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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의집 대표 김하종 신부
김대건 신부에 감명받아 한국행
하루 노숙인 500명에 무료 급식
"선한 한국인 덕분에 지금껏 운영"
경기침체로 정기후원자 감소세
강연·출판 등으로 운영자금 충당
"갈등·분열 넘어 평화 이뤘으면"
김하종 신부가 18일 경기 성남시 안나의집에서 서울경제신문과 인터뷰를 하면서 환하게 웃고 있다.

[서울경제]

“33년간 단 하루도 쉬지 않고 안나의집을 운영할 수 있었던 것은 선한 한국인들 덕분이에요. 자원봉사자부터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채 조용히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수만 명의 얼굴 없는 천사들이 존재했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부활절을 사흘 앞둔 이달 17일 경기 성남시 사회복지법인 안나의집에서 만난 김하종 신부는 오랜 기간 무료 급식 봉사 활동을 이어올 수 있었던 비결에 대해 “외국인 유학생부터 주부·직장인까지 자원봉사자 1500명이 돌아가면서 하루도 빠짐없이 도움을 주고 있다”며 “불행하게도 아직 안나의집이 유지되고 있다는 것은 하루 한 끼를 해결하기 어려운 이웃이 여전히 우리 주변에 많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김하종 신부는 1990년 로마 오블라띠선교수도회 소속 신부로는 최초로 한국에 파견됐다. 김대건 신부의 삶에 감명을 받아 사제의 길을 선택했고 사제 서품을 받자마자 곧바로 한국행을 택했다. 한국에 와서는 어학당을 다니며 한글을 익혔고, 빈첸초 보르도로라는 이탈리아 이름 대신 김하종으로 개명했다. 동양철학을 공부하면서 우연히 김대건 신부님에 대해 알게 됐고 한국에도 관심을 갖게 된 그는 김대건 신부와 같은 ‘김씨’ 성(姓)에 ‘하느님의 종’이라는 의미로 하종이라 이름지었다.

안나의집은 김하종 신부가 한국으로 건너온 지 2년 만인 1992년 ‘평화의집’이라는 이름으로 처음 문을 열었다. 이후 오은용 씨가 운영하는 모란역 인근 식당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본격적으로 노숙인들에게 단체 급식을 시작했다. 안나의집이라는 이름은 1호 후원자인 오 씨의 모친 한영자 씨의 세례명 안나에서 따왔다. 안나의집은 일요일을 제외한 주 6일 노숙인들에게 저녁 식사를 제공한다. 현재 이곳을 찾는 노숙인은 하루 500명에 이른다. 김하종 신부는 “성남에 가면 노숙인이 많다는 이야기를 듣고 이곳으로 왔는데 정말로 가난한 사람들이 많아 놀랐다”면서 “따뜻한 식사라도 대접하고 싶다는 생각에 덜컥 급식소부터 열었고 후원을 받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녔다”고 설명했다.

안나의집의 급식소 운영 자금은 절반가량을 후원금으로 충당한다. 규모가 커지면서 후원금으로만 유지하기에는 역부족일 때가 많다. 부족한 부분은 그때그때 김하종 신부가 강연과 에세이 출간 등 외부 활동을 통해 마련한다. 김하종 신부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활동에 적극적인 것도 안나의집 운영을 뒷받침하기 위해서다.

김하종 신부가 18일 경기 성남시 안나의집 식당에서 저녁 메뉴를 들고 미소 짓고 있다.


전 세계적인 경기 불황의 여파는 안나의집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때는 물론 코로나19 팬데믹 때도 하루도 빠짐없이 급식소를 유지했지만 올 들어 정기 후원자들이 줄어들면서 안나의집 운영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김하종 신부는 “연초부터 새로운 후원자보다는 앞으로 후원을 중단하게 돼 미안하다는 전화가 많이 걸려온다”며 “제 신분은 사제지만 사목 활동 외에도 때로는 안나의집 법인 대표로서 사업가적인 노력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하종 신부는 최근 들어 급식소를 찾는 독거노인들이 늘고 있다고 귀띔했다. 노숙인이 아닌데도 한 끼 식사를 해결하기 위해 안나의집을 찾는 어려운 이들이 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급식소를 찾는 분들의 숫자에는 큰 변화가 없지만 노숙인이 아닌 어르신들이 하나둘 늘고 있다”며 “대부분이 하루 한 끼도 제대로 해결하기 어려운 독거노인들”이라고 전했다. 이어 “기초생활수급자라도 끼니를 해결하기 어렵다는 한 어르신의 사연을 접한 뒤부터는 노숙인이 아니더라도 식사를 제공하고 있다”며 “인구 고령화에 따른 자연스러운 현상이며 그들 역시 우리가 돌봐야 할 대상”이라고 덧붙였다.

김하종 신부가 경기 성남시 안나의집을 찾은 노숙인들을 향해 하트 인사를 하며 반갑게 맞이하고 있다. 사진 제공=안나의집


김하종 신부의 최종 목표는 역설적이게도 노숙인들이 사라져 안나의집이 문을 닫는 것이다. 그는 “저는 사회복지사가 아니라 사제”라며 “노숙인들과 독거노인들에게 끼니를 제공하지만 안나의집은 천국이 아니다”라고 잘라 말했다. 그는 “집에서 편하게 식사를 하셔야 할 나이인데도 긴 줄을 서서 장시간 기다리다 모르는 사람과 함께 말없이 식사를 하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아프다”며 “안나의집이 하루빨리 문 닫을 수 있도록 가난한 사람들이 없어지고 모두가 편안한 세상이 오기를 늘 꿈꾼다”고 말했다.

인터뷰를 마치면서 부활절 축복 메시지를 부탁하자 김하종 신부는 자신의 SNS에 올린 짤막한 글을 읽는 것으로 대신했다. "안나의집에서는 다양한 종교를 가진 사람들도 봉사를 하러 와 함께 가난한 이웃을 섬깁니다. 러시아 소녀와 우크라이나 소녀가 함께하는 것처럼 다양한 종교의 사람들도 서로의 차이를 넘어서 하나로 연결돼 있음을 보여줍니다. 다양한 종교와 문화가 함께 모여 이웃을 섬기는 모습을 보면 갈등과 분열을 넘어 평화롭고 아름다운 사회를 만들 수 있다는 희망을 느낄 수 있습니다.”

서울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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