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고 미납 관행이었는데…버스 기사들 민주노총으로 옮기며 표적
함상훈 후보 등 노사관계 몰이해 의혹…재판부따라 판결 엇갈려
함상훈 후보 등 노사관계 몰이해 의혹…재판부따라 판결 엇갈려
윤석열퇴진 전북운동본부가 지난 4월 11일 전북도의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함상훈 헌법재판관 후보자에 대한 지명 철회를 촉구하고 있다. 김창효 선임기자
[주간경향] 2014년 전북 전주에서 2400원을 회사에 입금하지 않은 버스 기사가 해고됐다. 해고는 부당하다며 소송을 제기해 1심에서 부당한 해고라는 판단을 받았지만, 2심에서 뒤집혔다. 당시 2심 재판부의 재판장은 최근 헌법재판관 후보자로 지명된 함상훈 판사다. ‘유전무죄 무전유죄 판결’ ‘장발장 판결’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우리는 이런 장면을 처음 보는 것이 아니다. 2022년 오석준 당시 대법관 후보자의 국회 인사청문회에서는 800원을 횡령한 버스 기사의 해고 사건이 화제가 됐다. 2010년 전북 전주에서 각각 800원, 5200원을 착복했다는 이유로 2명의 버스 기사가 해고됐다. 지방노동위원회와 중앙노동위원회에서는 부당 해고라는 판단을 했는데, 오석준 대법관이 재판장으로 있던 행정법원에서 판단을 뒤집었다. 오석준 후보자는 인사청문회에서 “나름대로 사정을 참작하려 했으나 살피지 못한 부분도 있었다”며 “마음이 무겁다”고 했다.
이 사건들의 문제는 단순한 가혹함이 아니다. 사회적 살인이라 불리는 해고의 정당성을 판단한 판결문의 문장 사이에서 맥락은 아랑곳하지 않는 무시와 무심함이 읽힌다. 두 사건은 공통점이 많다. 4년의 시차를 두고 해고된 3명의 기사는 같은 회사 소속이었다. 해고가 이뤄지던 당시에 이들은 모두 특정 노동조합에 소속돼 있었다. 그리고 그 무렵 전주 지역에는 이들 이외에도 소액 횡령으로 해고된 버스 기사들의 송사가 더러 있었다. 이들 역시 특정 노동조합 소속이었다. 해고 사례들을 하나하나 살펴보면 노조 탄압의 그림자를 찾기란 그리 어렵지 않다. 법은 회사의 노조 활동에 대한 차별이나 탄압을 부당노동 행위라는 이름으로 처벌하고 있지만, 이들 재판에서는 전혀 고려되지 않았다. 적어도 이들 판결문에서 노사관계에 대한 이해와 노동계급에 대한 존중은 찾아보기 힘들다.
대법원과 헌법재판소는 시민의 기본권 보장을 위한 최후 보루로 불린다. 법관으로서 ‘재판을 잘한다’는 평가를 받으며 이들 기관에 몸담고 있거나 물망에 오르는 최고위 법관들이 이 사건들을 다루며 놓쳤던 것을 짚어본다. 이는 두 고위 법관에 대한 이야기만은 아니다. 법·제도와 사법부가 궁지에 몰린 평범한 사람들을 어떻게 대했는지 돌아본다.
왜 잔돈만 챙겼을까
2010년대 전주 지역에는 버스 기사의 소액 횡령 사건이 여러 차례 발생했다. 횡령 금액은 사례별로 달라도 양상은 대체로 비슷했다. 해고된 기사들은 시외버스 기사들이었고, 손님이 현금으로 낸 요금을 통째로 착복한 건 아니었다. 회사에 지폐만 내고 잔돈은 입금하지 않는 식이었다.
기사 개인의 비위나 실수일 수도 있지만, 여러 건이 줄지어 발생했다면 일단 업계의 관행이나 구조적인 원인이 있었던 게 아닌지 의심해봐야 한다. 당시 시외버스는 승차권을 내고 탑승하는 승객이 대부분이었지만, 매표소가 없는 정류장에서 타는 승객은 현금을 냈다. 만원권, 오천원권을 내는 손님에게 거스름돈을 돌려줘야 했는데 이는 오롯이 기사의 업무였다. 시내버스와 달리 시외버스에는 지폐를 넣으면 거스름돈이 나오는 기계식 현금관리기도 없었고, 회사에서 기사들에게 거스름돈을 따로 지급하지도 않았다. 일단 버스 기사가 가진 돈에서 지급하고 나중에 정산했다. 당시 해고된 버스 기사들은 미입금한 잔돈을 다음 운행에서 거스름돈으로 사용하는 것이 관행이었다고 주장했다.
