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d 문화]
‘발레 대중화’ 클래식 발레에 머물러
춤 중심인 컨템포러리는 어렵게 느껴
현대무용 영향으로 움직임에 집중해
‘발레 대중화’ 클래식 발레에 머물러
춤 중심인 컨템포러리는 어렵게 느껴
현대무용 영향으로 움직임에 집중해
컨템포러리 발레는 줄거리 없이 무용수의 움직임으로 진행된다. 때문에 처음에는 어렵지만 계속 보다 보면 춤이 가진 본연의 아름다움에 매료된다. ABT가 지난해 초연한 카일 에이브러햄의 ‘변덕스러운 아들’. ⓒQuinn Wharton
공연계에서 수년 전부터 발레 열풍이 뜨겁다. 취미 발레 유행과 스타 무용수 팬덤 등이 더해지며 ‘발레 대중화’가 이뤄지고 있다는 말까지 나온다. 하지만 현재 발레의 인기는 ‘백조의 호수’ ‘호두까기 인형’ 등 클래식 발레에 머무는 수준이다. 실제로 국내 양대 발레단인 국립발레단과 유니버설발레단이 모던 발레 또는 컨템포러리 발레를 공연할 때와 클래식 발레를 공연할 때의 티켓 판매는 차이가 크다. 지난해 컨템포러리 발레를 내세운 서울시발레단이 창단되면서 발레 팬들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지만 아직은 낯설어하는 듯하다. 대체로 줄거리 없이 움직임을 중심으로 춤이 진행되다보니 어렵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무용의 역사에서 20세기 초 클래식 발레의 형식주의에 반발해 자유로운 표현을 추구한 춤을 모던 발레로 불렀다. 당시 내면의 표현을 중시한 이사도라 덩컨의 모던 댄스(현대무용)의 영향을 받았다. 1909~29년 전 세계를 휩쓴 ‘발레 뤼스(러시아 무용단)’는 모던 발레의 출발점이다. 발레리나가 토슈즈를 신는 전통을 깨는 한편 기존의 발레에서 볼 수 없던 움직임이 담긴 작품들을 선보였다.
모던 발레와 혼용… 동시대성 강조
컨템포러리 발레는 내용 면에서 모던 발레와 별반 다르지 않아서 혼용되기도 한다. 다만 모던 발레에 비해 ‘동시대’의 의미를 강조한다. 현대무용이 모던 댄스-포스트 모던 댄스-컨템포러리 댄스로 구분 짓는 것을 발레도 받아들인 셈이다. 종종 모던 발레는 발레에 더 가깝고 컨템포러리 발레는 현대무용에 가깝다는 견해도 있지만, 예외가 많이 존재해서 일반화하기 어렵다.
컨템포러리 발레는 1980년대 프랑스에서 ‘누벨 당스’(Nouvelle Danse)로 불리는 다채로운 현대무용의 흐름이 발레에 영향을 미친 데서 기원을 찾는다. 당시 만들어진 작품에 대해 앞선 모던 발레와 구분해 동시대성을 강조한 컨템포러리 발레로 불렀다. 다만 1980년대에 컨템포러리 발레로 불린 작품도 2025년 시점에서는 동시대성보다 클래식함이 느껴지기도 한다.
요즘 클래식 발레를 기본으로 하는 메이저 발레단들이 현대무용 안무가에게 작품을 위촉하는 것은 흔한 일이 됐으며 아예 상주 안무가로 임명하기도 한다. 이렇게 만들어지는 작품 중에는 현대무용과 구분하기 어려운 경우도 적지 않다. 정옥희 무용평론가는 18일 “컨템포러리 발레를 컨템포러리 댄스와 구분 짓는 것은 발레의 정체성에 대한 의식이다. 발레계의 거장 안무가 윌리엄 포사이스가 움직임을 해체하는 등 다양하게 실험한 작품에 대해 컨템포러리 발레로 보는 게 이런 이유에서다”며 “컨템포러리 발레는 스타일이 아닌 관점”이라고 설명했다.
