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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낳은 참사에는 악성 댓글 게시자, 이른바 '악플러'가 어김없이 등장합니다.

별다른 근거도 없이 허위 사실을 게시하고, 혐오와 비방으로 점철된 막말을 쏟아내는 이들로 인해 참사 유가족들은 이유 없이 부당한 고통을 느껴야 합니다.

이들이 피해자들에게 주는 상처에 비해, 받게 되는 형사 처벌은 미미합니다.

세월호 참사와 이태원 참사 희생자와 유가족을 모욕하거나 명예를 훼손해 형사 처벌을 받은 사건 중, 실형을 받은 사례는 단 한 건뿐입니다.

이들이 피해자들에게 어떤 상처를 주었고, 합당한 처벌을 받았는지 1심 판결문을 전수 분석해 봤습니다.

■ 세월호 '배·보상금' 수령 비난 36%…희생자 모욕해 징역 4개월도


세월호 참사의 희생자와 유가족을 모욕하거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피고인은 모두 43명입니다.

이 중 36%는 유가족들의 배·보상금 수령 사실을 비난했고, 14%는 지역 비하 발언을 서슴지 않았습니다.

참사 희생자들을 성적으로 모욕하는 내용도 찾아볼 수 있었습니다.


이들 중 86%인 37명이 유죄를 선고받았습니다.

그러나 실형을 받은 사람은 단 두 명. 세월호 참사 희생자와 생존자를 모욕한 혐의로 기소된 인터넷 사이트 '일간베스트' 회원 2명뿐이었습니다.

이들은 2015년 중고 물품 거래 사이트에서 단원고 교복을 구입했습니다. 이후 교복을 입은 한 명이 희생자들을 모욕하는 내용과 함께 일베 회원 인증 손짓을 했고, 다른 한 명은 이를 촬영해 일베 사이트에 게시했습니다.

재판부는 이들에게 징역 4개월을 선고하며 엄히 꾸짖었습니다.
이 사건 범행의 대상이 대중의 시선을 일정 범위 내에서 감내해야 하는 연예인이나 정치인이 아니고 세월호 사고에서 살아남아 죽은 친구들의 삶의 몫까지 감당하고 살아나가는 어린 학생들인 점, 피해자들이 마치 사망한 학생들의 희생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취지의 글과 사진인 점, 아직 어린 피해자들의 정신적 고통이 상당할 것으로 보이는데도, 피고인들은 진지한 반성을 보이지 않고 있는 점 등은 피고인들에게 불리한 정상이다.
- 수원지방법원 안산지원

나머지 64%는 50만 원에서 500만 원 사이의 벌금형을, 12%가량은 징역형 집행유예를 선고받았습니다.

"가해하려는 의사 또는 목적을 갖고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며 무죄가 선고된 경우도 3건 있었습니다.

■ 이태원 참사 희생자 '성적 모욕' 92%…"초범이라서"


이태원 참사와 관련해 모욕·명예훼손 등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피고인은 모두 12명입니다.이들 중 한 명을 제외하고 모두 이태원 참사 희생자를 성적으로 모욕했습니다.

12명 중 한 명은 무죄를 선고받았습니다. ' '노골적으로 남녀 성적 부위나 행위를 묘사한 게 아니다'라는 이유에서였습니다.

나머지 피고인들은 모두 유죄를 선고받았지만, 실형을 받은 사람은 없었습니다.

75%가 100만 원에서 1,000만 원 사이의 벌금형을 선고받았고, 집행유예와 선고유예를 받은 사람도 각각 한 명씩 있었습니다.

모두 "초범이라서", "피해자가 구체적으로 특정되지 않아서", "범행을 인정하고 반성하기 때문에" 낮은 형량을 받았습니다.

■ 4명 중 1명꼴로 항소…'무죄'로 뒤집히기도

이렇게 반성한다던 피고인들, 네 명 중 한 명꼴로 형이 과하다며 항소했습니다.

상급심으로 올라갈 때마다 피고인들의 형량은 깎여갔고, 급기야 무죄로 뒤집힌 경우도 나왔습니다.

