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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요망진 양기 충전 식품, 새우


올해 ‘국민 드라마’에 등극한 <폭싹 속았수다>에서 개인적으로 잊히지 않는 장면들이 있다. 눈물 콧물 짜내며 마음을 몽글몽글하게 만들던 이 드라마에 유독 튀는 활력을 불어넣던 바로 그 장면. 밉상·진상을 떨던, 하지만 그렇게 밉지만은 않은 두 빌런 ‘학씨 부상길’과 ‘미숙이년’의 능청스러운 수작질 신 말이다. 해산물을 가지고 치던 부상길의 ‘개드립’을 보자

중국 한의서 ‘본초강목’서 정력에 좋은 음식이라 칭해

한 번에 수십만 개 알 낳아 ‘다산’ 상징하기도

‘장수’ 의미하면서 껍질은 ‘지조’ 뜻하는 재미있는 식재료




“미숙이 꽁치가 오빠 가슴에 꽁하고 백히네.” “뭐, 전복? 진짜 나를 전복시켜.” 스멀스멀 웃음이 스며 나온다. “새우나 까 잡솨”하는 미숙의 새촘한 이야기에 화들짝 놀란 부상길은 손으로 입을 가리며 말한다. “너는 진짜 나를 너무 새(우)…, 아니 너무 일으켜.” 질박한 감성 충만한 서사 속에 이런 기상천외한 ‘섹드립’이라니.

금명이와의 결혼 허락을 얻으려 관식 앞에서 영혼을 쥐어짜는 충섭의 노력이 눈물겹게 펼쳐지는 장면. “(알랑방구쟁이 콧소리로)아버님~ 새우를 좀 까 드려 볼까요.”

배경이 제주이다 보니 조구(조기)와 전복, 방어, 오징어 등 해산물이 여럿 등장한다. 이 정도면 새우는 꽤 비중 있는 역할을 ‘요망지게’ 수행한 셈이다.

새우를 깐다는 건 보통 성가신 일이 아니다. 껍질째 우적우적 먹거나 좀 까먹다 말거나 아니면 그냥 안 먹고 만다. 한때 MZ세대 사이에 깻잎논쟁(내 연인이 내 친구에게 깻잎장아찌를 떼줘도 된다, 안 된다는 찬반 논쟁)이 불붙으면서 ‘새우 논쟁’으로까지 파생되기도 했다. 사실 수고로움과 정성 면에서 둘은 비교 대상이 될 수 없다. 번거로움과는 별개로 새우가 차려진 식탁은 풍성하고 화려하다. 평범한 우동 위에, 카레 덮밥 위에 큼직한 새우튀김 하나를 올리면 성찬이 된다. 파스타, 샐러드, 피자 위에 토실토실 살찐 새우가 푸짐하게 올려져 있다면 가성비 따지던 마음이 조금은 누그러들게 마련이다.

‘새우 먹방’으로 영화 <서브스턴스>도 빼놓을 수 없다. 새우를 쉴 새 없이 입속으로 밀어넣으며 게걸스럽게 씹어 먹던 모습 말이다. 연예 산업의 먹이사슬을 실감 나게 표현하던, 화면 가득 클로즈업되던 이 장면은 역겹고 잔혹했다. 프로듀서 하비의 입속에서 씹히던 새우는 ‘먹음직한 살덩어리를 거침없이 착취하겠다’라는 그의 탐욕과 성적 상징을 극대화해 표현했다.

정력 식품으로 흔히 알려진 굴처럼, 새우도 오랜 옛날부터 굴만큼이나 정력에 좋은 식품으로 정평이 나 있다. 중국의 한의서인 <본초강목>에는 새우가 양기를 왕성하게 한다고 언급되어 있다. 이 때문에 중국에서는 예로부터 총각은 새우 먹는 것을 삼가야 한다거나 혼자 여행할 때는 새우를 먹지 말라고 당부한다는 이야기가 전해졌다고 한다.

동국대 일산한방병원 한방내과 정지천 교수는 “새우는 따뜻한 성질로서 신장을 보하고 양기를 강하게 하므로 한의서에 장양도(壯陽道) 혹은 흥양(興陽)한다고 했다”면서 “양위, 즉 남성의 성 기능 장애를 치료하고 정액을 흘리거나 소변을 찔끔거리는 병증은 물론이고 조루증에도 효과가 있다”고 설명했다. (<내 몸을 살리는 약재 동의보감>에서)



새우는 다산의 상징이기도 했다. 안병옥 전 환경부 차관은 <어느 지구주의자의 시선>에서 “새우는 한 번에 수십만 개의 알을 낳는다. 그래서 선조들은 새우를 생명력이 넘치는 해산물로 여겼다. 옛날에는 며느리가 시집오면 새우처럼 자손을 많이 낳으라는 뜻에서 새우알을 먹였다”고 썼다.