ABT 내한… 미국 안무가들 작품 포진
ABT가 2024년 선보인 제마 본드 안무 ’라 부티크’. 영국 안무가 프레데릭 애슈턴의 영향을 받은 작품으로 클래식 발레와 컨템포러리 발레의 감각이 세련되게 어우러졌다. ⓒEmma Zordan
올봄 완성도 높은 컨템포러리 발레 레퍼토리를 만날 수 있는 무대가 이어진다. 우선 오는 24~27일 GS아트센터 개관을 기념해 13년 만에 내한공연을 펼치는 아메리칸 발레 시어터(ABT)의 ‘클래식에서 컨템포러리까지’는 놓치기 아까운 무대다. 세계 최정상 발레단 중 하나인 ABT는 이번 공연 프로그램에 미국 발레의 역사에서 중요한 안무가들의 대표작을 대거 포함했다. 미국 발레의 아버지로 불리는 조지 발란신(1904~83)의 ‘주제와 변주’(1947)를 시작으로 트와일라 타프의 ‘다락방에서’(1986), 카일 에이브러햄의 ‘변덕스러운 아들’(2024), 제마 본드의 ‘라 부티크’(2024)가 공연된다. 그리고 2인무 시리즈는 ‘잠자는 숲속의 미녀’ ‘실비아’ 등의 클래식 발레 외에 린 테일러-코벳의 ‘대질주 고트샬크’(1982), 트와일라 타프의 ‘시나트라 모음곡’(1982), 알렉세이 라트만스키의 ‘네오’(2021) 등의 하이라이트를 선보인다.
ABT 내한공연에는 16명의 수석무용수를 포함한 무용수 70명, 스태프 34명 등 총 104명이 내한한다. GS아트센터가 전막 발레를 공연하기엔 무대와 객석의 규모가 다소 작기 때문에 컨템포러리 발레를 중심으로 갈라 공연으로 준비했는데, 전막 발레 공연 못지않은 규모로 오는 셈이다. ABT의 스타 무용수 이자 벨라 보일스톤, 커샌드라 트레너리, 데본 토셔를 비롯해 서희, 안주원(이상 수석무용수), 한성우와 박선미(이상 솔리스트) 그리고 서윤정 등 5명의 한국 무용수를 직접 만날 수 있다.
창단 2년차 서울시발레단, 거장들 소개
서울시발레단이 선보일 예정인 요한 잉거의 ‘워킹 매드’. 영국 국립발레단 수석 무용수 이상은이 객원 수석으로 출연한다. ⓒGregory Batardon
또 서울시발레단은 5월 9~18일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요한 잉거(58)의 ‘워킹 매드’(2001)와 ‘블리스’(2016)를 공연한다. 잉거는 ‘무용계의 아카데미상’으로 불리는 브누아 드 라 당스 최우수 안무상을 받은 스웨덴 출신 안무가다. 1995년 첫 작품 발표 이후 네덜란드 댄스 시어터와 스웨덴 쿨베리 발레단 등을 거치며 국제적인 명성을 쌓았다. 잉거의 안무는 직관적인 움직임과 음악의 서사적 해석을 통해 인간의 내면을 예리하게 드러낸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번에 선보이는 두 작품은 세계 주요 무용단의 레퍼토리로 자주 공연되는 잉거의 대표작으로 아시아 초연이다. 영국 국립발레단(ENB) 리드 수석인 이상은이 서울시발레단 객원 수석으로서 ‘워킹 매드’에 출연한다.
서울시발레단은 한국의 유일한 공공 컨템퍼러리 발레단으로 올해 창단 2년 차를 맞았다. 지난해부터 컨템포러리 발레 거장들의 작품을 차례로 선보이며 예술적 정체성을 다지고 있다. 지난 3월 공연한 오하드 나하린의 ‘데카당스’는 관객 참여 무대를 통해 컨템포러리 발레에 대한 선입견을 깼다는 평가를 받았다.
국립발레단, 킬리안의 작품 3편 준비
국립발레단은 6월 26~29일 GS아트센터와 공동으로 ‘킬리안 프로젝트’를 선보인다. 헝가리 출신의 이리 킬리안은 컨템포러리 발레의 새로운 지평을 연 거장 안무가다. 킬리안은 1975~2000년 네덜란드 댄스 시어터를 이끌며 세계 정상의 무용단으로 올려놓았다. ‘킬리안 프로젝트’는 그의 젊은 시절 걸작인 ‘잊힌 땅’(1981), ‘낙하하는 천사들’(1989), ‘여섯 개의 춤’(1986) 등 세 편을 묶어서 선보인다.
한국과 네덜란드의 국립발레단에서 수석무용수로 활동한 김지영 경희대 교수는 “컨템포러리 발레는 무용수에게 자신의 몸을 보다 섬세하게 이해하고 움직임을 분석하게 만든다. 춤의 본질인 움직임을 본능적으로 느끼면서 짜릿한 카타르시스가 온다”면서 “스토리가 있는 클래식 발레나 드라마 발레는 정답이 있는 셈이지만 컨템포러리 발레는 정답이 없기 때문에 관객이 자유롭게 느끼면 된다. 처음엔 어려울 수 있지만 움직임에만 집중하다 보면 무용수의 매력이 더 잘 드러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