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수학교 사회복무요원 박준영씨 이야기>
장애 학생 손발 역할… 궂은일 도맡은 '해결사'
"학생들 챙기려 점심도 늘 급히 먹던 사람"
말없던 아이들, "준영쌤" 부르며 마음 열어
소집해제 뒤에도 자청해 한 학기 더 근무
장애인의날(4월20일) 맞춰 420만원 기부
장애 학생 손발 역할… 궂은일 도맡은 '해결사'
"학생들 챙기려 점심도 늘 급히 먹던 사람"
말없던 아이들, "준영쌤" 부르며 마음 열어
소집해제 뒤에도 자청해 한 학기 더 근무
장애인의날(4월20일) 맞춰 420만원 기부
서울 관악구의 특수학교인 정문학교에서 사회복무요원으로 2년 넘게 일했던 박준영씨(오른쪽)가 지난 8일 교정에서 아이들과 밝게 웃고 있다. 최주연 기자
처음엔 잘못 들었나 싶었다. 4년차 특수교사 차수빈씨는 지난해 6월 교실에서 예상치 못한 부탁을 받고 난처해했다. 그만큼 상식에 반하는 요청이었다.
"소집해제된 이후에도 학교에 남아 한 학기만 더 일하게 해주세요, 선생님."
사회복무요원들에겐 '험지'로 알려진 특수학교. 그곳에서 1년 9개월의 근무기간을 다 채운 청년의 부탁이었다. 그는 일하고 싶을 뿐 아무 대가도 바라지 않는다고 했다. 차 교사가 말려봤지만 소용없었다. 소식을 들은 다른 교직원들도 "무슨 그런 사람이 다 있느냐"며 술렁였다. 하지만 다들 마음 한편으로는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다른 사람이 아닌 준영 쌤이라면···.'
서울 관악구의 특수학교인 정문학교에서 사회복무요원이자 봉사자로 오롯이 2년 1개월을 보낸 박준영(26)은 원래 그런 사람이었다.
"늘 학생들 관찰하던 사람… 아이들도 그 마음 알았다"
2022년 12월, 코끝에 찬 기운이 느껴지던 때 준영씨는 처음 정문학교에 출근했다. 그해 대학을 졸업한 뒤 사회복무요원 소집 신청을 하면서 희망 근무지로 서울시교육청을 써냈다. 사범대(서울대 수학교육과 18학번)를 나왔으니 학교에서 아이들과 함께 지내면 의미 있겠다는 단순한 생각이었다.
20평(약 67㎡) 남짓한 고1 교실이 준영씨의 일터였다. 한 반 학생은 모두 여섯 명. 스무 명 넘게 수업 듣는 일반 교실보다 여유로워 보이지만 실은 더 분주하다. 지적장애와 자폐스펙트럼 학생들을 제대로 가르치려면 손이 많이 가는 까닭이다.
준영씨는 교사와 호흡을 맞춰 아이들의 학습과 생활을 도왔다. 손을 잡고 가위질, 색칠을 함께 하는가 하면 다 쓴 교구를 정리하고, 교실에서 대변 실수를 한 아이의 뒤처리도 도맡았다. 점심 때 숟가락 위에 반찬을 살뜰히 올려주는 것도 준영씨 몫이었다. 뭐든 급한 일이 있으면 찾게 되는 '해결사'였던 셈이다.
차 교사는 "사회복무요원의 점심시간이 40분인데 준영 선생님은 늘 20분 만에 돌아와 수업을 도왔다. 제발 천천히 먹고 오라고 해도 말을 듣지 않았다"며 웃었다. 준영씨는 이 학교에서 일하며 연차 휴가 등도 제대로 쓰지 않았다.
지난 8일 서울 관악구 정문학교에서 전 사회복무요원 박준영씨가 학생이 자전거를 타는 것을 보조하고 있다. 최주연 기자
아이들을 편견 없이 사랑하는 건 생각보다 어렵다. 특히 장애를 깊이 공부했거나 곁에서 겪어본 적 없는 젊은 사회복무요원들은 학생들의 행동을 이해 못 해 상처받기도 한다. 표현이 서툰 아이들이 종종 때리거나 할퀴고 소리지르는 방식으로 답답함을 표현하기 때문이다.
이 학교 김애리사 교감은 "적응이 어렵다며 근무지를 바꿔달라고 요청하는 사회복무요원들이 간혹 있다"고 전했다. 준영씨에게도 힘든 날이 있었지만 그가 인상 쓰는 걸 본 사람은 없다. 오히려 틈날 때마다 발달장애를 다룬 책이나 콘텐츠를 찾아보며 행동을 이해해보려 애썼다.
"아이들이 예쁜 짓을 할 땐 온전히 감성적으로 받아들였어요. 반대로 돌출행동을 하면 이성적으로 판단해 대처하려고 했죠. 저만 특별한 건 아녜요. 특수학교에서 일하는 모두가 그렇게 노력하니까요."
전 사회복무요원 박준영씨가 지난 8일 자신이 일했던 서울 관악구 정문학교에서 본보와 인터뷰 중 환하게 웃고 있다. 최주연 기자
준영씨는 스스로 남다를 게 없다며 몸을 낮췄다. 하지만 교직원들의 생각은 달랐다. 잊지 못할 특별함이 있는 동료였다고 했다. 차 교사는 "관찰력이 뛰어난 사람"이라고 떠올렸다.