오석준 대법관에 의해 800원 횡령으로 해고가 확정된 A씨는 행정소송이 진행되기 전 행정심판인 지노위와 중노위를 거쳤다. 당시 중노위는 “요금 일부 미납행위는 어느 정도 묵인돼 관행적으로 이루어진 것처럼 보이는 측면이 있다”고 했다. 중노위 조사 결과 이 회사는 A씨를 해고하기 이전 24년간 요금 전액을 착복한 기사를 2차례 해고했을 뿐, 잔돈 미납으로 기사를 해고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A씨 역시 해고 이전 4개월간 자신이 승객에게 받은 돈과 회사에 낼 돈을 회사에 보고하면서 일부 잔돈을 입금하지 않은 것을 숨김없이 보고했다. 해고 사유가 될 것을 알고도 잔돈을 챙긴 사실을 순순히 보고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물론 중노위도 착복이 관행이라 해도 정당한 행위라고 보진 않았다. 그러나 해고할 정도는 아니라고 봤다. 물론 이 판단은 오석준 대법관이 심리한 재판에서 뒤집힌다.
그간 관행처럼 이어지던 잔돈 미납은 왜 2010년대에 이르러 관행이 아니게 됐을까. 그해 전주의 버스 업계에 새로운 노조가 생겼다. 이전까지 버스 기사들은 대부분 한국노총 소속이었는데, 통상임금 관련 노사합의에 불만을 가진 전주 7개 버스회사의 일부 기사들이 민주노총 산하 노조를 만들었다. 그러나 회사 측이 민주노총 노조를 인정하지 않으면서 2010년 시작된 파업이 2013년에야 일단락될 정도로 갈등이 격화됐다. 이후에도 A씨 등을 해고했던 B사 등은 민주노총과 단체협약을 체결하지 않으면서 갈등을 이어갔다. 이 기간 동안 민주노총 소속 버스 기사들은 현금 착복, 결행, 배차 거부, 무단지각 등 다양한 이유로 해고 등 중징계를 받았다. 당시 민주노총 전북지부에서 A씨 등의 노무 상담을 했던 이장우 새길 노동법률사무소 노무사는 “그때도 버스 내에 CCTV가 있었는데 버스가 많으니 (착복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CCTV를 전부 다 보기는 불가능했다. 몇몇 기사를 특정해 돌려본 것이다”라며 “회사 쪽에서 민주노총 사업장이 되지 않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 결과물이 징계 건의 폭발적인 증가였다”고 했다. 예컨대 5200원을 착복했다는 이유로 2010년 해고된 C씨는 그해 9월 28일 민주노총에 가입했는데, 회사는 바로 다음 날 C씨가 운행한 차량의 CCTV 기록을 확인해 10일 전 운행에서 발생한 잔돈 착복을 파악했다.
해고 후 법정 다툼에 나설 수 있었던 사람들은 오히려 소수였다. 적잖은 수가 회사에 백지 사표를 내고, 민주노총을 탈퇴하고 회사로 재입사하는 길을 택했다. 민주노총 조합원 수는 갈수록 줄었다. 2015년 B사의 민주노총 조합원은 96명이었는데, 이중 58명이 징계를 받았거나 징계를 받을 예정이었다. 2017년에는 고용노동청이 B사가 민주노총 조합원들을 차별한 혐의가 있다며 검찰에 기소 의견으로 송치하기도 했다. 그러나 검찰은 민주노총 조합원들의 복장 불량, 징계 불복 등 차별할 만한 이유가 있다는 회사 측의 입장을 받아들여 불기소 처분했다.
노조 탄압 주장을 해고의 근거로
해고 기사들의 재판에서도 이런 사정은 고려되지 않았다. 오히려 함상훈 후보자는 D씨의 재판에서 이를 불리한 사정으로 해석했다. B사는 2014년 징계위원회를 열어 2400원을 납입하지 않은 D씨를 해고하고, 800원을 납입하지 않은 E씨를 정직 처분했다. 둘 다 민주노총 조합원이었다. 해고 이후 D씨는 언론 인터뷰와 1인 시위 등을 통해 노조 탄압 목적의 해고라고 주장했다. 함상훈 후보자가 재판장을 맡은 2심은 이를 두고 D씨가 반성하지 않는다거나, 해고가 노조 탄압과 관련 있다는 D씨의 주장이 회사와의 신뢰관계를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훼손했다며 해고가 정당하다고 판단하는 근거로 삼았다. 2400원 착복에 D씨의 책임은 있지만, 회사도 잔돈 착복을 원천 차단할 수 있는 기계식 현금관리기를 버스에 설치하지 않은 점을 참작하면 사회통념상 해고는 부당하다고 판단한 1심 판단을 뒤집은 것이다.
D씨는 17년간 버스 기사로 근무하면서 현금 관리와 관련된 문제를 일으킨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징계 이력도 없었다. 착오가 있었을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 당시 사정을 아는 복수의 관계자에 따르면 D씨는 사건 발생 당시에도 투석을 하는 등 건강이 온전치 못했다고 한다.
