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로 사회'에 경고…"과로, 사람을 가장 밑바닥부터 파괴"
노력·성공 패러다임 벗어나 '일에 대한 관점' 바꿔야 할 때
노력·성공 패러다임 벗어나 '일에 대한 관점' 바꿔야 할 때
(서울=연합뉴스) 최재석 선임기자 = 택배업계에서 '휴일 없는 배송 전쟁'이 치열하다. 쿠팡과 CJ대한통운에 이어 한진택배도 이달 27일부터 수도권과 지방 주요 도시에서 주 7일 배송을 시범 운영한다고 한다. 업계의 경쟁은 소비자에겐 편익을 줄 수 있지만 관련 종사자의 노동조건은 악화하기 십상이다.
근무시간(PG)
[구일모 제작] 일러스트
[구일모 제작] 일러스트
한국은 그동안 꾸준히 경제성장을 이뤘음에도 아직도 주요국에 비해 '일을 많이 하는 나라'로 꼽힌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간 근로 시간 비교에서 여전히 상위권에 속한다. 2022년 기준 우리나라보다 임금 근로자의 연간근로시간이 많은 회원국은 콜롬비아, 멕시코, 코스타리카, 칠레뿐이다. 38개 회원국 평균보다 연간 150시간 정도 많다. 이웃 일본은 우리보다 연간 300시간가량 적게 일한다. 한국이 장시간 근로 국가임을 뒷받침하는 논거로 흔히 이 통계가 인용되는데 우리나라의 자영업 비중이 높아 근로 시간이 더 길게 집계되는 경향도 있다.
일반인들이 장시간 근로, 즉 일상적인 과로에서 오는 위험성을 인지하기는 쉽지 않다. '저속노화' 식단 열풍을 일으킨 정희원 서울아산병원 노년내과 교수가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 과로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영상을 올려 눈길을 끈다. 정 교수는 지난 16일 영상에서 지난해 2월 의정 갈등이 시작된 이래 자신이 병원에서 과로로 탈진한 경험을 고백하면서 "과로는 사람을 가장 밑바닥부터 파괴하는 요인"이라고 지적했다. 이 영상에는 하루 만에 500개가 넘는 댓글이 달릴 정도로 반응이 뜨겁다.
정 교수는 과로가 각종 질병을 유발할 수 있다면서 "사람은 기계가 아니다. 고장 나면 부속만 바꿔서 쓰면 되는 존재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결국 "일을 바라보는 사회의 관점이 바뀌어야 한다"고 했다. 제도적으로, 시스템적으로 일을 보는 사회 문화를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그동안 우리가 일하는 시간을 늘리고 정신을 차려야 된다고만 생각했다면 이제는 더 건강하게 일하고 성과를 높이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개인의 의지와 노력을 강조하던 성장 중심주의 시대에서 벗어나기 위해 유념할만한 주장들이다.
"장시간 노동 과로사 조장" 거리 행진하는 노동자
(원주=연합뉴스) 이재현 기자 = 제133주년 세계노동절인 1일 강원 원주시 시청 앞 광장에서 열린 강원지역대회에 참가한 민주노총 산하 단체 노동자들이 거리 행진을 하고 있다. 2023.5.1
(원주=연합뉴스) 이재현 기자 = 제133주년 세계노동절인 1일 강원 원주시 시청 앞 광장에서 열린 강원지역대회에 참가한 민주노총 산하 단체 노동자들이 거리 행진을 하고 있다. 2023.5.1
우리 사회는 정 교수 주장대로 과거 제조업 시대의 성공 방정식, 즉 정신 차리고 성실하게 노력하면 된다는 '하면 된다'는 식으로 일을 바라보는 관점에서 탈피해야 할 때다. 관련 댓글에도 "이젠 저성장에 인공지능(AI) 시대인데 70년대 노력·성공 패러다임은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시스템을 개선하려고 하기보다 개인의 의지력을 탓하는 게 습관이 된 사회를 본질적으로 고쳐나가야 한다", "과로가 성실의 증거로 여겨지는 사회적 시선이 가장 큰 문제다" 등의 공감하는 내용들이 많았다.
오는 6월 조기 대선을 앞두고 법정근로시간 단축 문제가 정치권에서 공약으로 거론되고 있다. 민주당은 현행 주 40시간에서 32시간으로 줄여 주 4일 근무제를 도입하는 내용을 검토 중이고, 국민의힘은 주 40시간을 유지하는 주 4.5일 근무제를 내놓았다. 근로 시간 단축은 일과 삶의 균형을 제고하고, 근로 시간을 나눠 일자리를 늘리는 효과를 거둘 수 있지만 '덜 일 하고 덜 받는다'는 사회적 합의의 문제가 뒤따른다. 적게 일한다고 생산이 준다는 것은 단편적인 생각일 수 있다. 어쩌면 "건강한 몸과 맑은 두뇌에서 생산성이 나온다"는 정 교수의 말에 해법이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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