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봄! 슬기로운 졸음사냥
춘곤증은 봄과 함께 오는 나른한 불청객이다. 봄에는 일조량이 증가하고 기온이 올라가 다양한 실내·외 활동을 하기 적합한 환경이 된다. 그러나 이런 환경 변화에 한동안 적응하지 못하고 피로감과 졸음이 쏟아지는 증상을 겪는 사람들도 늘어난다. 무기력, 집중력 저하 같은 증상이 나타나기도 하며 개인에 따라 입맛이 떨어지거나 불면증, 두통 등의 신체적 증상을 호소하기도 한다.
춘곤증은 의학적인 용어는 아니다. 원인 역시 아직까지 의학적으로 명확히 밝혀지지는 않았다. 다만 겨울에 익숙해져 있던 신진대사 기능이 봄에 맞춰가는 과정에서 2~3주 정도 쉽게 피로를 느끼기 때문이라고 알려져 있다. 하루 해가 뜨고 지는 시각이 변하면 그에 따라 인간의 몸에서도 수면과 각성, 식사 및 활동 등을 포함하는 일주기가 바뀌어가므로 적응이 필요하다. 또 낮이 길어지면서 체내에선 세로토닌 호르몬의 분비량을 늘리는 반응이 일어나지만 단시간에 많은 양의 변동이 생기면 일종의 스트레스로 작용할 수도 있다. 저녁 늦은 시간까지 활동량이 많아지고 수면 시간이 줄어들면 이 역시 피로감을 더하게 만든다.
길어도 3주 정도 지나면 이런 증세는 자연히 사라진다. 그래도 이 기간 동안 춘곤증 증상을 완화하고 싶다면 생활습관을 개선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자고 일어나는 시각을 규칙적으로 지키는 수면 습관이 특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 잠자리에 드는 시간은 다소 달라지더라도 아침 기상 시간만은 일정하게 유지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계절 변화 따라 신진대사 2~3주 적응기
수면시간 등 규칙적 생활 패턴 유지해야
잠 쫓으려 커피·에너지 음료 등 의존하면
자칫 밤잠을 설칠 수 있으니 조절 필요
6개월 지속 땐 ‘만성피로증후군’ 의심을
낮에 많이 졸려 낮잠을 길게 자면 수면 리듬이 교란되면서 몸이 적응에 더 어려움을 겪을 수 있으므로 잠깐 눈을 붙이는 정도로 끝내야 한다. 낮잠을 길게 잤거나 단시간에 입면 시간을 바꾸기 어려운 탓에 쉽게 잠이 들지 않는다면 불면증에 대한 과도한 걱정을 하는 대신 아예 잠자리에서 일어나 잠깐 독서나 음악 감상 등을 하며 졸릴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좋다. 장준희 세란병원 내과 부장은 “기상 후 아침 햇빛을 15~30분 정도 쬐면 수면 호르몬인 멜라토닌 분비가 조절되어 밤에 더 쉽게 잠들 수 있다”며 “과도한 낮잠은 피로 회복에 도움이 되지 않으니 30분 이내로 제한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춘곤증으로 졸음이 쏟아질 때 커피나 에너지 음료 등에 들어 있는 카페인의 각성 효과를 빌리기도 하지만 자칫하면 수면 습관을 해칠 수도 있으므로 마시는 시간을 조절하는 것이 좋다. 개인차가 있으나 일반적인 성인의 카페인 반감기는 4~6시간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는 커피를 마신 지 6시간이 지나도 체내에 여전히 처음의 절반에 가까운 카페인이 남았을 수 있다는 얘기가 된다. 카페인이 수면에 미치는 영향을 가급적 줄이고 싶다면 오전 중에 섭취하는 것이 좋다. 다만 기상 직후에는 스트레스에 맞서 신체에 필요한 에너지를 공급하기 위해 분비되는 호르몬인 코르티솔이 하루 중 가장 많이 나오기 때문에 너무 이른 아침부터 커피를 마시면 코르티솔 분비가 과도해져 오히려 몸이 더 심한 스트레스를 받을 수 있다.
봄철에는 상대적으로 신진대사가 왕성해지면서 몸이 필요로 하는 각종 영양소가 늘어나기 때문에 이에 맞는 충분한 영양 보충도 중요하다. 비타민이 많이 함유된 봄나물을 포함해 신선한 채소와 과일을 적당량 섭취하면 피로 회복과 면역력 향상에 도움을 줄 수 있다. 냉이, 달래, 미나리, 도라지 등의 봄나물에는 특히 비타민C가 많이 함유돼 있다. 콩, 현미, 보리 등의 잡곡에 많이 들어 있는 비타민B도 봄철 피로 회복을 돕는다. 이와 함께 유산소 운동 중심의 신체활동을 늘리면 활력을 높이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 적어도 1주일에 3회 이상, 1회에 30분 이상 운동하는 것이 좋으며 자신의 취향과 체중, 건강 상태에 따라 달리기, 수영, 자전거 타기, 에어로빅 체조 등 즐거운 마음으로 가볍게 할 수 있는 종목을 고르면 좋다.
봄철 일시적으로 나타나는 춘곤증과 달리 심한 피로감이 6개월 이상 지속되면 다른 질환 때문일 수 있다. 대표적으로 극심한 피로가 특징인 만성피로증후군을 앓고 있다면 피로가 충분한 휴식으로도 해소되지 않아 일상생활에 큰 영향을 준다. 집중력·기억력 저하와 두통, 인후통, 림프절 압통 등의 증상이 동반될 수도 있다. 면역계의 이상, 바이러스 감염, 스트레스, 호르몬 불균형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만성피로증후군을 유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진단을 위해 혈액검사와 갑상선 기능 검사, 간기능 검사, 수면 상태 평가 등 여러 검사를 통해 다른 원인질환이 있는지를 먼저 확인한 뒤, 특정 질환 때문이 아니라면 만성피로증후군으로 진단할 수 있다. 40대 이상의 남성에겐 심한 피로감을 느끼게 하는 원인질환으로 간 질환, 당뇨병 등이 발견되는 경우가 많고, 여성에겐 갑상선 질환, 빈혈 등이 원인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남녀 모두 갱년기가 시작되는 50대 이후에는 갱년기 증후군 때문에 피로한 증상이 심해질 수도 있다.
만성피로증후군도 치료의 큰 줄기는 춘곤증이 생겼을 때의 건강관리 방법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규칙적인 생활습관과 충분한 수면, 적절한 운동이 증상 완화에 도움이 된다. 과식이나 불규칙한 식사를 피하고 탄수화물, 단백질, 비타민 등을 골고루 섭취해야 한다. 명상이나 취미 활동 등 개인에게 맞는 방법으로 긴장을 완화하고 스트레스를 관리하는 대처법도 좋다. 필요하다면 항우울제나 부신피질 호르몬제 등의 약제를 처방하거나 인지행동치료 등 환자 개인의 상태에 따른 맞춤형 치료를 시행한다.
염근상 가톨릭대 의정부성모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춘곤증과 만성피로를 구분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은 지속 기간과 증상의 강도, 회복 여부”라며 “춘곤증은 대체로 수주 내에 호전되며 특정 계절에만 나타나지만, 만성피로는 계절에 상관없이 장기간 지속되며 일상생활에 큰 지장을 주고 우울증이나 수면장애, 기타 내과적 질환과도 관련됐을 수 있으므로 정확한 진단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