"아이들의 사소한 변화를 놓치지 않았어요. 새 옷을 입었거나 새로 산 키링을 가방에 달았을 때 금세 알아채 예쁘다고 칭찬해줬죠. 그렇게 라포르(rapport·친밀감)를 빨리 쌓는 재능이 있었어요. 엉덩이를 두드리는 등 아이들이 보내는 배변 신호도 누구보다 빨리 감지해 도왔죠. 그날따라 기분이나 건강이 안 좋아보이는 아이가 있으면 인지해 교사에게도 알려줬고요. 학생들에게 애정이 깊지 않다면 안 보이는 것들이죠."
아이들도 다 안다. 누가 자신을 아끼는지. 그리고 어떤 방식으로든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준영씨는 학생들이 자신을 같은 반 구성원으로 인정해 준 순간이 가장 기뻤었다고 했다.
"말이 없던 아이가 어느 날 저를 '준영쌤'이라고 불러줬어요. 다른 학생은 교실 그림을 그렸는데 담임 선생님과 친구들 옆에 저도 그려 넣었더라고요. 스승의날에는 '선생님 최고로 멋있어요'라고 쓴 편지를 받은 적도 있어요. 사회복무요원은 수업 중 돋보여선 안 되는 그림자 같은 역할인데···, 이름을 불러주니 뛸 듯 기뻤죠."
정문학교 학생이 스승의날에 자신을 돌봐주던 사회복무요원 박준영씨에게 준 종이 카네이션. 박씨는 "아이들이 나를 한 반의 구성원으로 받아줬을 때 가장 기뻤다"고 말했다. 박준영씨 제공
폭설 내리던 날, 새벽 교정에 준영씨가 나타났다
봄이 끝나가던 지난해 6월, 소집해제를 두 달여 앞두고 준영씨는 고민에 빠졌다. 한 학기만 더 학교에 남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취업해서 돈 버는 일은 나중에도 할 수 있지만 아이들과 추억을 쌓을 수 있는 시간은 이때뿐일 것 같았다.
"1학기는 적응기라 워낙 바쁘게 가요. 2학기가 돼야 아이 한 명 한 명의 매력이 보이죠. 체험학습을 같이 가서 마음의 벽이 허물어지고 부쩍 가까워지는 경험도 할 수 있고요."
교사들은 이게 사실은 아이들의 상황을 감안한 준영씨의 배려임을 짐작했다. 당시 맡았던 중학교 1학년 반에는 수업 중 교실 밖으로 나가는 등 적응에 어려움을 겪는 학생들이 있었다. 곁에 있던 사회복무요원이 2학기에 바뀌면 심리적으로 더 혼란스러울 수 있는 상황이었다. 학교 측은 준영씨의 고집에 못 이겨 "유급 봉사를 해달라"고 했다. 그는 "사회복무요원 신분일 때처럼 무슨 일이든 편히 시켜달라" 부탁했다.
홍용희 교장과 김 교감이 '박준영'이라는 이름을 더 또렷이 기억하게 된 날이 있었다. 지난해 11월 28일 새벽, 서울에는 전날부터 내린 기록적 폭설 탓에 도로가 엉망이 됐다. 관악구에는 무릎 높이(41㎝)만큼 눈이 쌓였다. 정문학교가 있는 신림동 난곡의 비탈은 악명 높다. 대부분 스쿨버스로 등교하는 아이들이 자칫 학교에 오지 못할 것 같았다.
새벽 일찍 출근한 홍 교장과 김 교감이 걱정스레 눈 쌓인 교정을 지켜보고 있을 때 누군가 교문 안으로 들어왔다. 준영씨였다. 밤새 학교 상황이 마음에 걸려 새벽 5시에 집을 나섰다고 했다. 도로가 마비된 탓에 버스 대신 2시간가량 걸어서 학교에 왔다. 이후 출근한 다른 교직원들과 함께 비탈길의 눈을 치웠고 등교한 아이들이 추울까 봐 반마다 돌며 난방기도 모두 켜놨다. 이날 아이들은 무사히 등교할 수 있었다.
지난해 11월 28일 폭설로 덮인 서울 관악구 정문학교의 교정. 사회복무요원 박준영씨는 이날 새벽같이 출근해 동료들과 눈을 치우며 학생들의 등교를 도왔다. 박준영씨 제공
지난해 12월, 준영씨는 한 해를 잘 마무리했다는 안도감 속에 교문을 나섰다. 그가 떠난다는 소식을 듣고 눈물을 보인 학부모도 있었다. 방과후 돌봄 교실 등에서 자신의 아이와 격 없이 놀고 도우며 함박웃음 짓는 모습을 봐왔기 때문이다. 다만 준영씨는 자신만 부각되는 걸 꺼렸다.
"특수교사들이 온마음으로 학생들을 예뻐하고, 아이들도 기분 좋아지는 걸 관찰하다 보면 '내가 이 공간에서 조금이라도 도움이 돼야겠다"는 마음이 절로 들어요. 교사와 아이들이 만들어가는 교실 풍경에 반해 대학 전공을 특수교육으로 바꾸려는 사회복무요원 동료도 있었어요."
준영 씨는 "애초 내 몫이 아닌 걸 돌려드리고 싶다"며 자신이 받은 유급 봉사료 전액에 가까운 420만 원을 정문학교 발전기금으로 기부했다. 장애인의날(4월 20일)의 의미를 더하고자 숫자를 맞췄다. 아이들과 생활하며 받은 돈을 먹거나 노는 데 쓴다면 너무 아까울 것 같았다. 소집해제 뒤 취업한 준영 씨에게 정문학교에서 보낸 2년은 선물 같은 추억이다.
"학교에서 좋은 분들을 너무 많이 만났어요. 덕분에 '어딜 가든 좋은 사람들이 있겠구나' 하는 낙관을 하게 됐죠. 정문학교의 모든 구성원이 그랬듯 저도 제가 가진 능력으로 사회에 기여하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