인터넷 사이트에서 이태원 참사 희생자를 성적으로 모욕하는 댓글을 작성한 피고인에게 2심 재판부가 '표현이 노골적이지 않다'는 이유로 무죄를 선고한 겁니다.
규제의 대상으로 삼을 만큼 과도하고 노골적인 방법에 의하여 성적 부위나 행위를 적나라하게 표현하게 표현하거나 묘사하는 내용은 없는 것으로 보이고, 이 사건 표현이 일반 보통인으로 하여금 불쾌하고 모욕적인 감정을 넘어서 성욕을 자극하거나 성적 흥분을 유발시킨다고 단정하기도 어렵다.
- 울산지방법원 제1-3 형사부

피해자들은 줄어드는 형량도 야속했지만, 재판마다 자신의 상처를 들춰내야 했던 게 더 고통스러웠다고 말합니다.

"피고인들은 끝까지 "억울하다, 다투겠다" 이러니까 그 과정 자체가 사실 계속 (피해자들에겐) 고통스러우실 수밖에 없는 거죠. 법적인 절차로 갔을 때는 끝이 날 때까지 너무 오래 걸리고, 결과도 가해자에게 온전히 책임을 지우는 경우가 아닐 때도 많습니다."
- 오민애 변호사 (세월호 유족 대리)



2019년 4월, 자신의 페이스북에 "진짜 징하게 해 처먹는다"라며 세월호 유가족들을 비난하는 글을 올린 차명진 전 국회의원.

모욕 등의 혐의로 1심에 이어 지난 2월 2심에서도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받았지만 이마저도 상고해 대법원의 판단을 앞두고 있습니다.

피해자들은 5년째 차 전 의원의 막말을 마주하고 있는 겁니다.

"여전히 뉘우치지 않더라고요. 저희가 재판 방청도 가고 하는데, 잘못된 점을 모르고 계속 뻔뻔하게 "있는 사실을 얘기했다"든지, 아니면 "게시글을 바로 삭제했다"든지 이런 식으로 얘기를 하는데요. 너무 말도 안 되는 일들을 한 거죠. 그때는 차 전 의원이 국회의원 신분이었으니까 그만큼 파급력이 엄청나거든요. 사실처럼 돼 버리는 경우가 많고…."
- 강지은 씨 (고 지상준 학생 어머니)



2022년 11월, 자신의 페이스북에 "나라 구하다 죽었냐"라며 이태원 참사 희생자와 유가족을 비난하는 글을 올린 김미나 창원시의원은 모욕 혐의로 2023년 7월 기소됐습니다.

1심 재판부는 김 의원에게 징역 3개월의 선고유예를 선고했지만, 김 의원은 '형이 과하다'며 항소했습니다.

김 전 의원은 자신의 첫 항소심 공판에서 "깊이 반성하고 언행에 조심하겠다"며 사과했지만, 재판이 끝난 뒤 '사과한 주체가 누구냐'는 취재진의 질문에는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2심 재판부도 지난해 10월 김 전 의원에게 징역 3개월의 선고유예를 선고했고, 김 전 의원과 검찰 모두 상고를 포기하며 형이 확정됐습니다.

■ "사회적 참사에 대한 모욕, 양형 기준·법적 처벌 높여야"


피해자들이 받는 상처에 비해 참사를 대상으로 한 모욕이 적절하게 처벌받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모욕죄의 최대 형량은 징역 1년 또는 벌금 200만 원. 정보통신망 이용 촉진에 관한 법률 위반(명예훼손)
의 최대 형량은 징역 3년 또는 벌금 3,000만 원입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오민애 변호사는 "현재 모욕죄 등에 대한 처벌 기준이 낮은 편이긴 하다"라며 "참사 피해자들을 모욕하는 행위를 했을 때 어떤 기준을 적용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오 변호사는 "법 개정은 지금 당장 힘들지 몰라도 대법원 양형위원회에서 양형 기준을 논의하는 것은 가능하다"라며 "사회적 참사에 대한 모욕을 일반적인 모욕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판단하기보다 사회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등을 두루 고려해 양형 기준을 재논의하는 게 필요해 보인다"고 지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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