굴을 정력제로 즐겼던 카사노바처럼 새우를 정력제로 즐겼던 인물이 있다. 중국의 한무제다. 한왕조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정복왕 한무제에게는 후궁이 1만8000명이나 있었다. 그는 “3일간 먹지 않고는 살 수 있어도 여자 없이는 하루도 살 수 없다(能三日不食 不能一日無婦人)”고 할 정도의 호색한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 그가 즐긴 음식이 새우였다고 한다. 음식에 얽힌 다양한 문화사를 기록한 <음식잡학사전>(윤덕노 지음·북로드)이라는 책에는 영국 탐험가 제임스 쿡과 함께 항해한 선원이 남태평양 통가섬에서 만난 원주민 왕에 대해 썼던 일기를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다.

“이곳의 왕은 매일 원주민 처녀들과 잠자리를 하는 것이 의무 중 하나였는데 라페타마카 2세는 단 한 번도 같은 여자와 두 번 이상 잠자리를 함께한 적이 없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자신이 왕의 의무를 다할 수 있는 비결이 매일 먹는 새우요리 덕분이라고 했다.”

영양도 영양이지만 무엇보다 새우는 맛있다. 달큼한 맛과 탱글탱글한 식감은 어떤 요리를 만들어도 잘 어울린다. 카슈루트(유대인의 음식에 관한 규정)에 따라 갑각류를 먹지 않는 정통파 유대인을 제외하고는 전 세계 어디에서나 거부감 없이 먹는다. 굽고 튀기고 찌고 끓이는 갖은 방법으로 요리한다. 날것으로 먹어도 맛있다. 빠에야, 감바스 알 아히요, 똠얌꿍, 팟타이, 깐쇼새우 등 언뜻 떠오르는 나라별 대표 메뉴에도 새우가 들어간 요리가 많다. 미국 남부의 대표적 음식인 잠발라야나 포보이, 남미에서 비롯된 세비체, 인도 음식점에서 반드시 마주하게 되는 프로운 마살라도 새우를 빼놓고 생각할 수 없다. 하가우, 샤오마이 등 대표적인 딤섬들도 마찬가지다.

우리나라에서는 오래전부터 새우젓을 담가 먹었다. <산림경제>나 <규합총서> <난호어목지> 등 조선 후기 서적에선 새우를 요리하거나 보관하는 법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김치에 새우젓을 넣고 국이나 탕을 끓일 때 말린 새우로 육수를 내거나 새우젓으로 간을 한다. 큼직한 새우 요리가 없더라도 한식의 일상적 식탁은 새우와 밀접한 연관이 있는 셈이다. 하다못해 국민 과자 역시 새우로 만든 스낵 아닌가.

새우를 가장 많이 먹는 나라 중 하나로 꼽히는 일본에서 새우를 일컫는 말은 ‘에비’다. 에비후라이, 에비덴푸라, 에비카레, 에비동, 에비카츠, 에비텐우동 등은 익숙한 일본요리 이름이다.

일본 사람들은 특히 새우튀김을 즐기는데, 이는 크게 에비후라이와 에비덴푸라로 구분된다. 일본의 어식문화에 대해 서술한 <사카나와 일본>(서영찬 지음·동아시아)에 따르면 에비후라이는 밀가루, 달걀, 빵가루를 덧입혀 튀긴 것이고 에비덴푸라는 밀가루와 달걀으로만 옷을 입힌다. 덮밥이나 소바, 우동에 주로 올라가는 새우튀김은 에비후라이라고 보면 된다.

일본에서 새우가 국민 음식이 되다시피 한 것은 1960년대 수입정책 때문이었다. 거대무역상사와 대기업이 냉동 새우 수입에 뛰어들었고 정부도 식생활 근대화의 첨병이 사시사철 즐길 수 있는 냉동식품이라는 주장을 설파하며 새우 소비를 장려했다.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양식되는, 교역량이 가장 많은 수산물인 새우. 명실상부한 세계인의 먹거리다. 바다의 노인, 즉 해로(海老)라 불린 새우는 장수의 상징으로도 여겨졌고 새우의 껍질은 지조와 절개를 의미한다고 하니 앞으로 새우를 먹을 땐 이 의미를 되새겨보는 것도 좋겠다.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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