2013년 3100원 착복으로 전주의 시외버스 회사 F사에서 해고된 김용진씨의 얘기다. “사규를 따지자면 1원이라도 횡령은 횡령이고 목이 날아간다. 기사 머리 위에 CCTV가 있는데 3000원 먹겠다고 착복하는 사람이 어딨냐. (회사에 입금할 때 승객에게 받은 것보다) 돈이 모자라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는데 모자란 액수를 변제하고 넘어가곤 했다. 그런데 민주노총 소속은 그렇게 안 되더라. (손님한테 돈을 받아도) 돈통이 없으니 그 돈을 어디다 놓을 거여. 기사님 호주머니에 들어갔다가 나왔다가. 손님이 현금을 내면 바로바로 적어야 안 잊어버리는데 운행 중에 멈춰서 쓸 수도 없고 손님 다 내린 다음에 기억을 더듬어서 쓴다. 하루 치를 어떻게 다 기억하냐.” 3100원 착복 사실이 확인된 후 김씨는 바로 변제했지만 회사는 징계해고 절차를 그대로 밟았다.
당시 지역 인터넷 언론에서 기자로 일하며 전주 버스회사의 노사 갈등을 취재했던 문주현 책방 토닥토닥 대표는 “당시 민주노총에서도 현금교환기 없으면 현금 안 받겠다며 현금교환기 달아 달라고 계속 요구했다. 그러면 이런 일 없지 않느냐고. 그런데 설치해주지 않았다”고 했다.
단지 재판부만 달랐다
해고된 버스 기사들의 재판 결과가 모두 동일했던 것은 아니다. 김용진씨는 해고가 부당하다는 대법원 확정판결까지 받고 복직했다. 각각 3100원과 2400원을 회사에 내지 않은 김용진씨와 D씨의 사례는 거의 차이가 없다. 둘 다 수십 년간의 버스 운행 경험이 있고, 그간 한 번도 현금관리에 문제가 없었으며, 징계를 받은 이력도 없었다. 그리고 여러 날에 걸쳐 착복한 것이 아니라, 단 한 번의 운행에서 잔돈을 납입하지 않은 것이 문제가 됐다. 회사는 달랐지만 둘 다 민주노총 조합원이었다. 변론전략이 달랐다고 보기도 어렵다. 김씨와 D씨는 같은 변호사를 선임했다. 같은 지역에 살다 보니 3심까지 동일한 법원에서 재판을 받았다.
단지 심리한 재판부가 달랐다. 징계해고에 대한 재판 쟁점은 크게 3가지다. 징계 절차를 지켰는지, 사유는 타당한지, 징계에도 정직·감봉·해고 등 여러 수위가 있는데 사유에 비춰 수위가 적절한지를 따진다. 김씨와 D씨의 재판에서 절차와 사유에 대한 판단은 동일했다. 징계 절차에 흠결은 있지만 부당하다고 볼 수는 없고, 잔돈을 회사에 납입하지 않은 것은 김씨와 D씨의 책임이라고 판단했다. 다만 김씨의 사건을 맡은 1·2심 재판부는 착복에 책임이 있다 하더라도 사회통념상 해고할 정도는 아니라고 봤다. 그리고 대법원에서 그대로 확정됐다. 김씨 사건의 대법원 선고가 있은 지 2년 6개월 만에 함상훈 후보자는 D씨 2심에서 해고가 정당하다고 판단했다. 오히려 착복한 액수는 김씨가 더 많았는데도 그랬다.
2014년 전주의 시내버스 회사에서 해고된 기사가 회사 국기봉에 목을 매 숨지는 일이 있었다. 사망 이튿날 그의 해고가 부당하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물론 그도 민주노총 조합원이었다. 정년을 3년 앞둔 김용진씨에게도 해고는 사형 선고와 같았다. 가족 몰래 회사와 노조에 남기는 유서를 2장 써두기도 했다. 해고 기간 동안 생계가 막막해 파지를 줍거나 건설현장 일용직으로 일했다. 동료가 변호사비를 빌려주지 않았다면 복직을 위한 소송은 꿈도 못 꿨을 것이다. D씨는 “당시 일을 떠올리고 싶지 않다”며 취재를 거부했다. 주변인들의 말에 따르면 생계에 매진했고, 투병 생활도 계속됐다고 한다.
김용진씨는 “재판관 잘 만나야 한다. 내 판결문에도 사회통념상이라는 말이 나온다. 사회통념상 2400원 횡령했다고 해고하는 건 무리지 않냐. 맨날 입으로는 상식과 공정을 외치면서 그렇게 판결하는 게 말이 되나. 헌법재판관으로는 인정할 수가 없다”고 했다.
문주현 대표는 “횡령이 맞는지, 착오는 아닌지 더 면밀히 따졌어야 했다. 노조 탄압의 영향은 없는지도 살펴봤어야 했다. 장발장 재판이었다. 소액이라서가 아니다. 장발장도 경찰과 사법부가 전후사정을 전혀 헤아리지 않은 것 아니냐. 자기가 내린 판결이 한 사람 인생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숙고했어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