떨어지면, '극좌' '극우' 가능성↑

이탈리아 네오 파시스트 청년 단체가 1월 수도 로마의 한 지역에서 베니토 무솔리니를 추모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로마=AP 연합뉴스


책에 따르면 극단주의에 쉽게 빠지는 사람은 따로 있다.
정치적으로 편향된 영상을 보거나 이야기를 듣는다고, 모두가 거기에 동조하는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인지적 경직성이 심하고 사고의 유연성이 떨어지는 사람들이 극단주의에 쉽게 물든다.
예를 들어 카드를 색, 모양 등 특정 규칙에 따라 분류하다가 중간에 이 규칙이 바뀌었을 때, 변화된 규칙에 빨리 적응하는 '반응 유연성'이 높은 사람은 극단적 이데올로기에 함몰될 가능성이 낮았다.

또 특정 물건(예: 클립, 벽돌)으로 할 수 있는 일('다른 용도 찾기 테스트')을 타당하면서도 창의적으로 많이 써 낸, '생성 유연성'이 높은 사람도 독단에 빠질 확률이 떨어졌다.
반대로 이 두 가지 테스트에서 점수가 낮은 사람일수록 극좌든 극우든 극단적 이데올로기를 지지하는 사람이 많았다. 이들은 세상이 "눈앞의 현상이 깔끔하게 떨어지는 이분법이 아닌 스펙트럼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프랑스 극우 국민연합(RN)의 조르당 바르델라 대표가 지난달 27일 이스라엘 예루살렘에서 열린 국제 반유대주의 대응 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예루살렘=AP 뉴시스


이데올로기가 통념과 달리 "신체에 체화된 현상"이라고 저자는 설명한다.
극심한 경제적 불평등을 거부하는 사람들은 고생하는 노숙인을 다룬 동영상을 시청하는 동안 일상 생활을 담은 동영상을 시청할 때보다 부정적 생리적 각성 반응이 현저하게 높아지는 게 그 예다. 반면 불평등한 체제를 정당화하는 참가자들은 노숙인에 대한 영상을 볼 때나 커피를 만들거나 낚시를 하는 영상을 볼 때의 생리적 반응이 구별되지 않았다.
저자는 "가장 사적인 생리적 반응이 이데올로기에 대한 정보를 넘겨준다"며 "우리의 신체적 감각, 생리적 반응, 생물학적 경험은 이데올로기에 의해 조각된다"고 강조한다.


정치적 보수주의자가 진보주의자에 비해 오른쪽 편도체가 좀 더 큰 경향이 있다
는 건 복수의 연구로 밝혀진 사실이다. 이념에 따라 뇌 구조가 다르다는 것이다. 편도체는 공포, 분노, 혐오와 같은 부정적 감정 처리에 관여하는데, 보수주의자가 부정적 감정에 대해 생물학적으로 더 민감한 사람이라는 의미다. 다만, 구조적으로 편도체가 큰 사람이 보수 이데올로기에 끌리는 것인지, 보수 이데올로기에 몰입한 경험이 뇌 구조를 변화시킨 것인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극단적 이데올로기 추종자, 좀비와 같아"



이데올로기적 사고의 연구 목적은 아이러니하게도 탈이데올로기적 사고다.
이데올로기에 지배당하지 않고 자유롭게 사고하는 것이다. 저자는 "이데올로기를 열성으로 믿는 사람은 거의 무의식적으로, 그리고 기계적으로 명령에 복종하는 좀비와 같다"며 "비이데올로기적인 삶과 사고 방식을 발전시키는 것이 경직된 교리와 경직된 정체성에 저항하는 존재 방식"이라고 강조한다.

책은 분단 80년을 맞는 현재까지 이념으로 인한 사회적 갈등이 극심한 한국 사회에 경종을 울린다. 올 1월에도 극우 지지자들이 사회 규범의 실질적, 상징적 기관인 법원에서 폭력을 휘두른 '서부지법 난동 사태'가 발생했다. 이데올로기에 대한 이 맹렬한 믿음을 개인의 어리석음으로 치부하기엔 사회에 미치는 폐해가 크다. "독단주의의 유혹을 적극적이고 창의적으로 거부하는 뇌" "이데올로기로부터 자유로운 마음"의 중요성을 정치가 아닌 과학적으로 일깨우는 책이다.

'이데올로기 브레인'의 저자인 레오르 즈미그로드 박사. 정치-신경과학 분야의 선구자로서, 첫 책인 이 책은 10개국 이상에서 번역 출간됐다. ⓒStuart Simpson


이데올로기 브레인·레오르 즈미그로드 지음·김아림 옮김·어크로스 발행·380쪽·2만2,000원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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